오펜하이머, 핵폭탄 장면 아니고 무엇에 놀란?

한겨레21 2023. 8. 19.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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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기획]거대한 버섯구름 스펙터클 없어도, 우리 시대 최고의 재주꾼이 펼쳐보이는 ‘감정’의 블록버스터
첫 원자폭탄 실험을 성공시킨 뒤 뉴멕시코의 캠프에서 환호하는 오펜하이머(킬리언 머피).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이 글에는 영화 <오펜하이머>의 스포일러가 포함됐습니다.

이것은 블록버스터다. 이게 어째서 블록버스터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크리스토퍼 놀런이 원자폭탄을 발명한 과학자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전기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모두의 관심은 오펜하이머가 아니었다. 핵폭탄이었다. 1억달러(약 1300억원) 이상의 제작비를 투여한다는 소식이 들리자 사람들의 궁금증 뇌관에는 불이 붙었다. 1억달러는 전기영화를 만들기에는 좀 많은 제작비다. 놀런은 영국 런던에서 열린 시사회에서 제작비가 모두 1억8천만달러라고 밝혔다. 기껏해야 강의실과 연구실과 미국 뉴멕시코주 허허벌판을 왔다 갔다 하는 영화에 1억8천만달러를 썼다고? 그러니까 <오펜하이머>의 비밀은 결국 핵폭탄에 있는 것이다. 모두가 그렇게 믿었다. 나도 그렇게 믿었다.

CG 없이 최초 핵실험 재현

물론 크리스토퍼 놀런이 <다크 나이트>에서 배트맨을 다룬 방식으로 오펜하이머를 그릴 리는 없었다. 오펜하이머는 실존 인물이다. 그가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지시를 거부하고 일본 히로시마로 날아가 원자폭탄을 막아 세우는 장면 같은 걸 만들 수는 없다. 그래서 모두가 짐작했다. 제작비의 가장 큰 지분은 아마도 핵폭발 장면에 투자될 것이다. 놀런은 컴퓨터그래픽(CG)을 거부하고 전통적인, 그러니까 물리적 특수효과를 선호하기로 유명한 감독이다. 소셜미디어는 놀런이 진짜 핵무기를 터뜨려 첫 번째 원자폭탄 실험을 카메라에 담을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로 넘쳐났다. 누구도 그걸 진지하게 믿지는 않았다. 그래서 우스갯소리이다. 2022년 12월 <오펜하이머> 제작진은 CG 없이 최초의 핵실험인 트리니티 실험을 재현하고 카메라에 담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나도 당신도 그 장면을 보기 위해 한 달 전부터 값비싼 아이맥스 상영관을 예매하느라 전쟁을 치르고야 말았다. 그래서? 그 장면은 얼마나 굉장한가?

크리스토퍼 놀런은 하이프(Hype)의 감독이다. 뉴진스의 ‘Hype Boy’로 전 국민이 더욱 잘 이해하게 된 하이프는 ‘지나친’ ‘초과한’이라는 뜻이다. ‘들뜨다’ 혹은 ‘흥분되다’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특히 영화에서 “하이프가 있다”고 하면 공개 전부터 과도할 정도로 사람들의 기대를 모은다는 소리다. 놀런은 확실히 지금 세계 영화계의 하이프 보이다. 그의 영화는 개봉 전부터 영화광뿐만 아니라 일반 관객에게 반드시 보아야 할 범문화적 행사처럼 여겨진다. 이유는 간단하다. 놀런의 영화는 단 한 번도 업계와 관객의 기대를 무참히 배신한 적이 없다. 모든 감독에게는 졸작이 있다. 놀런에게는 없다. 그의 영화는 비평가 평점을 모아 ‘신선한 토마토’와 ‘썩은 토마토’로 분류하는 미국 영화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단 한 편도 썩은 것으로 분류된 적이 없다. 코로나19 대유행 기간에 개봉한 <테넷>을 제외하고는 흥행에 실패한 적도 없다. 당연히 하이프가 생길 수밖에 없다.

촬영 현장의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가운데)와 주연배우 킬리언 머피(오른쪽), 에밀리 블런트(왼쪽).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다크 나이트>의 성공 이후 놀런이 만든 영화는 모두 엄청난 하이프를 가진 채 개봉했다. <인터스텔라>는 정확하게 상대성 이론과 블랙홀을 영상화했다는 이야기가 개봉 전에 넘쳐났다. <인셉션>과 <테넷>은 시놉시스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플롯 자체가 하이프였다. 나는 <덩케르크>의 성공이 놀런의 하이프를 가장 크게 끌어올렸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그는 에스에프(SF) 장르에 귀속되는 액션 블록버스터를 만들던 상업영화 감독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실제 작전을 영화화하는 건 그로서도 모험이었다. 결과적으로 <덩케르크>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제치고 2차 대전을 다룬 영화 역사상 가장 큰 수익을 벌어들인 영화가 됐다. 놀런은 <덩케르크>를 통해 요즘 관객이 더는 매혹을 느끼지 못하는 장르로도 블록버스터를 만들어 성공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연출가가 됐다. 비상업적이라 간주되는 소재로 제작자에게도 확신을 주고 관객에게도 확신을 주는 감독이란 정말 희귀한 존재다.

졸작 없는 영화계의 ‘하이프 보이’

그러니까 이 글의 초반에 던진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CG 없이 재현한 핵실험 장면은 얼마나 굉장한가? 혹은, 핵실험 장면을 제외한 블록버스터로서 응당 관객에게 안겨줄 법한 시각적 스펙터클은 얼마나 존재하는가? 단호하게 말하자면 <오펜하이머>에 당신이 기대한 그런 스펙터클은 없다. 전통적인 폭약을 이용해 촬영한 트리니티 실험 장면은 우리가 익히 할리우드 영화에서 보아온 압도적으로 거대한 버섯구름의 미학과는 다르다. 조금 초라하기까지 하다. 구글 검색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실제 트리니티 폭발 장면과 똑같지도 않다. 실망하기에는 이르다. 중요한 건 폭발 장면의 스펙터클이 아니다. 놀런은 애초에 핵폭발 장면을 영화의 클라이맥스로 삼을 생각이 없었던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오펜하이머>를 여름용 블록버스터라 부르는 것이 온당한가? 그렇다. 온당하다. 이 영화는 블록버스터가 맞는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감정’의 블록버스터다. 그 감정은 영화의 구조와 아이맥스 카메라로 담은 배우들의 얼굴에서 나온다.

사회주의자 연인인 장 태틀록(플로렌스 퓨)와 오펜하이머(킬리언 머피),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오펜하이머>가 딱히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국내에도 출간된 평전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사이언스북스 펴냄)를 토대로 한 전기영화다. 영화 역시 오펜하이머의 생애 중 40여 년을 거의 다 훑는다. 오펜하이머는 1904년 미국 뉴욕에서 부유한 독일 출신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하버드대학 화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물리학과 대학원 과정을 거친 그는 버클리대학 교수로 임용된다. 2차 대전 발발 뒤 1942년 맨해튼 계획이 시작되자 오펜하이머는 프로젝트 지휘자가 되어 결국 첫 원자폭탄 실험을 성공시킨다. 전후 매카시즘 열풍이 미국을 휩쓸자 종전 이후 핵개발 경쟁에 비판적이었던 오펜하이머는 젊은 시절 사회주의자들과 밀접했던 관계 때문에 마녀사냥을 당한다. 인류 역사를 바꾼 천재 과학자의 상승과 추락의 드라마. 그것이 영화 <오펜하이머>의 내용이다.

그런데 익히 알려진 오펜하이머 개인의 역사는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니다. 놀런의 영화를 즐기는 독자라면 이게 무슨 소리인지 짐작할 것이다. 놀런은 이야기꾼이라기보다는 형식의 예술가다. 그는 플롯을 여러 시간대로 쪼개어 재조립하는 것으로 극적인 재미를 뽑아내는 재주가 있다. 덩케르크에서의 일주일, 바다에서의 하루, 공중에서의 1시간을 교차 편집한 뒤 영화의 끝에 모든 시점을 합쳐내던 <덩케르크>를 한번 떠올려보시라. 꿈속의 꿈속의 꿈속에서 흐르는 각기 다른 사건과 시간을 기가 막히게 조립해내며 서스펜스를 창조한 <인셉션>을 떠올려보시라. 놀런은 <오펜하이머>에서도 익숙한 형식적 서커스를 벌인다.

<덩케르크> <인셉션> 등 떠오르는 형식 예술

처음 1시간 동안 놀런은 오펜하이머가 당대 지식인들과 교류하며 핵분열의 비밀을 알아내는 과정과 뉴멕시코주 사막에서 원자폭탄을 만드는 과정, 전후 매카시즘 시대에 미 원자력위원회 창립위원 루이스 스트로스와 청문회에서 격돌하는 과정(이 부분만 흑백이다), 세 가지 시간대를 관객에게 쏟아낸다. 컬러와 흑백과 다른 시간대가 마구 부딪치는 동안 관객은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의 내면을 먼저 들여다보게 된다. 놀런은 중간중간 핵분열 과정을 특수효과로 이미지화한 추상적인 장면을 끼워 넣는다. 그것은 핵분열의 이미지이기도 한 동시에 오펜하이머의 마음 이미지이기도 하다. 처음 1시간의 분열적인 이미지 폭격이 끝난 뒤 놀런은 뉴멕시코주 사막에서 진행되는 트리니티 프로젝트를 장중하다시피 한 고전적 드라마로 풀어낸다. 마지막 1시간은 오펜하이머가 마녀사냥을 당하는 과정을 집요하고 고통스럽게 보여준다.

우리가 ‘영화적’이라고 말할 때 그 의미는 무엇인가. 영화를 만드는 것은 사실 편집이다. 편집은 당신을 속이기도 하고 놀라게도 한다. 우리의 삶은, 누군가의 삶은, 오펜하이머의 삶은 시간 순서대로 명확하게 흘렀다. 흐른다. 흐를 것이다. 영화는 삶이 아니다. 영화는 삶의 조각들을 감독의 의중대로 고르고 뒤섞어 만들어내는 예술이자 엔터테인먼트다. 놀런은 <인셉션> <덩케르크> <테넷>을 만드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오펜하이머>를 만들었다. 여기에 기승전결은 없다. 기와 승과 전이 마구 섞이며 관객의 눈과 마음을 뒤흔든 뒤 결말에서 융합된다. 우리는 <덩케르크>에서 압도적인 전쟁의 스펙터클을 기대했지만 그 영화의 진정한 즐거움은 다른 시간대와 장소를 오가며 자아내는 편집의 마술이었다. <테넷> 역시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특수효과보다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 시간대의 조각을 머릿속으로 맞추는 지적 유희(혹은 고통)에 진정한 즐거움이 있었다. 영화를 편집의 마술이라고 부른다면 놀런은 우리 시대 가장 재주 있는 마술사다. <오펜하이머>는 우리 시대 가장 재주 있는 마술사가 펼치는 마술, 그러니까 편집의 쇼다.

오펜하이머의 숙적인 미 원자력위원회 창립위원 루이스 스트로스(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마지막으로 다시 질문해보자. <오펜하이머>를 여름 블록버스터라 부를 수 있는가? 당연히 부를 수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주장할 참이다. 핵폭발의 스펙터클만 스펙터클인 것은 아니다. 놀런은 얼굴의 스펙터클에 집중한다. 거대한 아이맥스 카메라가 킬리언 머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맷 데이먼, 에밀리 블런트 등 훌륭한 배우들의 얼굴을 극단적인 클로즈업으로 담아내는 순간이 바로 <오펜하이머>의 스펙터클이다. 자신의 이름을 외치는 사람들 앞에서 “히틀러에게 폭탄을 날리지 못한 것이 한”이라고 말할 때 오펜하이머의 얼굴. 트리니티 실험이 성공적으로 끝난 뒤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라는 힌두교 경전을 나직하게 읊는 오펜하이머의 얼굴. 그 모든 얼굴이 거대한 아이맥스 화면에 크리스토퍼 놀런 영화 특유의 고막을 뒤흔드는 드라마틱한 음악을 타고 펼쳐지는 순간, 그것은 정말이지 영화적인 스펙터클이 된다.

할리우드의 트리니티

그러니 <오펜하이머>는 결국 블록버스터다. 우리가 블록버스터라고 부르던 범주를 벗어난 블록버스터다. 존경받는 할리우드의 예전 감독들은 상업적 블록버스터와 규모가 작은 진지한 영화를 오가는 것으로 돈과 명예를 동시에 획득했다. 놀런은 그걸 그냥 섞어버렸다. 핵폭탄을 개발한 실존 과학자의 내면을 탐구하는 전기영화가 여름용 블록버스터가 될 수 있고, 그것이 세계 시장에서 수억달러를 벌어들일 수 있다는 개념 같은 건 예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는 존재한다. <오펜하이머>는 가장 고전적인 ‘영화적’ 방식으로 창조한 새로운 발명품이다. 할리우드의 트리니티다.

김도훈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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