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무표 승차 0.5배 vs 남표(남의표) 승차 10배 징수…형평성 맞나?

조기호 기자 2023. 8. 19.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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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일 부정승차 징수 약관…'약관의 갑질?'


표를 사지 않고 열차를 타는 것(무임승차)과 표는 샀지만 그것을 사용할 자격 없이 열차를 타는 것(무자격승차). 둘 중 어느 것이 더 나쁜 행위일까요. 또 둘 중 어떤 행위가 열차 사업자에게 더 손해를 끼치는 걸까요. 무임승차? 무자격승차? 아니면 둘 다 부정승차인데 다 나쁜 거 아닌가 등등 다양한 의견이 있을 겁니다. 이걸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실제 사례가 일어났습니다.

서울-오송을 정기적으로 오가는 A 씨의 이야기입니다. A 씨는 코레일의 판촉용 N카드를 발급 받았습니다. N카드는 A 씨처럼 동일 구간을 이용하는 사람을 위해 일부 금액을 선결제 함으로써 할인받는 카드입니다. 서울-오송 간 정상 요금이 1만 8,500원인데 N카드로 결제하면 1만 5,700원으로 2,800원이 할인됩니다.

지난 7월 초 A 씨는 서울-오송 왕복표 두 장을 구입했습니다. 서울에서 가족 두 명이 오송을 방문한다기에 표를 끊어준 겁니다. 한 장은 일반 카드로, 다른 한 장은 N카드로 결제했습니다. 오송 도착 30분을 앞두고 A 씨는 가족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부정승차'로 운임의 10배인 18만 7천800원을 물어야 한다는 전화였습니다.

부정승차로 운임의 10배 징수된 A 씨 결제 영수증


당황한 A 씨는 코레일 측에 문의했고, 다음과 같은 답을 들었습니다.

"N카드로 결제한 승차권은 반드시 본인만 탑승해야 하며 이를 어길 경우 부정승차에 해당돼 운임의 10배를 물어야 한다는 조항이 약관에 있습니다."

A 씨는 그제야 약관을 찬찬히 다시 살펴봤습니다. 코레일 측이 안내한 내용이 맞았습니다. 본인에게 귀책이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징수 조항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자기 잘못이 분명 크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약관을 보다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을 발견했답니다.
□ 승차권이 없거나 유효하지 않은 승차권을 갖고 승차한 경우: 0.5배
□ 이용 자격에 제한이 있는 할인상품 또는 좌석을, 자격 없는 사람이 이용하는 경우: 10배

다시 말해 아예 표를 구입하지 않고 열차를 타다 걸리면 0.5배를 물리지만, 표를 사긴 샀는데 할인 표라서 본인이 사용하지 않았다면 10배를 징수한다는 약관입니다. 같은 부정승차인데 징수액은 무려 20배 차이입니다.

A 씨는 반문했습니다. '표를 아예 안 사고 열차 타는 게 더 나쁜 행위 아닌가', '무자격승차는 어쨌든 대부분 운임을 지불한 게 아닌가', '코레일 측에 손해를 끼친 정도만 따져도 무임승차가 큰 게 아닌가'라고 말이죠. A 씨는 "잘못했기에 징수액을 돌려받자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이 정도면 '약관의 갑질'이 아닐까"라고 하소연했습니다.


이제는 코레일의 설명을 들을 시간입니다. 코레일에 대한 취재를 종합하면 이렇습니다. 원래는 무자격승차 시 운임의 1배를 징수했습니다. 그런데 2017년 국정감사에서 무자격승차에 대한 대책을 세우라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코레일은 내부 논의 끝에 징수액을 10배로 올리는 쪽으로 약관을 개정했습니다. 그랬더니 2017년 1만 1천 건이었던 무자격승차가 2022년 194건으로 확 줄었답니다. 이 정도면 꽤 효과를 본 대책입니다.

A 씨의 반문을 대신 코레일에 전했습니다. 코레일은 표를 아예 안 사고 열차에 오른 무임승차보다, 할인 가격에 사서 다른 사람 태운 무자격승차가 더 부정의 고의성이 짙다고 본답니다. 무임승차 승객들은 표가 매진일 경우 일단 열차에 탄 뒤 나중에 계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랍니다. 그러나 무자격승차 승객은 처음부터 부정승차를 의도하고 탄다는 게 코레일의 판단입니다.

결국은 고의성의 정도로 징수액을 달리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코레일은 관심법이라도 쓰는 걸까요? 그 고의성 어떻게 일일이 다 판단할 수 있을까요. A 씨처럼 약관을 잘 따져보지 않은 사람들도 분명 있을 텐데 말이죠. 무임승차한 뒤 승무원에게 적발되지 않고 목적지에 내린 사람들의 경우 고의성 여부를 판단할 통계에 잡히지도 않습니다.

부정승차를 줄이기 위한 고강도 대책이라는 설명도 잘 와닿지 않습니다. 코레일에 따르면 부정승차의 98%가 '무임승차'입니다. 그만큼 무임승차가 심각하다는 얘기이죠. 이해를 돕기 위해 <무임승차 vs 무자격승차 적발 건수>를 표로 만들었습니다.
  2020년 2021년 2022년
무임승차 141,000건 173,000건 203,000건
무자격승차 121건 145건 194건
자료 제공: 코레일(부정승차 유형 및 적발 건수)

최근 3년 간 통계를 봐도 한눈에 무임승차가 심각하다는 게 들어옵니다. 지금 코레일이 세워야 할 시급한 대책은 무임승차 줄이기일 겁니다. 그럼에도 무임승차에는 0.5배, 무자격승차에는 10배라는 약관을 여전히 유지하는 게 타당한 일일까요? 무임승차든 무자격승차든 모두 부정승차라는 점에서 분명히 지탄받아 마땅합니다. 부정행위를 하면 벌 받아야죠. 하지만 죄와 벌은 비례해야지, 지은 죄에 비해 벌이 한없이 가볍거나 무거워서는 안 됩니다. 더구나 그 벌이 국회 말 한마디로 10배까지 부풀려진 '눈치보기 형벌'이었다면 보다 합리적인 쪽으로 개선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조기호 기자 cjkh@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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