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무표 승차 0.5배 vs 남표(남의표) 승차 10배 징수…형평성 맞나?
표를 사지 않고 열차를 타는 것(무임승차)과 표는 샀지만 그것을 사용할 자격 없이 열차를 타는 것(무자격승차). 둘 중 어느 것이 더 나쁜 행위일까요. 또 둘 중 어떤 행위가 열차 사업자에게 더 손해를 끼치는 걸까요. 무임승차? 무자격승차? 아니면 둘 다 부정승차인데 다 나쁜 거 아닌가 등등 다양한 의견이 있을 겁니다. 이걸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실제 사례가 일어났습니다.
서울-오송을 정기적으로 오가는 A 씨의 이야기입니다. A 씨는 코레일의 판촉용 N카드를 발급 받았습니다. N카드는 A 씨처럼 동일 구간을 이용하는 사람을 위해 일부 금액을 선결제 함으로써 할인받는 카드입니다. 서울-오송 간 정상 요금이 1만 8,500원인데 N카드로 결제하면 1만 5,700원으로 2,800원이 할인됩니다.
지난 7월 초 A 씨는 서울-오송 왕복표 두 장을 구입했습니다. 서울에서 가족 두 명이 오송을 방문한다기에 표를 끊어준 겁니다. 한 장은 일반 카드로, 다른 한 장은 N카드로 결제했습니다. 오송 도착 30분을 앞두고 A 씨는 가족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부정승차'로 운임의 10배인 18만 7천800원을 물어야 한다는 전화였습니다.
당황한 A 씨는 코레일 측에 문의했고, 다음과 같은 답을 들었습니다.
"N카드로 결제한 승차권은 반드시 본인만 탑승해야 하며 이를 어길 경우 부정승차에 해당돼 운임의 10배를 물어야 한다는 조항이 약관에 있습니다."
□ 승차권이 없거나 유효하지 않은 승차권을 갖고 승차한 경우: 0.5배
□ 이용 자격에 제한이 있는 할인상품 또는 좌석을, 자격 없는 사람이 이용하는 경우: 10배
다시 말해 아예 표를 구입하지 않고 열차를 타다 걸리면 0.5배를 물리지만, 표를 사긴 샀는데 할인 표라서 본인이 사용하지 않았다면 10배를 징수한다는 약관입니다. 같은 부정승차인데 징수액은 무려 20배 차이입니다.
A 씨는 반문했습니다. '표를 아예 안 사고 열차 타는 게 더 나쁜 행위 아닌가', '무자격승차는 어쨌든 대부분 운임을 지불한 게 아닌가', '코레일 측에 손해를 끼친 정도만 따져도 무임승차가 큰 게 아닌가'라고 말이죠. A 씨는 "잘못했기에 징수액을 돌려받자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이 정도면 '약관의 갑질'이 아닐까"라고 하소연했습니다.
이제는 코레일의 설명을 들을 시간입니다. 코레일에 대한 취재를 종합하면 이렇습니다. 원래는 무자격승차 시 운임의 1배를 징수했습니다. 그런데 2017년 국정감사에서 무자격승차에 대한 대책을 세우라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코레일은 내부 논의 끝에 징수액을 10배로 올리는 쪽으로 약관을 개정했습니다. 그랬더니 2017년 1만 1천 건이었던 무자격승차가 2022년 194건으로 확 줄었답니다. 이 정도면 꽤 효과를 본 대책입니다.
A 씨의 반문을 대신 코레일에 전했습니다. 코레일은 표를 아예 안 사고 열차에 오른 무임승차보다, 할인 가격에 사서 다른 사람 태운 무자격승차가 더 부정의 고의성이 짙다고 본답니다. 무임승차 승객들은 표가 매진일 경우 일단 열차에 탄 뒤 나중에 계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랍니다. 그러나 무자격승차 승객은 처음부터 부정승차를 의도하고 탄다는 게 코레일의 판단입니다.
결국은 고의성의 정도로 징수액을 달리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코레일은 관심법이라도 쓰는 걸까요? 그 고의성 어떻게 일일이 다 판단할 수 있을까요. A 씨처럼 약관을 잘 따져보지 않은 사람들도 분명 있을 텐데 말이죠. 무임승차한 뒤 승무원에게 적발되지 않고 목적지에 내린 사람들의 경우 고의성 여부를 판단할 통계에 잡히지도 않습니다.
2020년 | 2021년 | 2022년 | |
무임승차 | 141,000건 | 173,000건 | 203,000건 |
무자격승차 | 121건 | 145건 | 194건 |
최근 3년 간 통계를 봐도 한눈에 무임승차가 심각하다는 게 들어옵니다. 지금 코레일이 세워야 할 시급한 대책은 무임승차 줄이기일 겁니다. 그럼에도 무임승차에는 0.5배, 무자격승차에는 10배라는 약관을 여전히 유지하는 게 타당한 일일까요? 무임승차든 무자격승차든 모두 부정승차라는 점에서 분명히 지탄받아 마땅합니다. 부정행위를 하면 벌 받아야죠. 하지만 죄와 벌은 비례해야지, 지은 죄에 비해 벌이 한없이 가볍거나 무거워서는 안 됩니다. 더구나 그 벌이 국회 말 한마디로 10배까지 부풀려진 '눈치보기 형벌'이었다면 보다 합리적인 쪽으로 개선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조기호 기자 cjkh@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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