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즘증 따라가다보니 여기까지" 뉴미디어 큰손 '정프로' 정영진 이야기[인터뷰S]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지겨운 걸 잘 못견디는 콘텐츠 제작자."
스스로를 소개해달라는 첫 질문에 정영진(48)은 이렇게 답했다. 한 곳에 머무르는 대신 끊임없이 변화와 도전을 택한 뉴미디어의 대표 주자다웠다. 방송 시사-경제 리포터로 출발해 지상파와 케이블, 종편을 누비다 어느덧 팟캐스트와 유튜브를 주름잡는 진행자이자 기획자, 제작자가 된 그는 TV에 안 나와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유명인이다. 팟빵 '정영진·최욱의 매불쇼(매불쇼)', 삼프로TV, 보다 BODA, 편의점 클라쓰e 등 그가 참여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들의 구독자만 합쳐도 어림잡아 400만 명을 훌쩍 넘겨 500만을 넘본다. 콘텐츠도 다채롭다. 정치 시사 경제 과학에 문화, 최근엔 엔터까지를 아우른다.
"기본적으로는 가장 밑바닥에는 인간의 행동에 늘 관심이 많았어요. 저 행동이 왜 나왔나, 왜 저렇게 이야기를 할까. 같은 현상을 보고도 왜 사람들이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에 관심이 많았죠. 사회면 사건사고가 될 수도 있고, 경제적인 일이 될 수도 있고, 예능의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러면서 그때그때 제가 될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에 많이 베팅했던 것 같아요. 초반만 해도 방송을 하며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미디어에서 새로운 재미를 추구하는 느낌이었는데, 이젠 완전히 역전이 됐죠."
'뉴미디어 업계 큰손'이란 이야기에 '떼돈번다'는 소문까지 돈다. 정영진은 "일반 직장인에 비하면 굉장히 많지만, 또 나가는 데도 많다. 돈 안 되는 것들, 경제적인 걸 생각하면 안 해야 하는 것들도 한다"고 했다. 그가 일을 고르는 기준은 세가지 더하기 알파(α)다. '돈 되냐, 커리어에 도움 되냐, 재미있냐.' 그 셋이 늘 가장 중요하고, 마지막으로 인간적인 관계를 본다. 20년 전부터, 바뀐 적 없는 기준이란다.
그 기준에서 드러나듯, 돌아가지 않고 핵심을 파고드는 건 정영진의 전매특허다. 설령 스스로 잘 알지 못하는 분야에 뛰어들더라도 뻔하지 않은 이야기를 끌어내고 적재적소에서 질문을 던진다. 그는 "뻔한 이야기, 인사치레를 못견디게 싫어한다. 설령 그것이 그 사람을 불편하게 할 수 있어도 지루한 것 보다는 낫다고 여긴다"고 털어놨다. 방송용 순화가 없으니 게스트로 왔던 경제전문가들도 처음엔 당황하곤 했단다. 그는 "그래도 시작하기 전과 끝난 뒤에는 겸손하다. 두번 오시는 이유가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저 스스로 새로운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하나를 오래 잘 못하는 것 같고요. 오래 해온 것도 매번 새로운 뭔가가 있으니 그렇게 할 수 있었죠. 그렇지 않고 루틴처럼 반복되면 그걸 힘들어 해요. 이를테면 경제적인, 다른 좋은 요소가 있어도 지겨우면 힘들어요."
마침 그는 휴식기를 선언했다. 18일 방송을 끝으로 잘 나가난 '매불쇼'부터 삼프로TV까지 딱 끊고 한 달을 쉰다. "잠정적인 휴식기"인 셈이다. 그 한 달이 지나면 그의 행보는 또 다른 변화를 맞을 것이다.
"한 10년을 했죠. 늘, 대체로 재미있는 프로그램이고 '매불쇼'는 웃으며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프로그램이기도 해요. 일단 건강이 부담이고요, 오랫동안 너무 달려왔어요. 휴식이 필요한 시간이 온 것 같아요. 한 주 정도는 그냥 쉬다가, 아이들 다 데리고 캐나다 가족 여행도 다녀오려고요.
지난 한 4~5년은 소진만 한 것 같아요. 그래도 제가 아주 방전되지는 않은 건, 제가 내보내는 것이 있고 반면에 제가 얻어먹는 것이 있기 때문이죠. 책 이야기, 과학 이야기, 이런 것들은 베가 배우고 습득하는 것들이에요. 그 시간 덕분에 4년여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제 새로 리셋하고 나서는 저를 좀 더 채우는 시간도 가져볼까 합니다."
정영진은 "그때도 지금 하던 걸 하고 있었다"며, 약 20년 전을 돌아봤다. 아침 프로그램에서 사건사고 등을 전하는 사회뉴스 리포터로 2년 가까이 일하며 수입도 평가도 나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어쩌면 그 길을 계속 걸을 수도 있었다. 당시 함께 방송을 시작했던 이가 지금은 '미스터 트롯2'을 통해 트로트 가수가 된 매일경제TV 아나운서 출신 김용필이다. 김용필이 방송을 계속 하고 있을 때, 정영진은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대학원에 진학할까 하다가 로스쿨에 갔고, 마치지 못한채 2011년께 귀국했다. "2년 반 있다가 돈 떨어져서 왔죠. 성적이 나쁘지는 않았어요.(웃음)"
정영진의 설명에 따르면 그가 "오기만을 기다린" 제작진들이 잊지 않고 그를 찾았고, 정영진은 각종 라디오 프로그램 뉴스 브리핑을 시작했다. 인터넷 신문사 편집장 일을 했던 게 그 즈음이다. 하지만 2013년 다시 그는 방송가로 복귀했고, 종편채널 론칭과 함께 폭발적으로 생겨난 시사프로그램을 방송사를 가리지 않고 출연했다. 한때는 'CJ의 아들'이었다. tvN, XTM 등에서 'M16' '더 벙커' '젠틀맨리그' 등에 출연하며 외연을 넓혔다.
"남의 방송은 많이 했는데 내 방송이 없다, 하며 그때쯤 팟캐스트를 시작했어요. '나꼼수' 등이 뜨고 잘 되던 때예요. 저도 뭘 좀 해보자, 재밌는 걸 하자 해서 시작한 게 '정영진의 불금쇼'(2014)였어요. 당시 다른 국사 관련 팟캐스트도 하고 도와준다고 다른 데도 갔는데, 발군의 토크 실력을 보여준 친구가 한 명 있었어요. 그 분이 최욱이었어요. 그 친구 번호를 땄죠. 저의 사람 보는 눈이 틀리지 않았고, 게스트로 왔는데 너무 재밌어서 둘이 '불금쇼'를 4~5년 했죠. 그때만 해도 주에 한 번이었는데, 팟빵 측에서 매일 제작을 할테니 진행을 해주면 좋겠다 해서 시작한 게 '매일매일 불금쇼'해서 '매불쇼'(2018~)가 된 거예요."
금융권에서 잔뼈 굵은 '김프로' 김동환, 경제 기자로 오래 활동한 '이프로' 이진우와 삼프로TV(3PROTV)를 시작한 것이 그 즈음이다. 처음 아이디어는 '김프로'가 냈다. '경제는 재미없고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재미있게 해 보자'가 출발이었다. 두 경제 전문가가 현업 관계자를 모셔오고 사안을 풀어줬다면, 정영진이 '쉽고 재미있게'를 맡은 셈이었다. 반응이 폭발했고, 이젠 구독자 230만 명이 넘는 경제부문 최고 인기 채널이 돼 상장까지 준비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서 있는 위치를 10년 전 계획했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10년 전 경제채널로 인정받는 상황이 올 거라고 전혀 상상하지 못했고, '매불쇼'로 많은 이들이 사랑해주실거라고 생각도 못했어요. '매불쇼'든 '삼프로'든 '보다'든 '일당백'이든 어떤 채널이든 제가 궁금한 것을 파고드는 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았어요. 제가 궁금하지 않은 걸 물어보는 걸 힘들어해요. 대본이 있을 때조차 그것대로 질문하지 않고, 대본대로 하는 걸 힘들어한다. 결국은 처음으로 돌아가, 인간의 행동 언어 생각에 대한 궁금증은 앞으로도 크게 변하지 않을 것 같아요. 포장지는 바뀔 수 있겠지만. 유일한 방향성이 아닐까. 궁금증을 따라가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정도로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정영진은 그간 참 바삐 지냈다. 아침 라이브를 오전 7시반에 시작하고, 별 녹화가 없으면 오후 2~4시에 다시 홍대에서 라이브를 하고, 돌아오면 저녁 6시반에 다시 라이브를 했다. 여기에 심야 라이브를 추가한 시절도 있었다. 식사는 편의점에서 때우기가 일쑤. 평소 병치레도 없었지만, 몸이 혹사를 더는 버티지 못했는지 심한 안구건조증에 선글라스를 끼지 않으면 눈이 견디지 못하는 지경이 됐다. 2년 넘게 늘 선글라스를 낀 채이다보니 이젠 트레이드마크가 돼 정영진과 선글라스가 연관검색어가 됐다.
"오해도 많이 받죠. '건방지다', '장님이냐'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요. 한동안은 조명만 받으면 모래를 뿌린 것처럼 눈이 아팠어요. 1년 가까이 고생했는데, 통증에 둔감해진 건지 지금은 아프고 그렇지는 않아요. 자주 눈을 감기는 합니다.
휴식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면, 잠깐 제대로 달려왔나 보고 앞으로 어디로 달려갈까 살펴보는 시간이 될 것 같아요. 말이 4~5년이지 근 10년을 달리기만 한 것 같아요. 조금은 더 제가 하고 싶은, 혹은 만들고 싶은 콘텐츠를 잘 구상해서 삼프로TV에서도 그렇고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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