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의 아내를 만난 일본의 신문 기자[영감 한 스푼]
화가 이중섭과 그의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한국명 이남덕)의 사랑 이야기는, 이중섭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두 사람은 7년을 부부로 지냈고, 이중섭이 세상을 떠나고 난 뒤 야마모토 여사는 두 아들과 함께 70년을 살다 지난해 작고했습니다. 8월 13일이 야마모토 여사의 별세 1주기였답니다.
그런 야마모토 여사의 이야기를 취재하고 일본에서 책으로 출간한 신문 기자가 있습니다. 마이니치 신문의 정치부 기자 오누키 도모코입니다. 일본어로는 ‘사랑을 그린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펴낸 그녀의 책은 2020년 한국에 관한 책으로는 처음으로 일본 쇼가쿠칸 논픽션 대상을 받았습니다.
이 책이 최근 ‘이중섭, 그 사람’(혜화1117)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에 번역 출간됐습니다. 그녀를 만나 이중섭에 관한 책을 쓰게 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질문을 하기 전에 또 다른 이중섭의 책을 펴낸 최열 미술사학자와도 함께 인터뷰를 했기 때문에, 두 분이 처음 만난 순간에 대해 질문을 해야 했습니다.
오누키 씨는 이 질문에 답하면서 저에게 2016년 11월 마이니치 신문 1면을 보여주었습니다. 당시 마이니치신문의 서울 특파원이었던 그녀는 한국에 관련된 소식 두 가지로 1면을 장식했습니다. 하나는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소식, 또 하나는 야마모토 여사의 인터뷰 기사였습니다.
절절한 러브 스토리에 매료되다
김민(민):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이중섭 전시를 보고 처음 이야기를 알게 됐다고 하셨어요.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오누키 도모코(오): 솔직히 저는 그림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다만 전시장에서 두 분이 주고받았던 편지를 보게 되었어요. 한국에서는 이중섭이 보낸 편지만 유명한데 이번 취재 과정에서 야마모토 여사가 보낸 편지도 꽤 많다는 걸 알게 됐죠.
그것을 순차적으로 정리해서 읽어보니, 만나기를 원하는 간절함과 서로에 대한 믿음이 느껴졌어요. 아, 나는 과연 이렇게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70년 가까이 홀로 지낸 야마모토 여사의 원동력이 무엇이었을지도 궁금했어요.
내가 오래 산다면 야마모토상처럼 이렇게 예쁘게 나이 들고 싶다. 그런 생각도 들면서 궁금증이 계속해서 생겨났죠.
오: 딱 맞아떨어지는 러브 스토리죠. 그렇지만 제가 책까지 낼 수 있을 줄은 몰랐어요. 당시 매주 토요일에는 탄핵 정국 속 집회를 취재하러 다니는 등 정말 바빴거든요. 2016년 12월 출판사로부터 메일을 받았는데 당장은 어렵다고 기다려줄 수 있겠냐고 답을 드렸어요. 그리고 5년이 지나서야 책을 낼 수 있게 됐죠.
‘특종병’ 있던 기자, 미공개 편지 발굴하다
민: 원래 정치부 기자로 일을 하셨잖아요.
오: 네. 일본에서 종합지 기자들은 입사하면 무조건 지방으로 파견이 되어서 5년 동안 온갖 취재를 한 다음 본사로 올 수 있어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경제 정치 사회 등 분야에서 일을 하는데 저는 정치부를 지원했죠.
그중에서도 외교 분야를 오래 취재했고, 한일 관계와 한반도, 북일 관계에 관심이 많았어요. ‘특종병’도 있었기 때문에 서울 특파원을 오면서 ‘한일 관계에 대해 무슨 특종을 할까‘ 고민을 했죠.
민: 그럼 미술에는 원래 관심이 있었나요?
오: 미술관에 자발적으로 간 적이 없어요(웃음). 고등학교 친구들이 여행을 가면 함께 미술관에 가자고 하는데 정말 저만 관심이 없었답니다. 이중섭 전시를 보러 가게 된 것도 어느 주간지에서 야마모토 여사의 인터뷰를 본 것이 계기였어요. “식민지부터 6.25 전쟁까지 어려운 시대를 겪은 분이 살아계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민: 야마모토 여사의 스토리가 기사가 될 거라고 생각하신 거군요.
오: 마침 그분이 사시는 곳이 도쿄 저의 집과 가까웠어요. 야마모토 여사에 대한 관심을 갖고 전시를 가보니 이중섭이 한국에서 ‘국민화가’라는 걸 알게 됐죠. 서울에서 일하고 있는 일본 외교관을 통해 수소문을 했는데, 마침 야마모토 여사의 친척이 일본 외무성에 계셨어요. 그분이 저도 가까운 분이라 금방 연결이 됐고 인터뷰 날짜도 빠르게 잡을 수 있었죠.
민: 수월하게 만남이 이뤄졌었네요.
오: 네 야마모토 여사와 거의 바로 옆집에 사셨던 분이 일본 도쿄에 계셨고, 그분도 이중섭 부부의 사연에 매료되어 한국어를 공부하게 되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오: 걱정을 많이 했어요. 연세도 있으시고, 사전에 말씀이 많지 않기 때문에 구체적인 질문을 하는 게 좋다는 이야기도 들었거든요. 첫 번째 인터뷰에서는 큰 기사를 써야 한다는 초조함도 있었고요. 다만 여기자에게는 조금 편하게 말씀을 하실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여성 기자로 일하며 불리함을 느낀 적이 많았는데 이럴 땐 도움이 되는구나 싶었죠.
그렇게 첫 번째 만났을 때 인상은 세련된 모습이라는 느낌이었어요. 브로치와 목걸이 등 액세서리도 잘 어울리게 하시고, 전혀 90대로 보이지 않았어요. 피부도 반짝이는 느낌이었는데,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굉장히 고생을 많이 하셨잖아요. 그럼에도 ‘곱고 우아하다‘는 분위기였어요.
처음엔 아주 조심스럽게 질문을 골라서 했는데, 이중섭과 만났을 때 이야기, 행복했던 신혼 생활을 이야기할 때는 꽤 오래 말씀을 하셨어요. 정확하게, 아주 밝은 표정으로. 마치 엊그제 일처럼.
아 정말, 내가 만약 같은 나이가 되어도 이렇게 옛날얘기를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동경심이 들었어요.
오: 제가 책을 쓰게 됐다고 둘째 아들인 야스나리상에게 말씀을 드렸더니, ‘이런 편지가 남아있다’며 보여주셨어요. 야마모토 여사가 부산에 있을 때 친정 부모님에게 보낸 편지부터 일본으로 간 뒤 주변 친구들이 야마모토 여사에게 보낸 편지. 또 이중섭을 일본으로 올 수 있게 하기 위해 야마모토의 어머님이 백방으로 노력한 편지와 기록을 보내주셨죠.
그다음 2019년 말에 야스나리 씨가 집에 보관된 이중섭이 쓴 편지를 추가로 발견하게 됐어요. 그중 일부를 저에게 공개해서 책에 싣게 되었습니다.
민: 책을 보면 이중섭의 흔적을 찾아 제주, 부산 등을 직접 다니셨어요. 인상 깊었던 점이 있나요?
오: 이중섭을 취재하기 전에 제가 북한 원산도 취재차 가본 적이 있거든요. 이중섭이 살았던 원산, 부산, 통영, 제주 모두 바다가 있다는 게 인상 깊었어요.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가 있는 곳에서 두 분이 사셨구나” 싶었고, 제주도와 부산에서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이 부부와 떼어낼 수 없는 곳이 바다였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중섭이 서울에 가서 개인전을 하다 수금에 실패해 도쿄로 오지 못하게 되었잖아요. 역사에서 가정은 없다고 하지만, 혹시 바다가 있는 부산이나 통영에 머물면 좀 더 희망을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이중섭의 삶도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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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인터뷰에 응했던 미술사학자 최열은 “과거 한국의 이중섭 연구자들은 그의 일본 가족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짙었다”며 “그런 야마모토 여사의 이야기를 오누키 씨가 듣고 풀어준다고 하니 고마운 일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오누키 씨의 책 ‘이중섭, 그 사람’은 그녀가 야마모토 여사를 인터뷰한 기록을 포함해 여러 가지 자료를 토대로 두 사람의 이야기를 시간 순서대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중섭의 편지화를 분석한 책을 발간한 최열의 인터뷰는 추후 뉴스레터에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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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금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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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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