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일상 소재로 폭주하는 현실 공포의 섬뜩한 신세계 [마데핫리뷰]
[마이데일리 = 양유진 기자] "누가 들어왔어."
달콤한 신혼을 보내던 부부는 남편 현수(이선균)가 자다 일어나 또렷하게 뱉은 이 한마디를 시작으로 악몽이 된다. 단역배우 현수는 만삭의 아내 수진(정유미)을 안심시키려 '대사였다'고 수 차례 강조하지만 갈수록 기행이 악화한다. 설상가상 아랫집 이웃이 찾아와 밤늦게 쿵쿵대는 소리에 더해 비명까지 들려온다며 주의해달라고 당부한다.
그러던 어느 날 현수는 수면 중 손톱으로 얼굴을 벅벅 긁은 탓에 피투성이가 된 채로 아침을 맞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선 깊은 밤 냉장고 속 날음식을 허겁지겁 먹어 치운 뒤 창밖으로 뛰어내리려 한다. 가까스로 현수를 낚아챈 수진은 날이 밝자 현수와 수면 전문 병원으로 향한다. 현수가 진단받은 병명은 '렘수면행동장애'. 수진은 거실 한가운데 목패에 적힌 '둘이 함께하면 극복 못 할 일이 없다'를 거듭 강조하며 지옥에서 벗어나려 애쓴다.
'잠'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2017) 연출부에 몸담았던 유재선 감독이 처음 내보이는 장편이다. 제1장, 제2장, 제3장으로 나뉘어 펼쳐지는 영화는 일상의 소재인 '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수면 중 이상행동'을 다루지만 환자가 아닌 그와 가장 친밀한 가족을 전면에 내세운다. 관객은 사랑하는 가족과 반려견을 지키고자 현수를 되돌려야만 하는 수진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따라가면서 점차 응원하게 된다.
94분 내내 예측 불가한 방향으로 돌진한다. 공포에서 미스터리, 스릴러에 이르는 동안 한시도 쉬지 않고 개성 있는 폭주를 이어간다. 특히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긴장, 불안 등의 정서가 나란히 증폭하는 데는 유재선 감독의 세련된 연출력과 배우진의 호연은 물론 미술, 소품, 조명, 음악의 공도 크다. 처음과 끝 검은 화면 속에는 현수의 코골이가 울려 퍼진다. 같은 소리이지만 영화를 관람하고 듣게 되면 초반과는 전혀 상반된 감상이 떠오른다.
이제 배우 정유미를 수식하는 대표작은 '잠'이 될 듯하다. 정유미는 수진으로서 그야말로 끝장을 본다. 결말에 다다라선 '정유미가 맞나?' 싶을 만큼 낯선 얼굴을 보여준다. 평범한 아내가 극한의 상황에 밀어 넣어지면서 뒤바뀌는 과정을 실감나게 표현한다. 수진을 따라가다보면 신념이 흔들리게 되는 묘한 체험을 하게 된다. 세 차례 합 맞춘 배우 이선균과 부부 호흡은 말할 것도 없고 모성애 연기도 진득하게 소화한다.
제76회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돼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됐으며 제56회 시체스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48회 토론토국제영화제에도 초대된 '잠'은 오는 9월 6일 극장 개봉한다. 상영 시간은 94분, 15세 이상 관람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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