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용인시장→국회의원 승승장구…뇌물로 추락한 정찬민
'뒷돈' 개발업자 도우려 공무원들에게도 "도와줘라"
친형·지인 통해 싸게 구입 후 다시 취득해 카페 운영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기자 출신으로 인구 100만 도시인 경기도 용인에서 시장에 이어 국회의원까지 지내며 승승장구하던 정찬민(65) 전 국민의힘 의원이 개발업자에게 받은 뇌물로 추락했다. 3년 전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에도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였던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되며 뒤늦게 의원직도 박탈당했다.
정 전 의원은 2018년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도전했으나 더불어민주당 후보였던 백군기 전 시장에게 밀려 낙선했고, 2년 후인 2020년 총선에서 당선돼 여의도 입성에 성공했다. 하지만 정 전 의원은 국회의원 임기 초기부터 용인시장 시절 비리로 수사 선상에 올랐다.
그는 용인시장 취임 직후인 2014년 7월부터 10월 사이 부동산 개발업자 A씨에게 “개발사업 인·허가를 도울 테니 부동산을 싸게 넘기라”고 먼저 요구해 뒷돈을 챙겼다. 그는 자신이 소유한 용인시 보라동 토지 인근의 땅을 A씨가 매수해 타운하우스 건설을 위한 주택개발사업을 진행하려고 하자 오래전부터 형·동생 사이로 지낸 부동산 중개업자 B씨를 보내 이 같은 제안을 먼저 했다.
정 전 의원은 이에 앞서 취임 직전 A씨에게 자신의 대리인 역할을 할 부동산 중개업자 B씨를 ‘내 동생’이라고 소개하며 “앞으로 사업하며 힘들거나 어려운 일이 있으면 상의하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매입하기를 원하는 토지 규모와 매입 희망가를 B씨를 통해 제안했다. 이를 통해 2016년 2월께 시가 2억 8100만원 상당의 토지를 자신의 친형이 1억 9100만원가량에 매입할 수 있게 하고 취·등록세 880만원도 대신 납부하게 했다.
정찬민, 먼저 “인·허가 대가로 땅 싸게 팔아라” 제안
정 전 의원은 또 2015년 12월에도 B씨를 통해 “보라동 토지 중 7억 6000만원 상당의 토지와 건물을 시가보다 저렴한 6억원에 매도하라”고 제안해 승낙을 받았다. 그는 친구인 C씨에게 이를 매수할 수 있도록 하고 취·등록세 2700만원도 A씨에게 내도록 했다.
아울러 2016년 1월에도 인근 2억 74만원 상당의 A씨 소유 보라동 토지를 자신의 친구에게 2억원에 팔도록 하고 취·등록세 920만원도 납부하도록 했다. 이후에도 운전기사의 배우자 명의로 2억 4400만원 상당의 A씨 토지를 2억원에 구입한 후 취·등록세 1100만원을 대신 내게 했다.
그는 A씨를 지원하기 위해 공무원들을 총동원했다. 토지 구입 자금과 시가가 큰 차이가 나지 않은 이유도 담당 공무원의 조언 때문이었다. 담당 공무원은 “공시지가 이하 거래에 대해선 국토교통부가 모니터링을 한다. 반드시 공시지가보다 높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전 의원은 이 과정에서 담당 공무원들에게 자신을 대리하던 B씨를 소개하며 “내 사촌 동생이니 보라동 사업에 대해 도움 요청이 오면 도움 주기를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 전 의원과 A씨는 향후 감사원 감사에 대비해 매수가가 시세보다 낮지 않다는 포장을 하기 위해 매수 토지를 흙을 쌓아 두는 용도로 임대 계약서 등도 형식적으로 작성하기도 했다.
체포동의안 신상발언에도 “만장일치로 통과시켜달라”
정 전 의원은 이후 자신의 친형이 싸게 구입한 보라동 토지 일부를 교환 형식으로 취득했고, C씨가 6억원에 매입한 토지는 매입가 그대로 자신의 딸이 사들이도록 했다. 해당 토지는 이후 정 전 의원 가족이 카페를 운영했고, 친형 소유의 토지도 카페 주차장으로 사용됐다.
정 전 의원은 줄곧 혐의를 전면 부인해 왔다. 그는 2021년 9월 국회 본회의 체포동의안 표결을 앞두고 신상발언을 통해 “체포동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켜 달라”며 “법원에서 명명백백하게 억울함과 결백함을 밝히겠다”고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는 법원에서 구속영장이 발부돼 구속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 도중 보석으로 석방됐던 정 의원은 1심에서 징역 7년을 받고 법정구속됐다. 1심 법원은 “뇌물액이 거액일 뿐 아니라 먼저 적극적으로 뇌물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죄질이 좋지 않고 비난 가능성도 크다”고 질타했다.
정 전 의원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2심에서는 1심 형량에 더해 보라동 토지의 몰수 명령이 부가됐다. 2심 재판부는 “정 전 의원이 항소심에 이르기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부인하고 있지만, 뇌물을 달라고 요구했다는 점이 인정된다”며 1심 판단을 유지했다.
정 전 의원은 2심 판결에도 불복해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지난 18일 2심 판단에 문제가 없다면 형을 그대로 확정했다. 끝까지 의원직을 사퇴하지 않고 버티던 그는 형 확정과 함께 국회의원직도 상실했다.
한광범 (totor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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