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경제학이 아니다’라는 말을 들었던 재무경제학의 개척자 [자본시장 이야기]
경영학은 인사관리, 마케팅관리처럼 대개 '관리(management)'라는 단어를 포함한 하위 분야들로 나뉜다. 이 중 재무나 금융 분야는 재무관리로 불리지만 가장 정확한 이름은 '재무경제학(Financial Economics)'이다. 엄연한 학문 분야를 관리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경영학은 그저 실용 학문일 뿐’이라며 천시하는 시각을 키우는 데 한몫했다고 본다.
1990년 노벨 경제학상은 해리 마코위츠와 윌리엄 샤프, 그리고 머튼 밀러가 받았다. 노벨 위원회는 이들의 공로로 '재무경제학 이론의 선구적 업적'을 명시했다. 재무경제학이 경제학의 한 분야로 탄탄히 서는 데 기여했다는 찬사. 이들은 각각 ‘포트폴리오 선택 이론’ ‘자본자산가격결정 이론’ ‘기업자본구조 이론’이라는 현대 재무경제학의 뼈대를 세웠다. 2000년에는 머튼 밀러가, 지난 6월엔 해리 마코위츠가 세상을 떠났다.
마코위츠의 학문적 업적은 '불확실성하의 의사결정'이라는 커다란 테두리 안에 있다. 불확실성이란 미래가치의 변동성을 의미하며 대개 '위험'이라는 단어로 표현된다. 그의 지적 탐구는 '포트폴리오 선택 이론'으로 결실을 맺었고, 노벨상 수상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자신의 이론을 바탕으로 헤지펀드를 만들어 성공적으로 운용했으니 어떻게 보면 그 인생 자체가 ‘불확실성하의 의사결정’을 집대성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시카고 대학 경영도서관에서 투자가치 이론에 관한 책을 읽던 어느 날, '계시(자신의 표현)'를 받았다고 마코위츠는 훗날 회고했다. 투자 관련 책들이 주식 수익률만 분석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을 발견한 것이다. 수익만 고려할 때 최적의 투자전략은 가장 큰 수익률을 얻으리라 기대되는 하나의 주식에만 투자하는 것이다(올해 초 대비 가격이 세 배나 오른 엔비디아에 재미 들린 투자자들이 월마트 주식에 투자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마코위츠는 수익률뿐 아니라 위험을 함께 고려해야 최적의 투자 전략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포트폴리오 이론의 핵심이다. 투자자들은 수익률과 위험 두 가지를 함께 고려해 투자 전략을 결정하는데, 이들이 위험회피(risk-averse) 성향을 갖고 있다면 두 변수의 최적(optimal) 조합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위험을 회피하고 싶어 한다는 것은 두 개 주식의 수익률이 같다면, 그중 위험이 낮은 주식을 선호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투자자들은 정말 위험회피적인가? 예를 들어 사람들은 보험을 들 정도로 위험을 싫어하지만, 복권을 살 정도로 위험을 사랑하기도 한다. 마코위츠는 이에 대한 연구에서 또 하나의 큰 공로를 세운다. 행태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에 대한 기여다.
위험회피적인 투자자라면 '큰 손실을 입을 수 있는 약간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작지만 확실한’ 손실을 감수할 용의가 있다. 화재가 날 때 대비해 보험을 드는 것이 좋은 사례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도박을 하거나 복권을 사기도 한다. 복권을 사는 것은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작은 가능성'을 위해 ‘작지만 확실한’ 손실(복권 가격)을 감수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이중적 성향을 어떻게 설명할까?
사실 이런 식의 의사결정은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공무원이나 임금노동자가 된다면 소득이 극단적으로 높아지거나 낮아질 가능성은 아주 작아진다. 그러나 프로야구 선수가 되려는 것은 확률이 아주 작지만 극단적으로 높은 소득을 올릴 가능성에 거는 것이다. 블루칩 주식에 투자하는 것은 임금노동자의 경우에, 테마주 투자는 프로야구 선수의 경우에 비유할 수 있다.
스승 밀턴 프리드먼을 반박한 마코위츠
마코위츠의 스승인 밀턴 프리드먼은 동료 레너드 새비지 교수와 함께 사람들의 위험선호도가 부의 수준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내놓았다. 지금 가진 재산을 지키기 위해 보험에 들지만, 더 큰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기꺼이 복권을 산다는 의미다. 특히 이런 성향은 부자이거나 가난한 사람들보다 중간 정도의 부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더 크게 나타날 것이었다. 현재 부의 수준에서 양극단으로 이동할, 다시 말해 더 가난해지거나 더 부자가 될 가능성이 큰 계층이기 때문이다.
마코위츠는 스승의 이론에 문제를 제기한다. 중간 정도의 부를 가진 사람이 위험을 선호하는 이유를, 프리드먼의 모델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예를 들어 중간 정도의 소득을 가진 사람에게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나오면 부자가 되고, 뒷면이 나오면 가난한 사람이 되는 도박을 제안했다고 치자. 이 도박을 반복적으로 계속 시행하면 앞면과 뒷면이 반반씩 나올 테니 결국 중간 정도의 부의 수준을 그대로 유지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바보가 단순히 현재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돈을 내고 도박을 하겠는가?
마코위츠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위험선호도는 그 대상이 부를 증가시키는 것이냐(상금 획득의 경우), 아니면 감소시키는 것이냐(벌금 지불)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상금 100만원을 확실히 받는 것과 1000만원을 10분의 1 확률로 받는 게임의 경우 사람들은 대개 전자를 선택(위험회피, 즉 보험 가입)한다. 하지만 벌금 100만원을 확실히 내는 것과 1000만원을 10분의 1 확률로 내야 하는 게임의 경우엔 보통 후자를 선택(위험선호, 즉 복권 매입)한다는 것이다(편집자 주: 요약하자면, 인간이란 이익이 기대될 때는 위험을 회피하지만, 손실이 예상되면 오히려 위험을 선호하는 존재란 것이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내용 아닌가? 행태경제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훗날 노벨 경제학상을 받게 되는 대니얼 카너먼이 아모스 트버스키와 함께 고안한 ‘전망 이론’에 나오는 이야기다(〈시사IN〉 제751호 ‘내가 산 주식, 자주 들여다볼수록 수익률은 나빠진다’ 기사 참조). 마코위츠의 이 논문은 포트폴리오 이론에 관한 논문과 같은 해인 1952년에 나왔다. 그러니 1979년에 세상에 나온 전망 이론보다 무려 27년이나 앞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훗날 어느 수학자 출신 저널리스트는 마코위츠의 행태경제학에 관한 공헌을 그저 그의 '부수적인 연구 활동일 뿐이었다'라고 적었다.
포트폴리오 선택 이론은 위험회피적인 투자자를 가정해 이들이 수익률과 위험만으로 주식을 평가할 때 가장 바람직한 투자전략은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이 이론이 대단한 점은 그 이전까지 ‘위험’이라고 생각되던 개념을 완전히 뒤바꿔놓았다는 데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상관관계'를 이용한 '공분산'의 개념을 위험에 도입한 것이 가장 큰 공로다. 이게 무슨 말인지 다음의 간단한 예를 통해 살펴보도록 하자.
나쁜 주식도 사야 한다고?
주식 A와 B가 있다. 모두 현재 가격이 100원씩이고 내일 가격이 오르거나 내릴 확률은 반반(50%)이라고 하자. A는 가격이 오를 경우 110원, 내릴 경우 90원이 된다. B의 경우는 각각 120원과 80원이다. 그렇다면 두 주식 모두 내일 가격의 기댓값(오를 때와 내릴 때의 가격을 합한 뒤 2로 나눈 평균값)은 100원으로 같다. 그러나 다른 점이 있다. A가 오를 때와 내릴 때의 가격 차이는 20원이다. 가격변동폭, 즉 '위험'이 20원인 것이다. B의 위험은 40원이다. 이를 정리하면 아래의 〈표 1〉과 같다.
〈표 1〉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A와 B의 내일 기댓값은 둘 다 100원으로 같다. 그렇다면 위험회피적 투자자인 당신은, 위험이 더 큰 주식 B에 투자할 이유가 전혀 없다. 만약 당신이 200원을 투자할 생각이라면 주식 A를 2주 사는 것이 낫다. 이 경우, 당신의 포트폴리오(투자한 종목들의 집합)의 기대 주가와 위험은 아래 〈표 2〉와 같아진다.
〈표 2〉를 보면, 주식 A의 가격이 오르면 220원이지만, 내린다면 180원이 된다. 가격변동폭(위험)은 40원이다. 그런데 과연 이게 최선의 투자안일까?
마코위츠의 이론은 여기서 빛난다. 이제 A와 B의 주가 움직임에 '역(-)의 상관관계'가 있다고 해보자. A의 주가가 오르면 B의 주가는 내리는 식으로, 두 주식의 주가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뜻이다. 이 경우, A와 B를 각각 1주씩 보유하고 있다면 아래 〈표 3〉과 같은 결과를 얻게 된다.
A 가격이 오를 경우 A는 110원이 되지만 B는 가격이 내려 80원이 되고 따라서 이 포트폴리오의 가치는 190원이다. 반면 A 가격이 내릴 경우 A는 90원이 되지만 B는 가격이 올라서 120원이 되니 합치면 210원이다. 가격변동폭은 20원이다. A 가격이 오르거나 내릴 확률이 반반씩이라고 했으니 포트폴리오의 기대 주가는 200원(=(190+210)/2)이 된다.
이 결과를 〈표 2〉와 비교해보자. 두 주식을 1주씩 보유했더니 기대 주가는 200원으로 같지만 위험은 40원에서 20원으로 반으로 줄었다! 훨씬 나은 결과다. 이는 전적으로 쓸모없어 보이던 주식 B에도 함께 투자한 덕분이다.
이 예는 간단하지만 학계뿐 아니라 월스트리트에도 지각변동을 가져온 중요한 사실 하나를 보여준다. 투자에서 중요한 것은 포트폴리오 구성 종목들 각각의 위험이 아니라 그들 사이의 '상관관계에서 비롯되는 위험'(이를 '공분산 위험'이라고 부른다)이라는 것이다. 한 종목의 주가는 대개 어떤 식으로든 다른 종목들의 주가와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 주가가 오를 때 대개 하이닉스도 같이 오른다. 위의 예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주식들을 자신의 포트폴리오에 담을수록 수익률을 유지하면서도 위험을 낮추게 된다는 '위험분산 효과(diversification effect)'를 보여준다(〈시사IN〉 제728호 "투자의 정석은 '분산투자', 정말 그럴까?" 참조).
위험분산 효과는 한국 시장뿐 아니라 해외 주식시장에 투자를 늘려야 하는 이유를 가장 기본적인 수준에서 설명해준다. 한국 주식과 미국 또는 유럽 주식 사이의 상관관계가 아무래도 한국 주식들끼리의 상관관계보다는 뚜렷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위험분산 효과를 통해 위험과 수익률을 최적으로 조합한 투자 전략들을 '효율적 프런티어'라고 불렀다.
위의 예에서 보았듯 A와 B의 상관관계를 고려할 경우 각각의 위험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다양한 주식에 투자할 경우 '개별 기업 수준의 위험'은 분산되어 사라진다. 반면 코로나19의 창궐 같은 좀 더 거시적인 위험은 종목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없앨 수 있는 위험이 아니다. 모든 종목들에 동시에 영향을 미치는 위험이기 때문이다. 마코위츠의 포트폴리오 이론은 윌리엄 샤프 등의 또 다른 거장들에 의해 자본자산가격결정 모형(CAPM)으로 발전되었다(〈시사IN〉 제731호 ‘위험 무릅쓴 내 투자, 얼마만큼 이익 보면 성공일까?’ 기사 참조).
마코위츠는 자신이 포트폴리오 이론으로 박사학위 논문을 쓸 당시 스스로도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고 회고한다. 그는 확실히 불확실성이 높은 삶을 살았던 게 틀림없다. 지도교수인 밀턴 프리드먼이 그의 논문을 심사하며 ‘포트폴리오 이론은 경제학이 아니라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줄 수 없다’고 말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이에 더해 프리드먼은 ‘(마코위츠의 논문은) 수학도 아니고 경영학도 아니라’고 덧붙였는데, 또 다른 지도교수가 끼어들어 ‘문학도 아니’라며 거들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마코위츠는 노벨상 기념 연설 말미에서 이 같은 사실을 밝히며 한마디 했다. "(프리드먼 교수님, 포트폴리오 이론이) 그때는 경제학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경제학이 맞습니다."
거장은 떠났지만 경제학의 판을 뒤흔든 이론은 남았다. 경제학도 수학도 경영학도 문학도 아닌 '포트폴리오 관리'는 재무경제학이었고 그래서 경제학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아예 금융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투자전략과 자산 배분을 다루는 '산업'의 이름이 되었다.
이관휘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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