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테마 형성되면 열광하지만 밸류에이션 따져 투자해야”
8월 주식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이달 들어 미국 S&P500과 코스피 모두 지난달 대비 4% 이상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월 기준 올해 최대 하락폭이다. 이상 기류는 숫자로도 나타난다. 미국 장기채 금리가 지난해 10월 수준인 4.26%까지 치솟은 것이다. 당시 채권 가격이 폭락해 금융시장은 연기금 파산 등 공포에 휩싸인 바 있다. 미국 신용평가사 피치 역시 8월 1일(현지시각) 미국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하향 조정해 시장에 공포감을 더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가 미국 신용등급을 내린 것은 2011년 이후 처음이다.
시장에 우려가 확산되면서 희소식에도 웃지 못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잡히고 있다'는 신호에도 미지근한 반응이 나오는 것이 대표적이다. 8월 10일 미국 7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3.2% 상승해 시장 예상치(3.3%)를 밑돌았지만 이날 증시는 하락 마감했다. 근원 CPI 역시 전년 동기 대비 4.7% 상승하며 시장 예상치를 0.1%p 하회했음에도 추세를 뒤집지는 못했다.
시장이 우려했던 것보다 잘 버틴다는 시각도 있다. 과거 장기채 금리 급등, 미국 신용등급 강등이 발생했을 때 주요 지수가 10% 이상 급락했는데, 이 같은 급락은 아직 나타나지 않아서다. 김한진 삼프로TV 이코노미스트는 8월 11일 '주간동아'와 인터뷰에서 "단기적으로는 큰 문제가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시장은 이미 이런 문제들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장기적으로는 어떨까. 김 이코노미스트는 "향후 중금리 시대가 도래해 좀비기업들이 굉장히 어려워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초성장주와 초우량주에 프리미엄이 붙는 시장이 펼쳐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7월 CPI 큰 감동 없어"
미국 7월 CPI가 시장 기대를 웃돌았는데 어떻게 보나."‘물가가 잡히고 있구나'라는 사실을 재확인해준 지표였다. 다만 큰 감동은 없었다. 1월 미국 근원 CPI가 5.6%였는데 이제 4.7%다. 환호할 정도는 아니다. 서비스물가는 여전히 끈적끈적한 상태다. 게다가 하반기에는 물가가 천천히 떨어질 것이라 보고 있다. 지난해 6월 CPI가 9.1%였는데 13개월 만에 3%대로 벼락같이 떨어졌다. 반면 향후 2%대에 도달하기까지 굉장히 길고 지루한 장세가 나타날 수 있다."
7월 CPI 발표 당일 주식시장이 하락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인가.
"CPI 결과 자체는 희소식이었다. 그런데 장중 미국 국채금리가 치솟으면서 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메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 연은 총재 역시 금리인상을 시사하는 발언을 해 시장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지속적으로 '올해 금리인하를 기대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내고 있다."
미국 장기채 금리가 급등한 것도 금리인하 기대가 요원해진 탓인가.
"미국 장기채 금리가 떨어지지 않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연준의 금리인하가 당장 이뤄지지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시장에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3분기 미국 국채 발행량이 예상보다 증가한 탓이다. 내년 미국 대선이 있다 보니 정부도 공격적인 예산 집행을 계획하고 있다. 부채 한도 협상도 2025년까지 유예된 만큼 정부의 재정 지출이 공격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마지막으로 일본은행의 수익률곡선제어(YCC) 정책 수정 때문이다. 일본 국채금리 상한선이 올라갔다. 이는 미국 국채시장의 큰손이던 일본 기관투자자들이 일본 국채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
"美 신용등급 강등 큰 문제 아냐"
미국 장기채 금리가 지난해 10월 수준까지 급등했는데 시장 반응은 생각보다 무덤덤하다. 왜 이 같은 차이가 나타날까."지난해와 올해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공포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요즘은 시장이 인플레이션에 대해 상대적으로 여유를 갖고 있다. 시장의 관심이 틀어진 것이다.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공포가 컸던 지난해 10월과는 다르다. 물가상승률이 2%대에 접어들면서 연준의 금리인하 시점이 언제가 될지로 관심의 축이 이동했다. 오히려 채권 수급 문제 때문에 장기채 금리가 상승한 측면이 있다. 미국 재무부는 그간 부채 한도 협상 문제로 국채 발행을 미뤄왔는데, 이 문제가 일단 해결되면서 본격적으로 국채를 발행하고 있다."
미국 신용등급 하락과 지역은행 신용등급 하락 등 여러 부정적 소식도 잇따르는데 시장 반응은 생각보다 덤덤하다. 시장이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것인가, 아니면 큰 문제가 아닌 것인가.
"단기적으로는 큰 문제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신용평가사 피치가 미국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내린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을 재확인해준 이벤트였다. 내년 대선까지 재정 지출이 늘어나 미국 재정적자가 커지리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무디스가 미국 지역은행 10곳의 신용등급을 강등한 것 역시 마찬가지다. 더욱이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 이후 4개월가량 시차를 두고 결정됐다. SVB 사태 직후 이 같은 조치가 이어졌다면 신용경색이 발생하면서 악순환 고리로 작용했을 수 있다. 지금은 그때와 분위기가 다르다."
이 시점에 주의 깊게 봐야 할 지표가 있다면 무엇인가.
"미국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 세부 항목이다. '물가와 금리가 빨리 안정될 것이고, 연준도 피벗을 할 것이다. 그러니 주식시장도 지긋지긋한 상태에서 탈출할 가능성이 크다'며 기대감을 높일 수 있는데 냉정해야 한다. 미국 PCE 구성 항목 중 두 가지가 안정되지 않고 있다(그래프 참조). 의료 서비스와 기타 서비스다. 주거비 증가율은 향후 떨어질 것이라 본다. 하지만 운송비 상승률도 쉽게 떨어질까. 인건비와 밀접한 위락 서비스 비용 역시 쉽게 안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현재 인력 부족 문제를 겪고 있다. 장기채 금리가 일시적으로 3%대가 깨질 수는 있어도 2%대 중반에는 도달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중금리 시대가 도래할 전망이다."
"재무가 취약한 좀비기업은 굉장히 어려워질 것이다. 지금도 한국과 미국 부도율이 계속 올라가고 있다. 은행과 제2금융권의 연체율 역시 증가 추세다. 빅테크 기업은 잘나간다지만 한계기업은 고전하고 있다. 양극화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주식시장에서도 2개 흐름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인공지능(AI) 테마처럼 거시경제 환경을 뛰어넘는 성장성을 보이는 초성장주와 주가수익비율(PER) 등이 낮은 초우량주로 쏠림 현상이 나타날 전망이다. 거시경제 상황을 고려하지 않게 만들 만큼 가슴 설레게 하는 테마가 나오면 그쪽으로 투자 자금이 쏠릴 공산이 크다. 반대로 성장성이 높지 않지만 글로벌 독과점을 구축한 소비재 기업, 제약·바이오 기업, 헬스케어 기업 등 우량기업도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어떤 산업이 초성장주 후보에 오를 수 있을까.
"한국의 성장 섹터에 속하는 기업으로는 IT나 2차전지 분야 소부장 기업이 있다. 이외에도 자원, K-콘텐츠, 방위산업, 신재생에너지와 관련해 경쟁력 있는 기업도 성장 섹터에 속한다고 본다. 상반기 주가가 많이 상승했던 AI 관련 종목은 하반기에 불리할 수 있다. 에너지가 넘치는 강한 장이 아닌 만큼 고밸류에이션 종목을 다시금 끌어올리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소외된 틈새 종목 사이에서 성장주를 발굴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기업 부도율 올라가고 있다"
"미·중 무역 분쟁이나 글로벌 분업 등이 나타나 자원 이기주의 현상이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 관련 테마에 대한 관심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종합상사처럼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춘 기업들의 역할도 커질 수 있다. 워런 버핏이 일본 종합상사 주식을 많이 산 것도 같은 흐름으로 보인다."
2차전지주에 이어 초전도체주까지 테마주 열풍이 불고 있는데, 어떻게 보나.
"주식시장은 항상 그랬다. 과거 BBIG(배터리·바이오·인터넷·게임) 열풍이 불어 이들 산업군에 속한 기업의 주가가 급등했는데, 현재 살아남은 것은 배터리 산업뿐이다. 사람들은 테마가 형성되면 열광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켄 피셔 피셔인베스트먼트 회장은 '자산시장에서 영원히 올라가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굴곡이 있기 때문에 밸류에이션을 봐야 한다. 초성장주라도 밸류에이션이 높다면 투자하지 않는 것이 좋다."
초성장주의 경우 적정가에 대한 평가가 어려운데 어떻게 해야 하나.
"향후 주식투자에서는 산업 이해도가 점점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기술에 대한 전문적인 이해가 없더라도 시장에 퍼진 기대감이 지나치게 앞서간 것인지, 현실성 있는 시각인지를 판단할 능력은 갖춰야 한다. 높은 성장성을 보이는 기업이 미래에도 높은 마진율을 유지할 수 있을지 판단하는 능력 또한 중요하다. '어떻게 그런 것을 판단할 수 있을까' 우려하는 투자자도 있을 테다. 여러 전문가의 얘기를 다방면에서 듣다 보면 어느 정도 판단에 대한 감이 생긴다. 기술력을 평가할 수 있는 판단력을 키우는 노력이 필요한 시기다."
최진렬 기자 displ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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