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처럼 폭염에 이름 붙이자"…세계가 바뀐 기후에 대응하는 법

윤세미 기자 2023. 8. 1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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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미친 날씨' 생존法⑤
[편집자주] 기후위기가 현실이 됐다. 선을 넘은 더위와 비가 우리와 일상뿐 아니라 생명까지 위협한다. 그동안 해오던 방식으론 폭염, 폭우 등 기상이변에 따른 피해를 막을 수 없다. 획기적인 대책이 필요한 때다.

17일(현지시간) 하와이 마우이섬 산불로 초토화된 라하이나 지역의 모습. 이번 산불로 최소 111명이 숨졌다. /AFPBBNews=뉴스1
지구촌이 폭염과 산불, 폭우 등 전례 없는 기상 이변에 몸살을 앓고 있다. 기상 이변이 대규모 참사 및 재난으로 이어지면서 기존 방재 대책만으론 대응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극단적 기후가 뉴노멀(새로운 일상)로 자리 잡은 가운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전 세계가 머리를 싸매고 있다.
끊이지 않는 폭염·폭우·산불… 빈도 늘고 강도 세지고
기후 재난은 이제 전 세계의 일상이 됐다. 1년 내내 화창한 날씨로 유명한 캘리포니아는 올 초 폭우와 폭설로 최악의 새해를 맞이했다. 17명 이상이 사망하고 수십만 가구가 정전 피해를 봤다. 유럽은 봄부터 이른 폭염에 시달렸다. 수년 동안 심각한 가뭄이 이어진 스페인은 4월부터 일부 지역 기온이 섭씨 38.8도(℃)까지 치솟으며 평년 기온을 10℃ 이상 웃돌았다.

여름이 깊어지면서 폭염의 강도는 더 심해졌다. 이탈리아 수도 로마는 지난달 최고 기온이 41.8℃로 관측돼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했고 남부 시칠리아 기온은 47.4℃까지 뛰었다. 반면 밀라노 등 북부엔 강력한 폭풍우와 우박이 몰아쳐 대조를 이뤘다. 인도 프라야그라지 지역의 최고 기온도 45℃에 육박했다. 미국도 텍사스, 플로리다, 애리조나, 캘리포니아주가 강한 고기압이 고온을 가두는 '열돔 현상'으로 40℃ 넘는 폭염에 시달렸다.

지난 10일(현지시간) 스페인 일부 지역 기온이 45℃에 육박한 가운데 발렌시아 남부 사티바 분수대에서 방문객들이 열기를 식히고 있다./AFPBBNews=뉴스1

폭우도 세계 곳곳을 강타했다. 지난달 미국 북동부 버몬트주에선 2개월 동안 내릴 비가 하루 만에 쏟아졌다. 중국 수도 베이징과 인근 허베이성 등엔 140년 만에 최악의 폭우가 쏟아지면서 100명 넘게 숨지거나 실종됐다. 인도에선 몬순 기간 45년 만에 최악의 폭우가 내리면서 600명 넘게 사망했다.

산불도 극성이다. 6월 북미 전역에 최악의 대기오염을 초래한 캐나다 산불은 두 달 넘게 이어지며 남한 면적의 약 90%를 태웠다. 스페인과 그리스에서도 대형 산불이 번졌고 '지상낙원' 하와이에서도 일주일 넘게 산불이 계속돼 마우이섬이 잿더미로 변하고 100명 넘는 사망자가 나왔다. 불길을 피해 바다에 뛰어들었다가 혹은 도망치던 중 자동차나 길가에서 화마에 휩싸여 사망했다. 영화에서나 보던 재앙이 세계 곳곳에서 현실이 됐다.
산불 끄기에 앞서 나무들이 어떤지 신경 썼더라면
자연재해를 인간이 완벽히 예측해 막아내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각국의 대책은 피해를 최소화하고 빠른 회복을 돕는 데 맞춰져 있다. 위험을 정확히 평가하고 피해가 예상되는 지역에 미리 경보를 발령하고 행동 절차를 안내하며 재난 후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피해 지역을 신속히 복구하는 식이다.

문제는 이런 원칙이 늘 지켜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100여년 만에 최악의 산불 참사가 된 하와이 산불이 예다. 가디언에 따르면 하와이에선 2021년부터 불에 잘 타는 외래종 초목 때문에 산불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경고가 나왔지만 묵살된 것으로 나타났다. 미리 초목 관리를 했더라면 화염의 강도를 낮춰 불길이 번지는 속도도 늦출 수 있었으리란 비판이 많다. 이번 산불이 인재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캐나다 역시 예산 삭감으로 인한 산불 예방 대책이 미흡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올해 산불 발생 지역인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경우 2021년 산불 피해로 인해 8억캐나다달러(7900억원)를 썼음에도 지난해 산불 예방 예산은 320만캐나다달러밖에 편성되지 않았다. 마이크 플래너건 톰슨리버스대학 산불 연구원은 뉴욕타임스(NYT)를 통해 "불을 끄는 게 산불의 해결책이라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면서 적극적인 예방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럽의 경우 산불 예방을 위해 화재에 취약한 정도를 평가하는 식생 조사를 진행했으며 이에 따른 지도화 작업을 마쳤다. 장기적으로는 가연성 높은 초목으로 이뤄진 숲은 구성을 다양화하고 단기적으로는 불이 나더라도 넓은 지역으로 번지지 않도록 방화대나 연못 같은 완충 지대를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지난 6월 3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록펠러센터 전망대에서 캐나다 산불로 뿌예진 하늘을 관광객들이 바라보고 있다./AFPBBNews=뉴스1
'폭우 막아라' 中 해면도시 프로젝트… 강도 높이는 폭우엔 '역부족'
중국은 계속된 도시 침수로 폭우 피해 예방을 위해 '해면(스펀지)도시' 프로젝트를 추진한 케이스다. 2013년 865억위안(15조8500억원)을 투자해 16개 도시에 시범 공사를 추진했고 2030년 해면도시 비중을 80%까지 끌어올리겠단 목표를 제시했다. 이 프로젝트는 투수성 아스팔트를 사용하고 운하와 연못을 건설하는 한편 습지를 복원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자연 기반 방식을 활용해 배수와 저장 능력을 높여 주요 도시의 폭우 피해 회복력을 높이고 빗물을 더 잘 활용하겠다는 취지다. 도시 환경 개선 효과도 기대됐다.

그러나 진전은 더뎠고 여전히 많은 도시는 폭우에 취약하다는 평가다. 중국 정부에 따르면 지난달에만 홍수 관련 재해로 142명이 실종됐고 157억8000만위안의 직접적 경제 손실이 발생했다.

로이터는 해면도시 대책이 전면 시행됐더라도 재난을 막기엔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예컨대 허난성 정저우시는 2016년부터 5년 동안 약 600억위안을 들여 해면도시 프로젝트에 쏟아부었지만 2021년 역대급 강우량에 침수를 피하지 못했다. 해면도시는 하루 강우량 200㎜까지 버틸 수 있게 설계됐지만 2021년 7월 정저우시에선 한 시간 만에 200㎜ 비가 쏟아졌다.

지난 3일(현지시간) 중국 베이징에서 폭우로 망가진 다리의 모습./AFPBBNews=뉴스1
태풍처럼 폭염에 등급 이름 붙이기도…"인프라 전면 재점검 필요"
해외에선 폭우나 산불처럼 피해가 가시화되지 않아 '소리 없는 살인자'로 불리는 폭염 예방을 위해 폭염에 등급을 매기고 이름을 붙이는 작업도 진행되고 있다. 폭염에 태풍처럼 이름과 등급을 붙이면 그 위험이 훨씬 구체적으로 다가와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스페인에서 가장 더운 지역인 세비야는 지난해부터 건강에 미치는 영향 등에 따라 폭염을 1~3등급으로 분류하기 시작했고 로스앤젤레스(LA) 등 미국 서부 도시들도 비슷한 작업을 논의 중이다.

전문가들은 많은 국가가 일상화된 기후 변화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며 새 환경에 맞는 체계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네 반데카스틸레 유럽환경청(EEA) 연구원은 NYT를 통해 "각국 정부가 전체 행정 단위를 동원해야 한다"며 "건물부터 교통, 보건, 농업, 생산성까지 전 분야를 재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기후 변화를 억제하기 위한 온실가스 감축 노력도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미국 샌디에이고대학 기후연구소의 마틴 랄프 박사는 "기후 예측 모델은 재해가 더 빈번해질 것으로 분석한다"면서 "결국 극단적 기후로 인간이 입는 피해는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윤세미 기자 spring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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