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억원 오가는 은밀한 거래…마약도 아닌데

최우영 기자 2023. 8. 1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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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인마켓]
게임 계정·아이템 소유권은 게임사에 귀속돼
'내돈 내산' 캐릭터도 판매하면 계정 제재
게임 내 재화 소유권 유저에 돌려주는 P2E 게임 한국·중국만 불법
[편집자주] 남녀노소 즐기는 게임, 이를 지탱하는 국내외 시장환경과 뒷이야기들을 다룹니다.

거래자의 신원은 철저하게 익명. 상대방이 누군지 모르지만 몇백만원부터 수억원까지 고가의 돈이 오간다. 사설 사이트의 에스크로(안전결제) 서비스를 활용한다. 거래 대상이 되는 콘텐츠를 직접 만들어 서비스하는 업체는 음지에서 이뤄지는 거래내역을 전혀 파악할 길이 없다. 모든 게 철저한 비밀에 부쳐지기 때문이다.
마약이나 불법 무기 이야기가 아니다. 하루에도 수백개씩 사고 팔리는 게임 계정과 아이템 거래는 이처럼 마약 거래를 방불케 할 정도로 은밀하게 이뤄진다. 아이템이나 계정 거래 자체가 법에 위배되는 행위는 아니다. 하지만 게임을 서비스하는 업체에게 콘텐츠의 소유권이 귀속되기에, 허가 받지 않은 거래가 적발될 경우 공들여 키운 캐릭터와 어렵게 얻은 아이템이 순식간에 게임사의 손에 의해 사라질 수 있다.
계정거래, 불법은 아니지만 '이용약관 위배'
게임 계정과 아이템은 주로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 위주로 거래된다. 게임의 인기가 치솟을수록 거래 가격도 올라간다. 리니지 등 인기 게임의 경우 호가가 10억원을 넘어가는 계정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게임 내에서 희귀한 확률로 드랍되는 아이템도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경우가 많다. 자연스레 유저들은 이를 현금화하려고 한다.
다만 거의 모든 게임사는 계정과 아이템의 현금 거래를 이용약관과 운영정책 조항들로 규제하고 있다. 게임 환경 외부에서의 거래는 게임 내 경제시스템을 붕괴시킬 수 있고, 무엇보다 게임을 빌미로 한 사기행위가 주로 현금거래에서 발생해 부수적인 피해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계정 및 아이템 현금거래가 적발되면 계정 영구정지와 아이템 회수 등의 조치까지 당할 수 있다. 일부 유저들은 이 같은 약관이 불공정하다는 불만을 제기한 바 있으나 공정거래위원회 등은 수차례 이러한 약관에 문제가 없다는 유권해석을 내려왔다.
'내돈 내산' 게임 캐릭터, 왜 마음대로 못 팔까
계정거래 사이트 바로템에서 판매 중인 리니지W 계정들. /사진=바로템 캡처
일부 유저들은 여전히 이 같은 게임 운영정책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자신이 돈을 주고 산 계정, 시간과 돈을 들여 육성한 캐릭터, 게임을 하면서 운과 노력을 더해 얻은 아이템에 대한 처분은 온전히 유저 스스로에게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러한 주장이 법적 타당성을 가지려면 게임 계정과 아이템 등에 대한 '재산권'이 인정돼야 한다. 신민영 법무법인 호암 대표변호사는 "노점상 자리가 현실적인 가치가 있지만, 재산권으로 인정받지 못하듯 가치와 재산권은 별개의 문제"라며 "게임 계정과 아이템이 지금 시점에서 당장 재산으로 인정받기는 쉽지 않다"고 바라봤다.
음지로 스며든 계정거래, 중개사이트 배만 불렸다
아이템매니아의 메이플스토리 계정 판매글. /사진=아이템매니아 캡처
계정 및 아이템 거래 자체가 법에 저촉되는 행위는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게임 안에서 불법적인 행위(해킹)를 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획득한 아이템을, 베팅 등에 사용하지 않는 경우 거래해도 된다.
불법은 아니되 적발되면 '게임사의 제재'를 받는 계정거래를 위해 등장한 게 게임거래 전문 사이트들이다. 바로템, 아이렘매니아, 아이템베이 등이다. 이들은 에스크로 서비스를 제공해 유저들 간 안전거래를 돕고, 유저들이 거래를 위해 입출금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수료로 매출을 올린다. 아이템베이를 운영하는 아이엠아이는 이 같은 수수료를 통해 지난해 460억원 넘는 영업수익을 올렸다.
P2E 게임의 장점 "게임에서 번 돈은 유저에게 귀속"
P2E 게임에 집중하고 있는 위메이드의 장현국 대표. /사진=위메이드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P2E(Play to Earn) 게임은 게임 내 재화의 소유권이 모두 게임사에 귀속되는 과거 게임들과 달리, 게임 내 재화가 유저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설계됐다. 게임 아이템 등을 게임 내에서 통용되는 화폐로 교환하고, 이를 가상화폐로 환전해 유저의 지갑에 입금해줄 수 있다.
다만 P2E 게임업계는 이 같은 환전이 게임을 통해 '떼돈'을 버는 구조는 아니라고 설명한다. 이 때문에 P2E업계를 선도하는 위메이드의 경우 '돈을 벌기 위해 게임을 한다'는 의미의 'P2E'보다는 '게임을 하면서 돈도 번다'는 의미의 'P&E'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한다.
P2E든 P&E든…금지된 두 나라 '중국과 한국'
불법 사행성 아케이드 게임장. /사진=뉴시스
유저들의 요구를 반영해 전 세계 게임들이 P2E를 접목하는 추세지만, 중국과 한국에선 P2E가 허용되지 않는다. 두 나라 규제당국은 주로 사행성 요소 등을 이유로 들고 있다.

특히 한국은 2000년대 중반 도박성 아케이드게임 '바다이야기'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며 게임 전반에 걸쳐 무거운 규제가 씌워졌다. '게임'이라는 광활한 카테고리에 속한다는 이유만으로 PC·온라인게임, 콘솔게임, 모바일게임 모두 게임 내 재화의 거래나 현금화가 원천적으로 금지 됐다. 업계에선 과거와 달라진 게임산업의 양상, 도박성 아케이드게임과 온라인·모바일 게임의 차이를 들며 P2E 규제 완화를 요청하지만 여전히 규제당국의 '게임'에 대한 시선은 20여년 전 바다이야기에 머물러있는 게 현실이다.

업계 관계자는 "P2E 게임 기술력을 갖춘 한국 업체들이 게임을 글로벌 출시해도 중국과 한국만 제외하고 선보이는 경우가 이어지고 있다"며 "자국 내에서 서비스하지 못하는 게임을 외국에 판매한다는 것은 수출 경쟁에서 불리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고 했다.

최우영 기자 you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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