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모습 나 아닌 진짜 나는 누구인가요

한겨레 2023. 8. 19.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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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월간 풍경소리]

픽사베이

아침 햇살을 받으며 책을 보고 있었습니다. 어디선가 까만 나비 한 마리가 날아왔습니다. 기웃거리며 왔다, 갔다 하다 어디론가 날아갑니다. 참 신기합니다. 귀가 어두워지니 말이 없어집니다. 강의는 합니다만 말을 못 알아들으니 말 자체가 줄어듭니다. 참 신기합니다. 노자를 다시 읽게 됩니다. 일신상의 사고가 있으면 읽을 수 없습니다. 지금 여기에 있을 수 있음이 고맙습니다. 참 신기합니다.

여기 있다는 것, 웃기도 하고 고개 끄떡끄떡할 수 있음은 사고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내 신상뿐만 아니라 가정에도 사고가 없기에 여기 있습니다. ‘평범한 일상’ 참 감사합니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고마움 얼마나 좋습니까? 책을 볼 수 있고 나비가 기웃거리는 것을 보니 모두 고맙습니다. 고마워하는 것도 버릇이 됩니다. 웃는지 모르고 웃듯이 계속 말하면 버릇이 됩니다. 참 고마운 일입니다. 좋은 버릇을 가지고 살 것인가, 나쁜 버릇을 가지고 살 것인가는 선택의 문제입니다.

30년 전 90년대 공주 계룡산 동학사 근처에서 잠깐 살았습니다. 아내와 함께 해가 뜰 때까지 새벽 산책을 했습니다. 한번은 혼자 가게 되었지요. 혼자서 보고 들으며 좋은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가득했습니다. 남매탑까지 3시간 정도 돌았습니다. 신통한 게 없었어요. 집에 돌아왔는데 “아무것도 없어 뭐야?”라고 말하며 허망했습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는 것이 나에게 가장 고마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범함이 얼마나 좋습니까? 사도 바오로의 말씀대로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도덕경 12장을 봅시다. 같은 내용이 5번 반복됩니다. 무지개와 같은 오색(온갖 색깔)이 눈을 멀게 합니다. 꽃이 핀다는 뜻은 생명이 있다는 말입니다. 생명이 있어 꽃이 핍니다. 하지만 생명은 보이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눈으로 봅니다. 그 누군가는 보이지 않습니다. 꽃은 자라는데 뿌리는 드러나지 않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생명이 있으니 살아 있습니다. 겉모양이 사람 눈을 멀게 합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그것입니다.

“To be is to stand for sth”라는 말 아시지요.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보여줍니다. 지금 여기에 앉아 있음은 살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정말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그분을 보는 것입니다. 겉모양에 홀려서 눈이 멀어집니다. 겉에 보이는 모습만 보니 정말로 보아야 할 것은 보지 못합니다.

동학사 산책에서 특별한 경험이 없었어도 좋았습니다. 힘들게 사는 것이 버릇 되어 쉽게 사는 것을 모릅니다. 성인은 인간이 만들어 낸 것에 오염되지 않는 사람입니다. 자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성인은 인위적인 것들을 버리고 자연적인 것을 취합니다. 성인이 될 수 있습니다. 성인이 되기로 마음을 먹고 선택하면 하늘은 성인이 되게 합니다. 외향에 신경 쓰지 말고 내적인 것에 마음을 기울입시다. 로마 전성기에 산해진미를 먹고 토하고 또 먹었다고 합니다. 배가 알려 주는 대로 살면 건강하게 살 수 있는데 혀가 허용하지 않습니다. 배는 적당하나 눈과 혀는 끝이 없습니다. 겉모습에 속지 말고 안에 있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시다.

노자는 먹고 보고 듣고 하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의 내용이 근본적으로 헛된 것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이현주 목사와 함께 마음공부를 하는 순천사랑어린배움터 사람들. 사진 순천사랑어린배움터 제공

13장으로 넘어갑니다. 칭찬과 비난이 오면 깜짝 놀라지 말고 ‘척하라’ 합니다. 왜 척하라고 했을까요. 상대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는 놀랄 일이 아닙니다. 시늉하십시오. 칭찬, 별거 아닙니다. 마음이 화나고 뒤틀린 상대의 반응도 역시 중요하지 않습니다.

무위당 선생의 일화입니다. 암이 전신에 전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병문안을 하러 갔습니다. 병과 싸우는 투병이라 말하니 대꾸하셨습니다. “암세포가 나 아닌가. 왜 싸워라 해. 잘 모시고 가야지.” 대단한 분입니다. 큰 병을 몸처럼 귀하게 여기라며, 몸이 있어 병에 걸렸으니 몸과 병은 하나라고 했습니다.

의사가 하라는 대로 하지, 싸우지는 않는다는 뜻이지요. 어제 죽었으면 병들 이유가 없습니다.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고마워하셨습니다. 몸이 있으니 병에 걸린다며. 세상을 보고 자기를 보며 내 몸을 귀하게 여긴 것처럼 다른 모든 것, 병까지도 귀하게 여기십시오. 노자가 너무 큰 세상을 이야기해서 우리에게 대단히 낯섭니다.

다음은 14장입니다. ‘이름’은 무엇입니까. 이름은 구분하는 것입니다. 이름은 존재를 동떨어지게 하고 분리합니다. 하느님은 이름이 없습니다. 어떤 것도 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 몸 안에 있으니 분리될 수 없습니다. 서로 섞여 있어 이름을 지을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을 보지 못합니다. 하느님을 본 사람은 죽습니다. 너무 커서. 우리가 그 안에 있을 뿐입니다.

도의 본체로 가는 길은 우선 감각적인 의식을 넘어서야 합니다. 감각의식을 넘어서면 경계와 특성이 사라진 순수[空]에 이르게 됩니다. 이 순수에 대해서 여러 설명이 있습니다. 마지막엔 이 존재 의식을 지켜보는 수행으로 절대 본체에 이르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15장을 봅시다. 깨달은 선비들은 조심성 있게 차근차근 살아갑니다. 인사동 귀천이라는 다방에서 서예가 민병삼을 만났습니다. 붓글씨 작품 10장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그의 눈을 보고 놀랐어요. 썩은 동태처럼 초점이나 촉기가 없었습니다. 제가 대상에 맞추었지요. 그분의 실체를 진정 보려고 하면 겉모습도 보면서 안 보이는 것도 봐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픽사베이

의식 수준을 연구한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에 의하면, 사람은 의식 수준을 3단계로 나누었습니다. Having, Doing, Being의 차원으로. 처음엔 '무엇을 가지고 싶은(Having)' 욕망단계에 있다가 수준이 높아지면 '무엇을 하고 싶은(Doing)' 성취 단계로 변화합니다. 그 상태에서 더욱 의식이 진화되면 '어떠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Being)' 차원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이처럼 단계에 따라 생각이 달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 사람이 자신의 존재가치를 어느 것에 맞추느냐에 차이입니다. 결국, 사람의 가치관이지요. 의식이 높아지면 겉으로 드러나는 나의 모습보다는 진짜 나의 모습, 존재 그 자체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스스로 솔직하게 우러나오는 즐거운 마음으로 인생이라는 여행을 떠납시다. 자연은 일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엔 ‘부득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 뜻은 무엇일까요. 그럴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열매는 꽃을 피우기 위해 노력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부득이 꽃이 핍니다. 나무는 바람이 불어도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입니다. 흔들리면서도 짜증을 내지 않습니다. 나무와 바람처럼 그렇게 살아갑시다.

그것이 2500년 전 노자가 부르짖던 무위자연(無爲自然)입니다.

정리 최백용( 관옥 이현주 목사가 경기도 지금여기교회에서 한 노자소감 강의록)

***이 시리즈는 전남 순천 사랑어린배움터 마루 김민해 목사가 발간하는 <월간 풍경소리>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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