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사고… SPC 오너 일가 '배당금 수백억원' 챙기기 전 했어야 할 일

이지원 기자 2023. 8. 19.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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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SPC 계열사서 또 사망사고
1년 만에 노동자 또 사망해
안전대책 로드맵 아직도 안 내놔
공허한 1000억원 투자 플랜
SPC 가맹점주 벼랑에 몰렸는데
허영인 일가 배당금 두둑이 챙겨

# 지난해 20대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해 논란의 도마에 올랐던 SPC에서 또다시 사망사고가 터졌다. SPC가 대국민 사과문까지 발표하면서 '재발 방지 대책'을 쏟아냈다는 점을 감안하면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 하지만 SPC가 과연 사고를 막기 위해 '진심'을 다했는지는 살펴볼 일이다. 무엇보다 지난해 사고 직후 안전대책에 1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지만, 지금까지 구체적인 로드맵을 내놓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SPC 오너 일가는 지난해 수백억원대 배당금을 버젓이 챙겨갔다.

# 사법 절차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경찰과 고용노동부는 지난 2월 강동석 전 SPL 대표 등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지만, 검찰은 아직까지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 SPC 오너인 허영인 회장은 중대재해처벌법의 대상에 오르지도 않았다. 검찰이 늑장을 부리는 사이 또 다른 노동자가 사고를 당한 셈이다.

# 매출액 3조원대 대기업 SPC에선 왜 이런 사고가 반복되는 걸까. 오너인 허영인 회장까지 나서서 강조한 '안전경영'은 그렇게 도달하기 어려운 목표인 걸까. SPC 오너 일가에 노동자를 안전하게 만들겠다는 의지가 있는 걸까.

허영인 SPC 회장 일가는 지난해에도 수백억원대 배당금을 챙겼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New SPC로 거듭나겠다." 국내 최대 제빵업체 SPC그룹(이하 SPC)은 올해 1월 '완전히 새로운 SPC로 거듭나겠다'고 선포했다. 이와 함께 안전경영을 위해 3년간 10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플랜도 내놨다. 지난해 10월 SPC 계열사인 SPL 평택공장에서 20대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한 지 3개월여 만이었다. 사고 발생을 계기로 진행된 고용노동부의 특별감독에서 적발된 위반 사항도 100% 시정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안전경영을 위해 1000억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의 실행 방안을 담은 구체적인 로드맵은 내놓지 않았다. SPC 측은 지난 4월에야 "안전장비 도입·시설보수·작업환경 개선 등에 165억원을 투자했다"면서 "올해 말까지 450억원을 추가로 투자해 ISO 45001 인증 확대·외부 안전진단 실시를 한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턱없이 허술한 밑그림이란 비판을 받았다.

이 때문인지 구체적인 로드맵을 공개하지 않은 채 막대한 금액만 제시한 SPC의 진짜 속내가 무엇인지 의구심을 품는 이들이 갈수록 늘어났다. 이런 의문이 커질 때마다 SPC 측은 "진정성을 믿어달라"고 항변했지만, 그 우려는 끝내 현실이 됐다.

지난 8일 SPC 계열의 샤니 성남공장에서 50대 노동자 A씨가 반죽기계에 몸이 끼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A씨는 반죽 볼(리프트와 연결)과 분할기 사이에서 상체를 숙이고 작업을 하던 중 반죽 볼이 하강하면서 끼임사고를 당했다.

함께 작업 중이던 B씨가 A씨의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채 작동 버튼을 눌러 반죽 볼이 하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돼 치료를 받았지만 10일 결국 숨을 거뒀다.

SPL에서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또 다른 사망사고가 발생한 셈이다. 그렇다면 왜 SPC에선 이런 사고가 반복되는 걸까. 'New SPC'는 공허한 구호에 그치는 걸까.

지난 8월 8일 SPC 계열사인 샤니 성남공장에서 끼임사고를 당한 노동자가 결국 세상을 떠났다.[사진=뉴시스]

■ 원인➊ 안일한 안전조치 = 무엇보다 SPC의 '안일함'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허영인 회장까지 나서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안전조치를 강화했다며 보도자료를 쏟아냈지만 정작 현장에 존재하는 위험요인은 꼼꼼하게 살피지 않았단 거다.

일례로 이번 사고의 경우, 리프트가 하강할 때 경보음조차 울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자 A씨로선 경보음이 울리지 않아 리프트가 내려오는 걸 모른 채 작업하다 사고를 당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

SPC측은 "법령과 규칙에 따라 안전장치를 설치했다"고 밝혔지만, 사실관계는 더 따져봐야 한다. 설사 SPC의 주장대로 안전장치를 제대로 갖췄다고 하더라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강태선 서울사이버대(안전관리학) 교수는 "리프트가 움직일 때 경보음을 울려 주의를 주는 건 기본 시스템이지만, 이마저도 없었다는 건 SPC의 안일함을 보여주는 사례"라면서 "함께 일하던 작업자의 시야 안에 A씨가 있었는지, (동료가) A씨의 상황을 인지하지 못할 만큼 바쁜 작업 환경은 아니었는지 등도 짚어봐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더욱이 이번 사고가 발생한 샤니 성남공장에선 이전에도 유사한 사고가 발생했다.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021년 7월에도 반죽 분할기에 노동자의 손가락이 끼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해당 노동자는 반죽 분할기 아래에서 반죽 찌꺼기를 치우고 있었지만, 동료 노동자가 이를 인지하지 못한 채 작동 버튼을 눌러 사고를 당했다. SPC의 안일한 조치에 유사한 사고가 반복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원인➋ 허술한 제도 = 노동자가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해도 제대로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지난해 1월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숱하다.

SPC그룹은 안전 경영을 강화하겠다며 올해 1월 'New SPC'를 선포했다. 하지만 안전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사진=뉴시스]

중대재해처벌법상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거나, 동일한 사고로 2명 이상의 부상자(전치 6개월 이상)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처벌받을 수 있다. 지난해 사고가 발생한 SPL도 중대재해처벌법 대상 사업장이었다.

경찰과 고용노동부는 지난 2월 강동석 전 SPL 대표 등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당초 "SPC 오너인 허영인 회장을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지만, 고용노동부는 "SPL은 별도의 법인인 만큼 SPC에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6개월여가 흘렀지만 검찰은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 고용노동부 역시 검찰에 고발한 것으로 자신들의 역할은 끝났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처럼 검찰이 늑장을 부리는 사이 SPL 사고는 점차 사람들에게서 잊혔고, 그사이 또 다른 사망사고가 터졌다.

이번 사고 이후에도 고용노동부는 샤니의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 등을 조사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 눈높이에 맞는 처벌과 책임 규명이 이뤄질지는 지켜봐야 한다.

강태선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검찰과 법원이 신뢰할 수 있는 판단을 내려야 한다. (기업이) 진정성 있는 개선조치를 했음에도 처벌 일변도로 가는 것도 문제지만, 시간을 질질 끌면서 기업 봐주기로 끝나서도 안 된다. 모두 중대재해를 예방하는 데 나쁜 영향만 미칠 가능성이 높다. 안전보건 분야에 관해 사법당국의 미흡한 부분은 고용노동부와 긴밀하게 협의해 중대재해처벌법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 원인➌ 욕심 = 사실 안전사고의 재발을 막는 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기업의 문화와 시스템을 통째로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긴 시간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오너와 경영진의 의지가 중요하다.

하지만 SPC 오너에게 그런 의지가 있는지엔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허영인 회장 일가가 지난해에도 200억원이 훌쩍 넘는 배당금을 챙겨갔다. SPC는 주주환원 정책의 일환으로 2014년부터 2021년까지 소액주주에게 더 많은 배당금을 지급하는 차등배당을 실시해 왔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지난해엔 차등배당도 하지 않았다.

배당금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SPC삼립은 지난해 138억원의 배당을 실시했다. 전년(90억원) 대비 53.3% 증가한 액수다. 이중 대부분은 허 회장 일가에게 돌아갔다.

SPC삼립의 지분은 허영인 회장(4.64%), 장남 허진수 파리크라상 사장(16.31%), 차남 허희수 SPC 부사장(11.94%)이 나눠 갖고 있다. SPC삼립의 최대 주주(지분율 40.66%)인 '파리크라상'도 지난해 전년(38억원) 대비 37.8% 늘어난 51억원대 배당을 실시했는데, 모두 허 회장 일가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프랜차이즈 브랜드 배스킨라빈스와 던킨을 운영하는 비알코리아도 지난해 191억원대 배당을 실시했다. 이중 127억원이 허 회장 외 3인(지분율 66.67%)에게 지급됐다. 이렇게 주요 계열사를 통해 허 회장 일가는 지난해에만 226억원대 배당금을 챙겼다.

한편에선 '배당금을 가져가는 건 주주의 권리'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안전사고 투자금 1000억원의 구체적인 로드맵조차 만들지 않은 상황에서 '배당금'부터 챙겨간 건 '모럴 해저드'란 비판을 받을 만하다.

더구나 당시는 소비자 사이에서 일어난 불매운동 탓에 SPC 계열의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들이 벼랑에 몰렸던 시절이다. SPC 계열의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점주 C씨는 "불매운동으로 매출이 급감해 경영이 어려워졌지만, 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상황에서 매출이 줄어 힘들다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노동자도 점주도 힘든 시간을 보내는 사이,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오너는 어마어마한 배당금을 챙겨간 셈이다. 지난해 SPC는 '환골탈태'를 외쳤다. 노동자의 안전에 더 많은 관심을 주는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도 수차례 밝혀왔다. SPC는 정말 바뀌었을까. 소비자는 그들의 말을 과연 믿을까.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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