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유방암'이어도 무조건 두려워하지 말아야… 효과 좋은 표적항암제 속속 나와

권대익 2023. 8. 19.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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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 프리즘] 차치환 한양대병원 외과 교수
게티이미지뱅크

A씨는 최근 74세의 시어머니를 모시고 대학병원을 찾았다. 고혈압과 당뇨병을 앓고 있는 시어머니는 수개월 전부터 가슴에 만져지는 멍울이 있었지만 유방 검진을 받지 않았다가 급기야 피부까지 암이 퍼졌기 때문이다. 대학병원에서 정밀 진료를 받고 유방 전(全)절제 수술을 권유받았지만 고령인데다 전신마취로 장시간 수술을 견뎌낼 수 있을지 걱정돼 수술받을지 고민 중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40년에는 65세 인구가 전 인구의 3분의 1을 넘을 것으로 예측된다. 2022년 미국에서 발표된 암 통계에 따르면 새로 진단된 유방암 환자의 30% 이상이 70세 이상이었다. 국내 암등록통계에 따르면 2020년 70세 이상의 유방암 환자는 12% 정도였지만 기대 수명 향상과 함께 점점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령 암 환자의 경우 대규모 임상 연구에 잘 참여하지 않아 적절한 진단과 치료 가이드라인 수립을 위한 자료가 부족한 실정이다. 또한 동반하고 있는 다양한 내과적 기저 질환과 투약 중인 약물 간 상호작용을 보조 항암 치료를 하는데 고려해야 한다. 이 때문에 고령 유방암 환자에 대한 맞춤형 치료법을 만들기 위한 임상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유방암은 유관 세포 노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데, 나이가 들면서 종양 억제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거나 종양 성장과 연관된 유전자가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유방암은 대개 소엽이나 유관에 발생하는데, 나이 들수록 유방 조직에도 노화에 의한 변화가 생기므로 노년에 생기는 유방암은 젊은 환자와 다른 고유한 생물학적 특징을 가진다.

첫째, 에스트로겐 등 여성호르몬에 민감한 성향을 보인다. 나이 들수록 혈중 에스트로겐 농도는 매우 낮아지지만 폐경 후 노화 과정에서 유선 조직의 에스트로겐 민감도는 크게 증가한다. 따라서 고령 환자에게는 에스트로겐 호르몬 수용체 양성(+) 유방암이 많으며, 호르몬 대체 요법을 시행한 여성도 나이 많은 환자일수록 유방암의 발생 빈도가 더 높아진다.

여성 호르몬 수용체 양성이라면 수술 후 항호르몬제를 투여하는데 퇴행성 관절염 등 기저 질환이 있는 고령 환자는 근골격계 통증 부작용이 심할 때가 많다. 어깨·무릎 관절 등에 통증이 심하면 반드시 주치의와 상의해 약물 치료를 잘 유지하는 게 재발을 막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

둘째, 유방 조직의 미세 환경도 차이가 있다. 노화와 함께 유선 조직에 지방세포와 섬유아세포가 풍부해지고 세포의 노화 과정에서 인터류킨 같은 종양 발생을 촉진하는 염증성 환경이 형성된다. 염증과 관련된 사이토카인이 분비되며 지방세포 및 각종 면역세포를 매개로 종양이 성장한다는 연구 결과들이 보고되고 있다.

또한 면역체계 노화가 동반돼 나이 들수록 면역 반응이 떨어지면서 골수 줄기세포 변화와 함께 유방 조직이 바뀐다고 알려져 있다. 고령 환자에게서는 말초 림프구 기능 저하와 흉선 퇴화가 동반될 수 있는데, 항암 치료 과정에서 면역체계 변화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생물학적 특성 뿐만 아니라 고령 환자를 둘러싼 사회적 환경도 고려해야 한다. 의료기관 접근성이 낮아 제때 검사를 받지 못할 때가 많고 핵가족화에 따른 사회적 고립도 문제다. 이러한 환경이 결국 암 진단 지연 뿐만 아니라 치료 순응도 저하와 결부돼 환자 예후가 악화될 수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상당수 고령 환자가 현재 국가 암검진 정책에 포함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고령 암은 상대적으로 천천히 자라며 예후가 좋다는 잘못된 인식을 유발할 수 있고 고령 환자의 적절한 진단 시기를 놓쳐 병기가 상당히 진행된 후에 대학병원을 찾을 때가 많아진다. 그러면 암 수술 범위가 넓어지고 수술 후 심각한 합병증이 생길 위험이 높아진다. 따라서 70세 이상 고령인도 이전에 유방 종괴나 미세석회 등을 진단받았다면 1~2년마다 정기검진하기를 권한다. 만일 유방 불편감이나 피부 변화 등 증상이 있다면 즉시 전문의 진찰을 받아야 한다.

고령 유방암 환자를 효과적으로 치료하려면 환자 맞춤형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 항암 약물 치료 대상자를 신중히 선별하고 치료 과정 부작용에 적극 대처해야 한다. 치료 전 면밀한 전신 검사를 통해 심폐 기능과 콩팥 상태 등을 정확히 평가해야 하며 이에 따라 약물 용량을 정해야 한다.

특히 HER2(사람상피세포증식인자수용체 2형) 양성 유방암이거나 삼중 음성(2개의 호르몬 수용체와 HER2 유전자가 모두 없음) 유방암이라면 재발이 잦기에 표적항암제 사용을 고려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호중구감소증·식욕 부진·말초부종·폐렴 등 예상되는 합병증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중등도 이상의 합병증이 발생했다면 투여 약물 용량을 순차적으로 줄여야 한다.

둘째, 차별화된 수술법을 택해야 한다. 유방암 수술 시 대개 겨드랑이 림프절 생검 혹은 곽청술(郭淸術·청소술)을 동시에 시행한다. 그러나 최근 SOUND 임상 시험을 통해 림프절 전이가 의심되지 않는 환자는 겨드랑이 수술을 생략하는 것도 안전하다는 결과가 보고됐다. 특히 고령인은 유방암 재발로 사망할 경우가 상대적으로 적기에 환자에게 불필요한 수술을 생략해 수술 시간을 단축하고 합병증 발생을 줄일 수 있다. 미국종양외과학회는 호르몬 수용체 양성(+) 유방암인 70세 이상 환자에게서 림프절 전이가 없다면 겨드랑이 수술을 꼭 시행하지 않아도 된다고 권고하고 있다.

셋째, 일부 고령 환자에게는 수술 후 방사선 치료를 생략할 수 있다. PRIME 2 임상 연구에 따르면 병기가 1기이거나 재발 위험이 낮은 환자는 보조 방사선 치료를 생략해도 유방암으로 인한 사망률에는 차이가 없었다.

넷째, 환자의 기대 수명을 고려해야 한다. 유방암 환자 예후를 결정짓는 중요한 인자는 호르몬 수용체와 HER2 발현 유무에 따른 생물학적 분류(biologic subtype)이다. 환자의 기대 수명이 10년 이상이라면 HER2 양성 유방암이거나 삼중 음성(-) 유방암이라면 항암화학요법을 고려해야 한다.

치료법을 선택하는 과정에서는 환자-보호자-의사 간의 적극적인 소통을 통한 ‘치료 의사 결정(Shared Decision Making)’이 이뤄져야 한다. 다른 장기에 원격 전이가 생긴 4기 환자에게 이 점이 더욱 중요한데, 최근에는 부작용이 덜하며 효과가 뛰어난 표적항암제(표적치료제)들이 많이 쓰이고 있기에 무작정 치료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차치환 한양대병원 외과 교수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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