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정선수가 히틀러에게서 받은 대왕참나무…‘손기정참나무’라 부르자![정충신의 꽃·나무 카페]
손기정이 히틀러에게 부상으로 받은 참나무...처음엔 월계수로 오해
히틀러 부상은 로부르참나무 …손기정 모교 옛 양정고에 있는 건 미국산 대왕참나무
대왕 이름 두고 “참나무 중 으뜸”“잎 모양 ‘王’자” “수입업자 회사명” 설 분분 …본명은 ‘핀 오크’
신촌오거리 교통섬 대왕참나무 두그루 뙤약볕 가리는 천연 파라솔’, 명물나무로 인기
서대문구 신촌현대백화점이 있는 신촌오거리 교통섬에는 2그루 대왕참나무가 있다. 여름 뙤약볕을 가려주는 ‘천연 파라솔’이다. 대나무를 덧대 지붕 형상을 인위적으로 갖췄다. 보행자들은 교통섬 옆 인위적 녹색파라솔보다는 이 천연 파라솔 대왕참나무 곁에서 신호등을 대기하는 경우가 많다. 여름 뙤약볕을 완벽하게 가려주는 데다 인공 파라솔보다 왠지 더 시원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신촌오거리 교통섬의 대왕참나무는 무더운 여름 펄펄 끓는 아스팔트 위에 시원한 그늘을 만드는 천연 파라솔, ‘명물 나무’로 서울 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대왕참나무 잎은 길쭉한 잎 가장자리가 여러 번 깊이 패어 들어가 마치 ‘임금 왕(王)’ 자 같아 눈에 확 띈다. 잎 뒷면에는 흰색 털이 있고 꽃은 암수한그루로 4∼5월에 아래로 늘어진 꽃줄기에 황록색으로 피지만, 꽃잎이 없어서 눈에 거의 띄지 않는다. 대왕참나무는 공해에 강해 도심에 심어도 잘 자라고, 도로변에 심어 자동차 매연이나 소음 등을 차단하는 용도로도 심는다.
대왕참나무 잎 꼭짓점에는 날카로운 바늘이 있다. 서양 사람들은 ‘핀 오크(Pin Oak·바늘참나무)’라고 부르는 이유다. 지하주차장 위에 성토한 건조한 환경에서도 잘 자란다. 여름철에 반질거리는 잎은 가을철 새빨간 단풍으로 눈길을 끈다. 겨울내내 갈색으로 변한 잎이 매달려 있어 색다른 경관을 만든다.
독특한 수형을 가진 외래종인 대왕참나무는 가로수와 조경수로 인기를 끌고 있다.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뒤쪽, 성동구 서울숲의 대왕참나무숲, 가로수길 등 대왕참나무를 식재한 곳이 많다. 서울역 고가도로(서울로 7017)가 끝나는 만리동 언덕 초입 손기정기념공원 올라가는 입구에도 얼마전부터 대왕참나무를 심어놓았다.
우리나라에는 참나무 6형제라고 부르는 상수리나무·굴참나무·떡갈나무·신갈나무·갈참나무·졸참나무가 있는데 대왕참나무는 토종 참나무가 아니다. 외래종으로 가로수 등으로 식재하기에 안성맞춤의 수형을 갖추고 있다.
대왕참나무는 마라톤 영웅 손기정 선수와 특별한 인연이 있다. 1936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제11회 올림픽은 아돌프 히틀러 총통이 심혈을 기울인 대회였다. 히틀러는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기 전에 독일민족의 우월성을 세계에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8월 9일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24살의 일본 식민지 청년 손기정 선수는 올림픽 신기록으로 우승했다. 베를린올림픽에서는 고대 그리스 올림피아 월계관의 상징적 의미를 계승해 우승자에게 나뭇잎 관, 월계관을 머리에 씌워 주었다. 특별히 올리브나무나 월계수가 아니라 독일 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기던 ‘로부르참나무(Quercus robur)’로 월계관처럼 만들어 손기정 선수에게 수여했다. 또한 부상으로 꽃다발 대신 로부르참나무 묘목을 받았다. 손기정 선수는 이 나무로 가슴에 있는 일장기를 가렸다고 한다.
서울시 만리동 손기정기념관에는 손선수가 당시 받은 나뭇잎관, 금메달 그리고 청동투구가 문화재청 등록문화재로 지정 보관돼 있다. 참나무 묘목은 현재 손기정기념관 앞에서 크게 잘 자라고 있다. 이 참나무를 두고 말들이 많다. 처음에는 ‘월계관 나무’로 부르면서 한때 상록수인 ‘월계수(Laurus nobilis)’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이 나무는 1982년 서울시 기념물로 제정되는 과정에서 월계수가 아닌 참나무 종류로 확인됐다. 그때까지 무관심했던 셈이다.
문제는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올림픽 시상식에서 받은 건 로부르참나무였는데 대왕참나무로 바뀐 사실이었다. 손기정 선수는 묘목을 40여 일이나 걸리는 귀국길에 잘 간수해 이듬해 자신의 모교인 만리동 양정고등학교에 심었다. 그런데 몇십 년이 지난 후에 대왕참나무로 바뀐 건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설이 등장한다. 독일이 시상품으로 로부르참나무를 준비했는데 대왕참나무가 섞여 있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당시 독일에도 미국산 대왕참나무가 유통돼 있었고, 묘목일 때는 두 참나무 잎이 비슷하다는 것을 근거로 대기도 한다. 하지만 당시 우승자에게 수여한 로부르참나무가 전 세계에 퍼져 자라고 있는데, 유독 손기정 선수에게만 대왕참나무를 수여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특히 손기정 기념관에 보관돼 있는 월계관도 로부르참나무로 제작된 것이다.
특히 손기정 선수 귀국 후 겨울을 지나면서 겨우 뿌리만 살아 있는 월계수를 이듬해 봄에 교정에 심어 살린 것이라 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교정에는 로부르참나무가 자라야 하겠지만, 어찌 된 일인지 대왕참나무가 자라게 된 것이다. 그 당시에는 국내에 대왕참나무가 수입되기 전이라 대왕참나무로 바꿔 심었을 가능성도 낮다. 대왕참나무 진실은 나무만이 아는 비밀이 돼버렸다. 여하튼 손기정기념관에 있는 대왕참나무는 여러 우여곡절과 역사적 사실과 관계없이 나름의 의미와 가치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 견해다.
국내에서는 다양한 경관을 만들기 위해 1990년쯤 외국 참나무를 들여오기 시작하는데 대표적인 수종이 북미대륙 동부가 고향인 대왕참나무다. 기하학적으로 독특하게 생기고 잎 가장자리에 뾰족한 침이 달린 ‘핀 오크(pin oak)’를 수입하면서 ‘대왕참나무’로 이름 지었다.
대왕참나무는 비교적 넓은 녹지에 3m 간격으로 바둑판 모양으로 식재하는 편이다. 느티나무처럼 잎이 무성하게 자라지는 않지만 곧게 솟은 줄기와 수평으로 뻗는 곁가지가 균형이 잘 잡혀 있다. 현대 도시의 엄격한 직선 풍경을 완화해주는 수형을 가지고 있다.
대왕참나무 이름에도 여러 설이 존재한다. 대왕참나무를 1990년 중반 조달청에 우리말 등재를 하면서 ‘참나무 중에서 가장 으뜸’이라는 뜻으로 대왕참나무로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박상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책 ‘우리나무 이름 사전’에서 “대왕참나무가 이름에 특별히 대왕이란 접두어를 붙일 만큼 다른 참나무보다 뛰어난 나무는 아니다”고 했다. ‘대왕’이라는 회사 이름을 가진 수입업자가 자기 회사 이름을 넣었다는 설도 있지만 근거가 불분명하다.
여러 참나무 중 키가 가장 크게 자란다거나 잎의 모양이 임금 王자를 닮았다는 설 등이 있다. 그러나 ‘대왕’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면 우리나라 토종참나무들은 신하가 되는 셈이니 차라리 원어 그대로 ‘핀 오크’나 ‘침참나무’로 부르는 게 적당하다는 견해도 나온다. 잎이 비슷하게 생긴 레드 오크(red oak)인 로부르참나무도 수입해서 심고 있다. 대왕참나무와 로브루참나무는 생김새가 일정하고 비교적 건조한 환경에 잘 적응해 하자가 적은 편이라 가로수 또는 관상용으로 많이 심고 있다.
일각에서는 차라리 국적 불명의 대왕참나무보다는 손기정 선수와의 인연과 그의 애국혼을 되살리는 취지에서 ‘손기정 참나무’ ‘손참나무’로 부르자는 제안을 해오고 있다. 충분히 검토해볼 만하다.
글·사진=정충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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