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어디서든 열정적으로…요즘 뜨는 독일 기업의 비밀
직원 75명 회사 ‘최고기업상’
팀 전체 스페인 워케이션 등
근무 시간·장소 ‘완전 자율’
성과 내고 직원 만족도 좋아
지난 9일(현지시각) 방문한 독일 하노버의 링크텍 본사. 오후 3시, 직원들이 한창 일할 시간이었지만 사무실은 텅 비어 있었다. 직원 75명 중 이날 출근한 사람은 6명이었다. 사무실엔 책상과 컴퓨터가 들어차 있었지만 주인은 정해져 있지 않다. 선착순으로 원하는 자리를 고르면 된다. 한달에 한번, 직원 전체가 대면 회의를 하는 날 외엔 자리가 차는 날이 없다.
에너지 요금 계산·청구 플랫폼 개발 스타트업인 링크텍 직원들은 다른 독일 기업처럼 주 5일, 39시간을 일한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 일할지는 자유다. 프로그램 개발자부터 최고경영자(CEO)까지 구성원 대부분이 재택·원격 근무를 하고 있다.
링크텍은 2017년 독일의 한 에너지 기업 내부 프로젝트팀에서 출발해 지난해 별도 법인으로 독립한 스타트업이다. 신생 기업이지만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독일의 유명 기업 평가 사이트 ‘쿠누누’에서 주는 ‘최고의 기업’상을 받았다. 미래 전망이 좋을 뿐 아니라 ‘선진적인 기업 문화’를 가진 회사에 주는 상이다. 후보에 오른 회사 직원을 대상으로 비공개 인터뷰를 진행해 수상자를 선정한다.
‘현대적인 기업 문화’로 우수 인력을 끌어모으고 있는 독일 스타트업 노동자들의 일상을 들여다봤다. 이 스타트업의 시도는 유연한 근무 방식이 기업 생산성에 기여할 뿐 아니라 노동자의 만족도와 일터에 대한 충성도를 높인다는 점을 보여준다.
목표 달성한다면 어떤 근무 형태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올레(26)는 아침 6시 반에 일어나 사무실이 아닌 체육관으로 향한다. 운동으로 아침을 깨운 뒤엔 허기를 채울 스무디를 만들어 컴퓨터 앞에 앉는다. 오전 9시에 팀원들과 줌 미팅을 하기 위해서다. “우리 팀은 모두 원격 근무를 합니다. 다들 차로 2∼3시간 떨어진 베를린, 뒤셀도르프 등에 살고 있습니다.” 본사가 있는 하노버에 사는 직원은 4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대부분 독일 여러 도시에 살고 일부는 오스트리아 빈 등 다른 나라에 거주한다. 코로나19가 닥치면서부터 이 회사는 지역 제한 없이 유럽 전역에서 사람을 구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하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인사 매니저 요제핀(33)은 아침 7시 반에 일어나 뮈슬리 한그릇을 만들고 노트북을 켠다. 여유롭게 전자우편을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프로젝트 매니저 플로리안(37)은 오전에 일을 집중적으로 처리하고 점심에 운동을 한다.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 딸을 키우는 마케팅 총괄은 남들보다 이른 아침 7시부터 낮 1시까지 일한다. 아이가 그 시간에 유치원에 가기 때문에 집중할 수 있다. 아이가 돌아오면 오후 시간을 함께 보낸 뒤 다시 오후 5시부터 2시간 동안 일한다. 이 회사 최고경영자 맨디(38)는 “직원들은 스스로 하루 일과를 짤 수 있다”며 “막 성장해나가는 스타트업인 만큼 일이 몰리거나 기한을 맞춰야 할 때가 생기지만, 그럴 때도 마찬가지다. 본인이 업무 목표만 제대로 달성한다는 조건에 따라 유연한 근무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노동자가 자유롭게 일할 장소와 시간을 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크지만, 기업이 효율성과 생산성을 포기할 수는 없다. 맨디는 이러한 노동 형태가 단기적으로 생산성에 기여하지 못하는 듯 보여도 장기적으로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실제 성과가 이를 증명한다고 했다. 그는 “플랫폼 기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독일 기업들이 대체로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기업 문화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링크텍의 한 팀은 공동 업무가 많은 상황에서 스페인으로 날아갔다고 한다. 팀원들은 자비를 들여 2주 동안 머물 큰 아파트를 빌렸다. 자발적이고 집단적인 ‘워케이션’이었다. 매일 일을 마치고 바닷가에서 여유를 즐기거나 주말엔 하이킹을 떠났다. 맨디는 “이 팀은 결국 목표를 달성했다”며 “그들은 이제 동료 이상의 관계가 됐다. 서로 일하는 방식을 잘 알기 때문에 업무 효율도 올라간다”고 했다. 함께 쌓은 특별한 경험을 바탕으로 협업 과정에서 상승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가끔은 누군가 제게 회사에 대한 통제력을 잃는 게 아니냐고 지적하기도 해요. 하지만 직원들은 항상 함께 우리가 뭘 해야 할지 이야기하고 함께 목표를 세웁니다. 그리고 이들은 항상 목표를 달성하죠. 업무상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곳에서라면 어디서, 언제, 어떻게 일하든 상관이 없는 이유입니다.”(맨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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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근무 환경, 앞당겨 복직도
2살, 4살 아이의 아빠 라르스(40)는 이 회사에서 개발 부문 총괄을 맡고 있다. 취재를 위해 하노버 사무실을 찾은 날에도 그는 재택근무 중이라 온라인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라르스는 본인이 원하는 곳에서 일할 수 있는 방식을 “현대적인 업무 형태”라고 했고 “이 회사에선 일과 삶을 자유롭게 조합해 양립시킬 수 있어 대단히 만족한다”고 했다. “애들은 갑자기 아플 때가 있죠. 굳이 휴가를 쓰지 않고도 근무 시간을 조정해 가족을 돌보고 다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입니다.” 아이가 아플 땐 라르스가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는 배우자를 대신해 아이를 돌본다. 그럴 경우 오전 화상회의는 오후로 조정하고 배우자가 귀가하면 다시 일을 본다.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장을 보거나, 병원에 가고, 운동을 할 수도 있습니다. 사무실로 출퇴근하는 데 드는 왕복 2시간을 아껴 따로 시간을 내서 하기 어려운 일을 하는 것이죠.”
자유로운 노동 환경 속에서 일에 대한 직원들의 열정은 식지 않는 모습이었다. 아이를 출산하고 육아휴직 중이던 나딘은 원래 올해 11월 복귀 예정이었지만 자진해서 복직을 석달이나 앞당겼다. 회사가 막 성장하는 상황에서 일손이 부족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재택근무를 하겠지만 꼭 사무실에 나와야 할 경우 아이와 동행할 수도 있다는 조건이었다.
자유로운 근무 형태에 직원들의 만족감과 기대도 크다. 지난해 링크텍이 별도 법인으로 독립할 때 20여명이 월등하게 많은 급여가 보장되는 모회사를 떠나 이곳을 선택했다고 한다. 링크텍은 주 4일 노동도 검토하고 있다. 맨디는 “회사 시스템이 뭔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 같으면 직원들에게 묻고 바꾼다. 우리는 항상 똑같은 시스템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실제로도 그렇다”고 말했다.
하노버/노지원 특파원
zone@hani.co.kr
독일 베를린 특파원으로 현지에서 발로 뛰며 취재하고 있다. 유럽 곳곳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한 뼘 더 깊이 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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