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남북 상생 아닌 갈등 무대 된 개성공단
[앵커]
북한이 개성공단에 남아있는 우리 기업 자산을 무단으로 사용하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죠.
남북한 사이의 약속은 물론이고, 국제법에도 어긋나는 건데요.
우리 정부는 북한의 재산권 침해 행위에 대해 책임을 묻고 단호하게 대응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현실적으론 피해를 배상받을 방법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런데 최근엔 단순한 무단 사용 수준을 넘어, 아예 중국 자본 유치, 즉 중국으로부터 투자 유치까지 검토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한때는 남북 경제협력의 상징이었지만, 이제는 남북 갈등의 새로운 무대가 된 개성공단의 과거와 미래를 <클로즈업 북한>에서 살펴봤습니다.
[리포트]
2004년 12월 15일.
서울 시내 한 대형 백화점에 고객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대기 번호표까지 받으며 기다린 건 개성공단의 첫 시제품이었던 ‘통일냄비’.
[나홍주/2004년 인터뷰 : "개성에서 처음 만든 상품이라는 데 의의가 있어서 사 갑니다."]
제품은 순식간에 매진됐고 남북 경제협력에 대한 기대감은 커졌습니다.
[김석철/당시 리빙아트 회장/2004년 인터뷰 : "이게 남북관계의 시발점, 밑거름이 됐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고윤옥/개성공단 북한 근로자/2004년 인터뷰 : "진짜 50여 년간 갈라져 있다 서로 이렇게 힘을 합쳐서 하니까 정말 기쁠 따름입니다."]
분단 이후 첫 남북정상회담.
두 정상은 공동선언을 통해 5개 항에 합의했습니다.
개성공단은 6.15 남북공동선언의 가장 큰 성과라 할 수 있는데요.
남측의 자본과 기술, 북측의 토지와 인력을 결합한 공동의 경제사업이 시작한 겁니다.
이를 위해 북한은 개성에 주둔했던 전방 부대까지 옮겼고, 남북은 공업단지와 신시가지 등 모두 6,600만여 제곱미터 규모로 조성한다는 데 합의했습니다.
[남성욱/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 "유럽은 2차 대전 후에 더 이상의 유럽 내에서 전쟁은 모두가 필패라는 그런 이미지에 사로잡혔고요. 경제적 협력을 통해서 이를 확산 시키는 스필오버 효과를 진행했고 이것이 결국은 정치적 화해 협력을 가져와 유럽통합, EU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한반도 역시 유럽의 기능주의적인 모델을 접목해 한반도의 긴장 완화를 경제협력으로 풀어보겠다는 출발을 가지고 시작했습니다."]
인건비 상승 압박에 시달리던 우리 중소기업들에게도 개성공단은 새로운 대안으로 떠올랐습니다.
2004년 열다섯 개 기업을 시작으로 2016년까지 총 123개 업체가 공장 가동에 나섰습니다.
[김서진/전 (사)개성공단기업협회 상무 :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일부 업종에서는 그리고 노동집약형 기업들의 경우 국내에서 생산성이 떨어졌어요. 가격 경쟁이 떨어진 거죠. 그런데 개성공단이 생기니까 대안이 생긴 거죠. 굳이 중국에 안 가도 말도 통하고 매우 가까운 데 있네 하고 들어온 기업들이 대부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개성공단 생산 누적액은 2015년 12월 말까지 32억 3천만 달러, 우리 돈 4조 3천억 원 이상으로 추산됩니다.
55명으로 시작한 북한 근로자도 5만 4천여 명까지 늘었습니다.
또 북한은 3억 7천만 달러 이상의 외화를 벌어들였다는 분석입니다.
개성공단의 등장은 북한 주민들의 인식 변화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먼저. 스스로 목격한 한국의 발전상에 큰 충격을 받았다는 게 개성 출신 탈북민의 이야깁니다.
[김진아/개성 출신 탈북민/2017년 탈북 : "굉장히 놀라웠죠. 저는 그때 당시 중학교 4학년, 14살이었어요. 아주 혁명적인 구조물들을 이렇게(기계로) 집어서 갖다 놓고 굉장히 놀랐죠. 심지어 작업 현장에 안전모를 쓴 사람들이 북한에서 생전 보지도못하던 것. TV 속에서만 보던 걸 현실로 (만들어 내는 걸) 보니까 굉장히 새로웠고."]
북한 당국도 이에 대비해 사상전을 강화했다는데요.
탈북민의 고모와 삼촌처럼 개성공단에 근무하던 주민들은 강도 높은 생활 총화를 받았다고 합니다.
[김진아/개성 출신 탈북민/2017년 탈북 : "북한 TV에서도 방영이 됩니다. (남측에서) 차를 타고, 자가용을 타고 들어오는 사람들 모습이. 그래서 황홀하다 하는데 야, 저거 다 거짓말이야 저것들 집이 없어서 저기서(개성공단) 자고 먹고 한데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저건 보여주기 위함이다 절대로 속지 마라 이러한 교양들이 많이 들어왔죠."]
이런 가운데 북한 주민들을 변화시킨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한국산 초코파이, 커피 같은 간식이었는데, 특히 초코파이를 받으려고 잔업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홍태표/(주) 지에스 고문/2013년 인터뷰 : "더 일을 좀 시키고 보냈으면 좋겠는데 (잔업은) 안 하겠다 그런단 말이에요. 초코파이를 두 개 더 줄 테니까 이거 조금 해주고 나가라고 하니까 하더라고요."]
초코파이가 돈이 됐고 북한 근로자들은 이를 먹지 않고 되팔기 시작한 겁니다.
[김서진/전 (사)개성공단기업협회 상무 : "개성공단 초코파이는 무지로 나가요. 우리 초코파이를 보면 옆에 상표가 있잖아요. 그게 없이 무지. 그러다 보니까 북에서는 안심하고 팔 수가 있는 거죠."]
2014년, 미국 CNN 방송은 초코파이 한 개가 북한 암시장에서 10달러에 팔린다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초코파이는 개성 주민들의 주요 수입원이 됐습니다.
[김서진/전 (사)개성공단기업협회 상무 : "북한에도 계가 있었어요. 10명이 팀을 짜잖아요. 그러면 오늘 10개를 받았어요. 1인당. 그럼 합치면 어떻게 되겠어요. 백 개가 되는 거예요. 그러면 순번을 정해서 오늘은 네가 1번, 내일은 네가 2번 이렇게 돌아가요. 그렇게 상자가 되면 판매가 가능한 거죠."]
[김진아/개성 출신 탈북민/2017년 탈북 : "그 사람들이(개성공단 근로자) 퇴근 후 판문역에서 출발하면 8시쯤 들어와요. 들어오면 (초코파이를 )받기 시작하는 거죠. 사리원, 원산, 함흥, 신의주 사람들(장사꾼)도 와요. 개풍, 개성까지도 오고. 그러면 거기서 넘겨줍니다."]
급기야 북한 당국은 한국산 간식 제공을 금지 시켰고, 북한산 경단설기와 닭고기 즉석 국수, 과자 등이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그런 가운데도 개성공단은 12년간 북한 주민들에게 비빌 언덕 같은 존재였습니다.
[김진아/개성 출신 탈북민/2017년 탈북 : "개성사람들이 그곳에 들어가서 경제적으로 많은 이익을 취할 수 있게끔 오아시스 역할을 하지 않았나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부침은 개성공단에 직접적인 영향을 줬습니다.
[조선중앙TV/2016년 1월 6일 : "주체 조선의 첫 수소탄 시험 완전 성공."]
2016년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당시 우리 정부는 개성공단 가동을 전면 중단시켰습니다.
입주한 우리 기업들은 막대한 손해를 감수해야 했고, 북한 노동자들 역시 생활고를 겪는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북한 근로자/음성변조/2016년 3월 인터뷰 : "(최근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발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거기에 뭐 관심 있습니까. 그거 때문에 지금 개성사람들은 다 거지 됐다고 아우성인데."]
일부 근로자들이 공단에서 물건을 빼내 가족을 먹여 살리기도 했습니다.
[북한 함경도 주민/2016년 4월 인터뷰 : "(개성)공업단지에서 1명이 훔쳐내온 걸 10명이 나눠 먹으니까."]
[조선중앙TV/2020년 6월 16일 : "북남공동연락사무소가 완전 파괴됐습니다."]
2020년 6월, 개성공단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 결정적 사건이 터졌습니다.
이번엔 북한이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겁니다.
그리고 올해 들어 개성공단의 우리 기업 자산을 무단 사용하는 정황이 거듭 포착됐고 정부는 강경 대응 입장을 밝혔습니다.
[권영세/전 통일부 장관/4월 11일 : "북한은 여러 차례 걸친 우리 정부의 촉구와 경고에도 불구하고 개성공단 내 우리 기업들의 설비를 무단으로 사용하여 재산권을 침해하고 있다. 이러한 위법행위를 강력하게 규탄하며 이에 대한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북한에 있음을 분명히 밝혀둔다."]
또 북한이 중국 업체를 상대로 한 개성공단 투자유치와 시설 판매를 검토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오는 등 상황은 더욱 나빠지는 모양샙니다.
하지만 남북관계 개선이 어렵다 보니 뾰족한 대안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남성욱/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 "북한 입장에서는 온전한 공단이기 때문에 이를 그대로 놔두고 지켜보는 데는 굉장히 어려웠을 것으로 보이고요. 미국의 위성사진으로 볼 때 중국의 기업이 참여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개성공단의 가동기업 수가 점차 확대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일단 우리 입장에서는 우리 자산이기 때문에 북한에 손배소 문제를 처리할 수는 있지만 아직은 실태를 정확하게 우리가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고 또 손배소라는 법적인 조처를 한들 현재 남북 관계 상황에서 실효적인 해답을 얻기는 매우 어려운 실정입니다."]
우리 기업에겐 돌파구가 돼주고 북한에겐 적잖은 경제적 이익을 주며 남북 상생의 경협 모델이었던 개성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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