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유병 소재로 공포가 일으킨 광기 그려내…영화 '잠'

이영재 2023. 8. 19. 08:30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공포영화라고 하면 대개는 귀신이나 괴물처럼 공포를 일으키는 대상에 초점을 맞추지만, 때로는 공포를 느끼는 사람의 내면에 포커스를 두기도 한다.

유재선 감독이 연출한 영화 '잠'의 관객들도 공포에 관해 비슷한 고민을 하게 될 것 같다.

'잠'은 극도의 공포 속에서 미쳐가는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샤이닝'(1980)을 떠올리게 한다.

봉 감독은 '잠'에 대해 "최근 10년간 본 영화 중 가장 유니크한 공포"라며 높이 평가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유재선 감독 각본·연출 첫 장편, 이선균·정유미 출연…올해 칸영화제 초청작
영화 '잠'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공포영화라고 하면 대개는 귀신이나 괴물처럼 공포를 일으키는 대상에 초점을 맞추지만, 때로는 공포를 느끼는 사람의 내면에 포커스를 두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관객은 공포라고 하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 외부에서 다가오는 것인지, 아니면 인간의 내부에서 생겨나는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어린 시절 우리에게 어른들은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도 귀신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겁을 먹은 사람의 마음이 만들어낸 것일 뿐이라고 말하곤 하지 않았던가.

유재선 감독이 연출한 영화 '잠'의 관객들도 공포에 관해 비슷한 고민을 하게 될 것 같다.

이 영화는 신혼부부 현수(이선균 분)와 수진(정유미)의 이야기다. 두 사람이 사는 곳은 지하 주차장도, 엘리베이터도 없는 오래된 아파트. 바닥과 문은 세월의 흔적이 역력하고 습기가 찬 듯 천장엔 누르스름한 얼룩이 져 있지만, 신혼부부의 집엔 아기자기함이 넘쳐난다.

자상한 성격에 나무랄 데 없는 남편인 현수가 몽유병에 걸린 듯 자다가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하면서 부부의 삶에 균열이 생긴다.

의사는 '렘(REM) 수면행동장애'란 진단을 내리고 "생각보다 흔한 병"이라며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하지만 수진에겐 보통 일이 아니다. 게다가 수진은 만삭의 임신부다.

집은 우리에게 가장 편안한 공간이지만, 한밤중에 어디선가 정체 모를 소리가 난다면 누구나 약간의 공포는 느끼기 마련이다. '잠'은 음향 효과를 영리하게 활용한다. 영화에서 공포를 극대화하는 것도 현수의 행동 자체보단 그것이 어둠 속에서 내는 소리다.

현수의 기이한 행동이 도를 더해가면서 수진은 날이 갈수록 예민해지고, 서서히 광기에 다가간다. 영화의 초점도 수진의 내면으로 자연스럽게 옮겨진다.

영화 '잠'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잠'은 극도의 공포 속에서 미쳐가는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샤이닝'(1980)을 떠올리게 한다.

현수가 차를 타고 병원에 있는 수진을 찾아가는 장면은 '샤이닝'의 첫 장면과 흡사하다. 언덕 사이로 곧게 뻗은 도로를 차 한 대가 달리고, 카메라는 공중에서 멀찍이 떨어져 그 뒤를 쫓는다. 관객들은 차에 탄 사람의 운명에 대해 불길한 예감에 빠져든다.

'샤이닝'에서 공포를 극대화하는 요소들 가운데 하나는 주인공 잭의 가족이 외딴 호텔에서 도망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폭설까지 내려 호텔이 완전히 고립된다.

'잠'에서 현수와 수진은 그렇지 않다. 현수는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해법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수진은 이상하게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탈출구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공포를 반감시키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잠'은 유재선 감독이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한 첫 장편 영화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 연출팀 출신이기도 한 유 감독은 지난 18일 '잠' 시사회에서도 봉 감독을 '롤모델'로 꼽았다. 봉 감독은 '잠'에 대해 "최근 10년간 본 영화 중 가장 유니크한 공포"라며 높이 평가했다.

이 영화의 몇몇 장면은 봉 감독의 작품을 연상케 한다. 현수가 아파트 계단을 오를 때 아래층 집의 현관이 살짝 열려 있고 그 사이로 아이가 멍하니 내다보는 장면도 그중 하나다. 관객들은 그것만으로도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잠'은 지난 5월 칸 국제영화제 비평가 주간에 초청돼 호평받았다.

오는 10월 시체스 국제판타스틱영화제 메인 경쟁 섹션에도 초청됐다. 시체스 영화제는 세계 최대 규모의 호러·판타지 영화 축제로 꼽힌다. 세계 4대 국제영화제에 들어가는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 독보적인 감각의 장르 영화를 조명하는 '미드나잇 매드니스' 섹션에도 초청받았다.

9월 6일 개봉. 94분. 15세 관람가.

영화 '잠'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ljglory@yna.co.kr

▶제보는 카톡 okjebo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