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무는 시대에 소환된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미국의 패권 장악과 무력 경쟁
‘착한 사마리아인’ 미국적 환상
‘피 묻힌’ 윤리적 딜레마 그려
반성? 도덕적 선택 향한 향수?
‘오펜하이머’는 스펙터클의 영화라기보다는 사운드의 영화다. 때로는 과하게 느껴질 정도의 사운드 디자인이 없었다면 관객들은 이 야심찬 역사극 안에서 길을 잃었을 것이다.
영화에선 3시간에 달하는 상영시간 동안 수많은 인물이 등장했다 사라지고, 서사는 크게 3개의 시간대를 넘나든다. 야망 있는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킬리언 머피)가 맨해튼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원자탄이 터질 때까지의 시간, 이후 그가 원자력위원회 위원장 루이스 스트로스(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음모로 보안인가 청문회를 받는 과정, 그리고 스트로스 본인이 치러야 하는 상무장관 후보자 청문회가 그 주요 줄기다. 게다가 하나의 시간대 안에서도 과거와 현재가 섞여들고, 때로는 미래가 틈입해 들어온다. 영화의 시간관은 물리학자 닐스 보어의 원자이론이 설명하는 전자의 움직임처럼 예측 불가능하고 혼란스럽다.
원자탄이 연 ‘거대한 가속도의 시대’
하지만 영화 속에서 보어(케네스 브래나)가 오펜하이머에게 조언하듯이 관객이 “음악을 들을 수만 있다면” 영화의 흐름은 선명해진다. 실제로 사운드트랙이 드라마틱해지는 건 영화 초반, 오펜하이머가 보어를 만난 직후다. 정확한 계산과 함께 배치된 풍부한 효과음과 화려한 음악, 청산유수처럼 흐르는 대사가 스크린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친절하게 설명하고 관객의 감정을 이끈다. 물론 사운드는 이미지와 정교하게 연동되어 있다. 이 정밀한 세공은 크리스토퍼 놀런을 우리 시대 위대한 대중영화 감독 중 하나로 만들어준다.
잘 짜인 수처럼 우아한 영화는 오펜하이머를 인간에게 불을 선사한 프로메테우스에 비유하고, 복잡하고 모순적인 (혹은 원자와도 같은) 인간의 내면을 재현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프로메테우스 신화의 현대적 판본인 만큼이나 ‘선한 사마리아인’이라는 미국적 판타지가 남긴 윤리적 딜레마에 대한 처절한 고백이다. 오펜하이머의 얼굴을 경유해 우리 앞에 떨어진 것은 ‘미국의 세기’의 원초경이기 때문이다.
1941년 2월. 미국의 영향력 있는 언론인이었던 헨리 루스는 자신이 발행하던 ‘라이프’지에 ‘미국의 세기’라는 사설을 게재한다. 루스는 이 글에서 미국이 그때까지 고수하고 있던 고립주의를 버리고 세계의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 자유의 가치와 민주주의를 전파하는 선교사 역할을 할 것을 촉구했다. 즉,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자는 메시지를 미국 정치권은 물론 대중을 향해 던진 것이다.
루스는 이 글에서 “우리가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목적과 우리가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수단으로, 우리의 완전한 영향력을 세계에 발휘하자”고 주장했다. 이 글은 미국 내에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지만, 사실 글의 내용은 당시 미국 사회의 공기 속에서 등장한 것이었다. 그해 루스벨트는 태평양 전쟁을 시작했고, 여기서 승리한 미국은 이후 정치적, 경제적으로 세계에 군림하며 진정한 미국의 세기를 열게 된다. 결과적으로 “적합한 목적”이란 미국의 패권이고 “적합한 수단”이란 일본 열도에 떨어진 원자탄이었다.
원자탄은 전후 세계가 휘말린 “거대한 가속도의 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클라이브 해밀턴은 기후위기가 초래하는 파국을 경고하는 책 ‘인류세’에서 원자탄이 투하된 1945년 이후 “퇴적된 방사성 핵종을 함유한 지층은 미국이 전 세계적 패권을 장악하게 된 시대와 전후 수십년 동안 이뤄진 놀랄 만한 물질적 확대, 즉 자본주의가 대대적으로 성공한 시기의 서막을 알리는 전조”였다고 쓴다. 지금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기후위기는 미국식 확장주의를 맹목적으로 추종한 결과라는 말이다.
그뿐만 아니라 버튼 하나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는 감각은 국가적이고 세계적인 차원에서 두려움보다는 효능감을 남겼다. 미국과 소련의 군비 경쟁이 지속됐고, 모든 것의 군사화를 초래했다. 여기에 다른 국가들 역시 능력만 된다면 어떻게든 동참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오펜하이머가 메마른 눈으로 바라보는 미래처럼, 거대한 대량살상무기는 전쟁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더 강력한 살상무기의 등장과 끊임없는 무기 경쟁이라는 ‘연쇄반응’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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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개봉, 씁쓸한 택일
영화는 오펜하이머의 윤리적 고뇌에 집중하면서도 미국이라는 강대국의 딜레마를 다루게 된다. 개인의 얼굴을 경유해 시스템의 문제를 논해온 놀런에게 미국이라는 시스템은 기꺼이 “손에 피를 묻히는” 트루먼(게리 올드먼)이 아니라 “손에 피를 묻혔다고 괴로워하는” 오펜하이머에 더 가깝다. 물론 “피를 묻히는” 선택에 연루되는 건 어느 쪽이나 마찬가지다.
영화가 미국의 세기에 대한 비평으로 도약하는 건 원자탄을 성공적으로 개발하고 전쟁 영웅이 된 오펜하이머가 이후 미국에서 어떤 일을 당하게 되는가를 함께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1950년대 미국을 휩쓸었던 매카시 광풍 안에서 ‘빨갱이 사냥’의 표적이 됐다. 미국의 세기의 바탕이 된 건 오펜하이머가 원자탄을 만들면서까지 싸우고 싶었던 파시즘의 또 다른 얼굴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좌절한 건 오펜하이머 개인만이 아니다. 그의 얼굴로 대변되는 평화 군축 노력도 무력화됐다.
한국에서 ‘오펜하이머’는 8월15일에 맞춰 개봉했다. 마케팅에 있어선 꽤 성공적인 선택이었겠지만, 역사의 관점에서 보자면 기이한 선택이다. 원자탄과 함께 일본 왕은 항복을 선언했고, 조선은 8월15일 해방된다. 하지만 이어진 것은 분단, 그리고 미군에 의한 군사통치였다. 이후 한반도에서 벌어진 수많은 학살은 분단 체제로부터 비롯되었고, 우리는 여전히 그 영향 아래 살고 있다. 다른 모든 영화를 잡아먹고 영화 시장을 과점한 채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는 미국 영화를 보며 광복을 기념할 계제는 아닌 셈이다.
미국의 세기가 저물어 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지금, 놀런은 왜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이 자리로 다시 불러왔을까? 그것도 2개의 청문회라는, 정답을 내리기 어려운 ‘질문의 연쇄’를 전경화하는 플롯을 통해서. 그건 반성일까, 아니면 돌아가고 싶은 도덕적 선택의 시간에 대한 향수일까?어떤 식으로든 ‘영웅’에게만 그 숭고한 선택의 순간이 주어지곤 했던 건 아닌지,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손희정 영화평론가
‘당신이 그린 우주를 보았다’ 저자. 개봉 영화 비평을 격주로 씁니다. 영화는 엔딩 자막이 올라가고 관객들이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다시 시작됩니다. 관객들의 마음에서, 대화에서, 그리고 글을 통해서. 영화담은 그 시간들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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