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honey] 여자월드컵 열린 호주의 매력 ② '남십자성' 같은 애들레이드

성연재 2023. 8. 1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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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좋은 도시 3위 애들레이드, 월드컵으로 '부각'

(애들레이드=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2023 국제축구연맹(FIFA) 호주·뉴질랜드 여자월드컵의 열기가 뜨겁다.

이번 여자월드컵은 역대급 관중 기록을 경신하며 양국을 들썩이게 하고 있다.

16강 경기 때 이미 2015년 캐나다 대회의 135만3천506명을 훌쩍 넘겨버렸다.

방송 시청률도 역대 기록을 계속 깨고 있다.

4강전 때 이미 호주 전역에서 700만명이 넘은 시청자를 끌어모아 호주 최다 기록을 깼다.

호주관광청은 월드컵 연계 관광에도 힘을 쏟고 있다.

각국 언론과 인플루언서들을 초청해 호주가 스포츠 이벤트와 연계한 최적의 관광지임을 홍보하고 나섰다.

대한민국과 모로코의 경기가 열렸던 남호주의 애들레이드 등 그간 소외당하던 곳들도 새로운 관광 목적지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아몬드 꽃밭으로의 초대 [사진/성연재 기자]

남호주의 작은 별 애들레이드

한국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알고 보면 애들레이드는 남반구를 밝혀주는 남십자성 같은 도시다.

2021년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2년마다 발표하는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3위에 오르기도 했다.

애들레이드는 호주 기타 도시들과 달리 1836년 영국이 자유 정착민들을 거주하게 할 목적으로 만든 계획도시다.

영국과 스코틀랜드, 독일 등지에서 온 이민자들이 몰려들었다.

도시 설계를 맡은 것은 남호주 초대 측량국장인 윌리엄 라이트 대령이었다.

해안을 접한 기존 도시들과 달리 그는 도시 위치를 내륙 쪽으로 치우치게 설계했다.

토렌스 강 주변 용수들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륙과 해안가 가운데 어느 쪽이 나은지를 둔 논란은 도시가 들어선 뒤에도 한참이나 지속됐다.

애들레이드는 가뭄에도 불구하고 토렌스 강 주변 용수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번성해 왔다.

자유 정착민 도시답게 예술과 문화도 꽃피웠다.

1874년 애들레이드 대학이 설립되었으며, 1881년 남호주 아트 갤러리가 문을 열었다.

인구도 꾸준히 증가해 현재는 136만 명이 거주하는 호주에서 5번째 큰 도시가 됐다.

벤 네빌씨 소유 와이너리 [사진/성연재 기자]

'호주 와인의 수도' 애들레이드

남호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와인이다.

호주 와인 수출 총액 가운데 64%를 차지해 호주 와인의 수도라 불리는 애들레이드 주변에는 맥라렌 베일, 바로사 밸리, 클레어 밸리, 애들레이드 힐즈, 쿠나와라 등 호주 최고로 손꼽히는 와인 산지가 여러 곳 있다.

이들 와이너리는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아주 특별한 미식 체험까지 더해져 완벽한 휴가지로 손색이 없다.

도시에서 차로 얼마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어 접근성도 좋다.

애들레이드 주변 와이너리는 종교박해를 피해 이주해 온 독일계 이민자들이 포도나무를 심은 게 그 효시라고 한다. 덕분에 이 지역은 호주 전체에서 가장 유명한 와이너리가 밀집해 있는 곳이 됐다.

매년 100년 역사의 싱글 빈티지 와인을 출시하는 세계 유일의 와이너리 세펠츠필드(Seppeltsfield) 등 유명한 와이너리 170곳 이상이 바로사 밸리에 있다.

맥라렌 베일의 다렌버그 큐브 [사진/성연재 기자]

그러나 요즘 뜨는 곳은 따로 있다.

남호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와인 여행지 중 하나인 맥라렌 베일이다.

이곳에서는 시라즈와 카베르네 소비뇽 등 많이 소비되는 와인은 물론, 산지오베제 등 희귀한 와인도 생산된다.

셀러 도어 수만 80개가 넘고, 푸른 구릉과 바다 전망을 배경으로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장소도 수없이 많다.

이 지역을 제대로 체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전거를 타고 둘러보는 것이다.

자전거로 9km에 달하는 시라즈 트레일(Shiraz Trail)을 달리다 보면 길을 따라 늘어선 와이너리를 만날 수 있다.

자전거 여행을 할 만큼 시간이 주어지지는 않아 '오프 피스트'라는 여행사가 운영하는 와이너리 여행 코스에 몸을 맡겼다.

이 회사 대표 벤 네빌씨는 일행을 먼저 다렌버그 와이너리 다렌버그(d'Arenberg)로 안내했다.

이곳에서는 5층 높이의 인상적인 구조물인 다렌버그 큐브를 만날 수 있다.

다렌버그 큐브는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는 갤러리와 카페, 포도주 시음 방까지 갖췄다.

방문객들은 예술 작품 감상과 함께 와인 시음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와이너리에서의 소박한 점심 [사진/성연재 기자]

다렌버그 큐브를 나온 뒤 와이너리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어 이동한 벤 네빌 씨 소유 와이너리에서는 텃밭에서 바로 딴 야채로 만든 신선한 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

수년 전 싱가포르 총리가 방문해 같은 식탁에서 식사했다고 한다.

그는 단체 관광객 방문 시 음악 공연을 도와주는 카페 '아몬드 도어'도 안내해 줬다.

때마침 반 고흐의 작품에서나 봤던 아몬드꽃이 만발해 있었다.

미풍에 흔들리는 아몬드꽃에서 희미한 향기가 느껴졌다.

와이너리에서의 점심 [사진/성연재 기자]

애들레이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마운트 로프티

애들레이드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마운트 로프티산은 호주 산불을 이겨낸 호주인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해발 710m 높이의 이 산에서는 도시 스카이라인과 해안이 어우러진 탁 트인 전경을 볼 수 있다.

애들레이드 도심에서 동쪽으로 약 15km 떨어진 이곳은 매년 35만 명 이상의 지역민들과 관광객이 방문한다.

폭포와 식물원 등이 어우러진 산책로가 아름다워 주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마운트 로프티의 포도밭과 산책로 [사진/성연재 기자]

그러나 이런 아름다운 환경을 위협하는 요소가 있다.

바로 산불이다.

가장 대표적인 산불은 1983년 발생한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로 불린 화재로, 하루에 9천954㎢ 면적을 태우기도 했다. 기록적인 산불을 통해 산 전체가 철저하게 파괴됐으나 정상에 있는 탑 하나만 건재해 있다.

1852년에 지어진 마운트 로프티 하우스도 당시 큰 피해를 보았다.

이곳은 애들레이드를 상징하는 고택이자 호텔이다.

산 중턱의 파노라마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근사한 벽돌 주택은 식물학자이자 정원사이기도 한 아서 하디가 건축한 여름 별장이었다.

정원이 일 년 내내 다채로운 색상의 꽃들로 만발한 이유다.

건물 곳곳에서는 지역 화가인 스티븐 트레빌콕의 호주 식물 그림을 볼 수 있다.

고즈넉한 분위기 덕분에 이곳은 다양한 행사가 끊이지 않는다.

도착한 첫날에도 브라이덜 샤워 파티를 하는 그룹들과 맞닥뜨렸고 마지막 날에는 웨딩 촬영을 하는 신혼부부를 만났다.

가장 인상적인 요소 가운데 하나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HVR의 요리였다.

안개 낀 마운트 로프티 하우스 [사진/성연재 기자]

호주 일정 전체에서 맛보았던 가장 인상적인 세비체를 만났다.

세비체는 어쩌면 한국의 물회와 비슷한 느낌을 줬다.

와사비처럼 매콤한 소스에 담겨 서빙됐는데 먹기가 아까워 다른 요리가 나와도 계속 식탁에 둔 채 조금씩 국물을 맛봤을 지경이었다.

계산하고 나오는데 매니저가 한국인 요리사가 한 요리라고 귀띔해준다.

깜짝 놀라 만나보니 일반 요리사도 아니고 수석 요리사다.

한국인 수석 요리사 최진 씨의 한마디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회 요리는 서양 사람들이 아무리 흉내를 내려 해도 결코 우리를 따라 올 수 없습니다."

빛축제가 열리는 식물원 [사진/성연재 기자]

환상을 심어주는 보타닉 가든 그리고 미식 향연

애들레이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식점이 또 한군데 있다.

식물원 내부에 자리 잡고 있는 '레스토랑 보타닉'이다.

식물원 정문에 내렸는데 낙락장송을 배경으로 짙은 안개가 자리 잡고 있다.

알고 보니 마침 식물원에서 열리고 있던 빛을 소재로 한 축제에 사용된 미스트가 연출한 안개였다.

연극 무대에서나 보았던 하얀색 미스트와 높은 나무 사이로 붉은 레이저 불빛이 어우러진 모습은 환상 그 자체다.

마치 지구의 종말을 본 것은 아닌지 무척이나 놀랍고도 생경한 느낌이 들었다.

흥분된 마음을 뒤로 하고 식당 내부로 들어섰다.

옛 식물원 온실을 리모델링한 이곳은 가운데 요리사들의 주방이 오픈 주방이 자리 잡고 있고, 그 주변을 10여개의 테이블이 놓여있다.

수석 요리사 저스틴 제임스가 요리를 지휘하고 있다. [사진/성연재 기자]

고객들은 요리사들이 자신이 주문한 요리를 만드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수석 요리사 저스틴 제임스의 명령에 다른 요리사들이 복창하면서 신기에 가까운 손놀림으로 요리하는 모습을 그대로 지켜볼 수 있다.

이곳에서 쓰이는 모든 요리 재료는 이 식물원 내부 또는 계약 재배된 농가에서 공급받는 것들이라 무척 신선하다.

가장 인상적인 요리 가운데 하나는 녹색 잎에 덮여 나온 악어 수프였다.

녹색 잎은 수프가 빨리 식지 않고 향기를 머금도록 덮개 역할을 한다.

수프는 구수했지만 뭔가 설명할 수 없이 독특한 느낌이었다.

뭔가 인류에게 허용되지 않은 음식을 먹은 듯한 느낌.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 이런 느낌일까?

독특한 창작요리가 눈길을 끄는 레스토랑 보타닉 [사진/성연재 기자]

이곳에서도 한국인 요리사를 한 명 만났다.

수석 요리사는 아니었지만, 동양적 요소가 가미된 디저트에 대한 설명을 직접 해 줬다.

놀라운 사실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호주에는 미슐랭 스타 음식점이 단 한 곳도 없다.

그것은 호주 식당이 맛이 없어서가 아니다.

호주에는 대신 AGFG(Australian Good Food Guide Chef Hat Awards)가 있다.

레스토랑 보타닉은 열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곳이었다.

경기장 위 지붕 탐험 '루프 클라임 애들레이드 오벌' [사진/성연재 기자]

경기장 위 지붕 탐험 '루프 클라임 애들레이드 오벌'

애들레이드 럭비 경기장인 애들레이드 오벌에는 독특한 프로그램이 있다.

아름다운 경기장 지붕 위를 걸어보는 프로그램이다.

관람객들은 혹시 바람이나 악천후에 대비하기 위해 안전복과 안전 장구를 한 채 오른다.

철제 로프는 단단하게 동선에 따라 설치된 레일에 고정이 돼 안전하게 움직일 수 있다.

스타디움에 도착했을 때는 '괜히 이 프로그램을 신청했다'며 후회했다.

때마침 비바람이 불었기 때문이다.

남반구 겨울의 비바람을 이기고 지붕 위를 올라가려니 무척이나 우울했다.

'울며 겨자 먹는' 느낌으로 30여분간 비바람을 맞으며 줄에 매여 이곳저곳을 다녔다.

그러나 마지막 30여분을 앞두고 해가 고개를 내밀었다.

석양에 빛나는 경기장의 모습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호주의 대자연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었다.

스포츠 경기장도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마지막 대미는 로프에 몸을 의지해 45도 각도로 매달리는 것이었다.

아찔했다.

기아 카니발을 운전하는 데이비드 캠프벨 씨 [사진/성연재 기자]

프로그램을 마치고 돌아와 공항으로 향하는 차에서 운전기사로부터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았다.

일정 내내 친절한 안내를 해주던 운전기사 데이비드 캠프벨 씨는 애들레이드 상징이 그려진 머그잔을 내밀었다.

많은 여행지를 다녀봤지만, 운전기사로부터 선물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보답하기 위해 선물이 될만한 물건이 있는지 트렁크를 뒤졌으나 아무것도 없었다.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다.

애들레이드를 세계 3대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든 것은 풍경도 경치도 아니었다.

바로 사람이었다.

polpo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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