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말에는 의미가 있다…심지어 욕설까지도
“악! XX!”
새벽에 화장실에 가다 문지방에 발가락을 찧었다. 한참을 냉장고 옆에 쓰러져 발가락을 부여잡고 문지르다보니 창피하면서도 궁금하다.
왜 사람은 아프면 욕을 할까. 그 이유를 연구한 심리학자는 2010년 이그노벨상을 수상했다. 웃기게도 그가 받은 상의 제목은 ‘평화상’이었다.
● 왜 아프면 욕을 하게 될까
욕설은 언어학의 가장 신비로운 영역 중 하나다. 욕설은 특정 문화에서 금기시되는 부정적인 용어로 크게 종교적인 표현, 성적인 표현, 배설물과 관련된 표현으로 나뉜다.
보통 듣는 사람의 감정을 불쾌하게 만들기 위해 쓰이지만 때론 친한 사람에게 유대 관계를 보여주기 위해 쓰기도 하고 심지어는 새벽에 화장실에 가다 문지방에 발가락을 찧었을 때처럼 혼자 있을 때 쓰기도 한다.
리처드 스티븐스 영국 킬대 심리학과 교수가 관심을 가진 분야는 ‘극심한 고통을 느낄 때 욕을 하는 이유’였다. 이전에 통증 연구자들이 세운 가설은 욕설이 통증을 참지 못한 결과 하게 되는 ‘비적응 반응’이라는 것이었다.
이 가설은 욕설을 하는 것이 통증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증거이며 그래서 한 번 욕설을 뱉기 시작하면 더더욱 통증을 참지 못하는 상태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렇다면 통증으로 인해 욕을 뱉은 사람은 욕을 하지 않는 사람보다 통증을 더 강하게 느껴야 한다.
이 가설은 진짜일까. 의문을 가진 스티븐스 교수는 연구팀과 함께 욕의 생리학적 근원을 밝혀내는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연구팀은 우선 67명의 대학생 참가자를 모아 시험군과 대조군으로 나눴다. 그리고 시험군에게는 욕을 하게 하고 대조군에게는 욕설을 금지했다.
다음으로 시험군에게는 ‘망치로 엄지를 쳤을 때 말할 것 같은 단어 5개’를 적게 했다. 그리고 실험이 시작되면 이 목록에서 첫 번째로 쓴 욕설을 소리내어 말하도록 했다. 대조군에게는 ‘테이블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 다섯 가지’를 쓰고 실험 중에 이 단어들을 말하도록 했다. 테이블을 설명하는 단어가 욕설에 비해 중립적인 감정 상태라고 판단한 것이다.
● 욕, 평소에 아껴서 합시다
이제 불쌍한 대학생들에게 고통을 줄 실험 시간이다. 연구팀은 얼음처럼 차가운 물에 실험 참가자들이 손을 최대한 오래 담그도록 요청하고 참가자들이 버틴 시간을 기록했다. 고통을 얼마나 오래 참는지를 측정한 것이다. 이때 참가자들은 아까 적어낸 욕이나 중립적 단어를 외쳐야했다.
상상해보라. 누군가가 욕지거리를 외치면서 찬물의 고통을 참는 동안 다른 누군가는 “네모난! 다리가 있는! 나무로 된! 아침 식사를 먹는!” 같은 말을 외치면서 고통을 참아야 했다는 이야기다. 연구팀은 실험 전후로 심박수는 어떻게 변했는지 생리적 변화도 기록했다.
결과는 가설과 정반대였다. 오히려 욕을 한 사람들이 통증을 더 잘 버틴 것이다. 남성의 경우 욕을 한 사람이(190.63초) 욕을 하지 않은 사람(146.71초)보다 찬물에서 43.92초나 오래 버텼다. 여성도 욕을 하면 찬물 속에서 37.01초를 더 버텼다.
실험 후 통증 척도 검사에서도 욕설을 한 참가자들이 통증을 덜 느꼈다. 즉 욕설은 통증의 비적응 반응이 아니라 오히려 통증을 완화하는 효과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스티븐스 교수는 욕설로 고통에 쏠리던 관심이 분산됐기 때문에 통증이 완화되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했다.
스티븐스 교수는 이 연구로 이그노벨상을 수상한 후로도 비슷한 연구를 이어갔다. 그는 2011년에 평소에 욕을 얼마나 자주 하는지에 따라 통증이 줄어드는 범위가 다르다는 연구를 발표했다. 이 연구에는 킬대를 다니던 또 다른 불쌍한 학부생 71명이 동원됐는데 욕을 자주하지 않는 학생의 경우 욕설을 쓰면 평소보다 2배 가량 오래 찬물의 고통을 버틸 수 있었다.
반면 하루에 욕을 60번 정도 하는 입이 험한 학생들은 욕을 할 때와 하지 않을 때 고통을 버티는 시간에 별 차이가 없었다. 즉 욕을 자주 하면 습관이 돼서 고통을 버티는 효용이 사라진다는 얘기다. 평소에 말을 곱게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다.
● 추임새 ‘어?’는 만국공통어일까
노벨문학상이 세계인들의 가슴을 울린 문학 작품을 쓴 작가에게 수여된다면 이그노벨 문학상은 언어학상과 좀 더 가깝다. 보통 언어학이라 하면 복잡한 문장, 문법을 떠올린다. 그러나 언어학의 사전적 정의는 ‘언어와 관련한 여러 현상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연구하는 학문’으로 생각보다 훨씬 넓은 언어 현상을 다룬다.
그중에는 욕설은 물론 우리가 사소해서 지나치곤 하는 추임새인 ‘어?’도 있다. 네덜란드의 막스 플랑크 심리언어학 연구소의 언어학자였던 마르크 딩어만서는 추임새 ‘어?’의 기원을 찾아나선 연구를 2013년에 발표했다.
보통 우리는 누군가가 한 말을 제대로 못 들었을 때 두 가지로 반응한다. ‘뭐라고?’ 하고 질문하거나, ‘어?’ 라고 놀라거나. 딩어만서 연구원은 여러 언어의 녹음을 듣다가 ‘어?’라는 감탄사가 전 세계적으로 매우 비슷하게 나타난다는 점을 깨달았다.
문헌 조사를 해보니 이 감탄사는 전 세계 31개 언어에서 유사하게 나타났다. 영어에서는 ‘허?’, 아프리카 가나의 소수 언어인 시우어는 ‘애?’, 동남아시아 라오스 인근에서 쓰이는 라오어에서는 ‘에?’라고 했다. 감탄사는 심지어 어족이 아예 다른 언어에서도 비슷한 형태로 나타났다. 심지어 ‘어?’는 재채기나 비명처럼 생리적으로 만들어지는 소리가 아닌데도 비슷했다.
이는 언어학적으로 매우 특이한 현상이었다. 서로 다른 언어가 같은 물건을 같은 발음으로 표현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개는 영어로 ‘도그(dog)’고 독일어로는 ‘훈트(hund)’, 일본어로는 ‘이누(犬(いぬ))’로 각각 다르게 부른다. 심지어 사람들이 약속하기에 따라 개를 ‘고양이’로 불러도 ‘나무’라 불러도 상관이 없다. 개가 꼭 ‘개’라는 발음이어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스위스의 언어학자인 페르디낭 드 소쉬르는 단어가 가진 의미(기의)와 단어의 발음(기표) 사이에 필연적 의미가 없다는 이 현상을 ‘언어의 자의성’이라 불렀다.
그런데도 왜 ‘어?’는 서로 다른 언어에서 비슷한 발음이 된 걸까. 연구팀은 이것이 사실 의사소통의 오류를 수정하는 기능을 가진 매우 중요한 표현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어?’라는 말을 들으면 말하는 사람은 상대방이 내 말을 잘못 알아들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고 다시 한 번 설명을 하게 된다.
‘어?’가 없는 세상에 산다고 생각해보라. 그러면 우리는 상대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도 그냥 넘어가거나 ‘뭐라고요?’ 또는 ‘다시 한 번 말씀해주시겠어요?” 처럼 대화의 맥을 끊는 거추장스런 말을 덧붙여야 한다. 그래서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고 최대한 빠르고 간편하게 알려주기 위해서 짧고 간단한 ‘어?’가 서로 다른 언어에서 비슷한 발음과 형태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이 연구가 2015년 이그노벨 문학상을 받자 학계의 연구자들은 다른 언어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는지 살펴봤다. 베트남어, 말레이어, 노르웨이어, 광둥어, 치난텍어를 포함한 10개 언어에서 추가로 비슷한 감탄사가 발견됐다.
딩어만서 연구팀의 연구는 사소해보이는 말도 심오한 의미를 가진 연구 소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이 연구를 통해 우리는 언어의 진화에서 일어나는 희귀한 현상을 알게됐을 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의 사람이라도 ‘어?’라는 말은 대충 알아들을 수 있다는 점도 배울 수 있게 됐다. 생각할수록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어?
※관련기사
과학동아 8월호, [이그노벨상] 웃기려고 한 연구 아닙니다 8화. 모든 말에는 의미가 있다, 심지어 욕설까지도
[이창욱 기자 changwooklee@donga.com]
Copyright © 동아사이언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