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새워 설계하라”던 우주 1위 부동산 회사의 위기[딥다이브]
위태롭던 중국 경제를 뒤집어놓을 만한 초대형 폭탄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대형 부동산개발업체 비구이위안(碧桂園·컨트리가든)의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입니다. 중국 부동산 업계에서 6년 연속 매출 1위(2017~2022년)로 ‘우주 최대 부동산 회사’로까지 불렸던 비구이위안이 ‘회사채 상환에 불확실성이 크다’고 선언하면서 위기가 중국 금융시장으로까지 번지고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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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의 회전율 ‘345 모델’
‘석공에서 억만장자로’. 비구이위안 창업자 양궈창(楊國強)을 설명할 때 많이 나오는 표현입니다. 17살까지 신발을 신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가난했던 흙수저 건설노동자가 놀라운 성공 신화를 쓴 거죠.
①경쟁이 덜한 3선 또는 4선 도시를 공략했습니다.
중국은 인구와 경제 수준에 따라 도시를 1~5선 도시로 구분하는데요. 당연히 가장 앞선 1선 도시(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선전 등)의 부동산 개발 시장은 경쟁이 치열합니다. 반케(万科)나 소호차이나 같은 쟁쟁한 업체들이 1선 도시 쪽은 꽉 잡고 있죠.
비구이위안은 처음부터 이런 큰 도시 대신 3선이나 4선 도시, 그것도 교외 지역을 공략합니다. 3선이라고 해도 인구가 300만~500만명이나 되다 보니 주택 수요는 빠르게 늘고 있었거든요. 소득 수준과 함께 소비자 눈높이가 높아지는 이들 지역에서 ‘별 다섯 개짜리 주택을 지어주겠다’는 비구이위안의 슬로건은 꽤 잘 먹혔습니다.
②절정의 ‘높은 회전율’을 추구합니다.
모든 사업이 그렇지만, 많은 자본이 투입되는 부동산 개발사업의 성패는 속도에 달려있습니다. 빨리 승인받고, 빨리 착공하고, 최대한 일찍 분양하고, 빨리 공사를 마무리 짓는 게 비용을 절감하고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이죠.
비구이위안은 바로 이 점에서 놀라운 역량을 보였는데요. 이른바 ‘345’ 모델입니다. 토지 취득 후 3개월 이내에 공사를 시작해서, 4개월 뒤 자금 확보를 마치고, 5개월 뒤엔 자금을 회수해 재투자한다는 뜻인데요.
중소도시 사랑의 결말
건설 승인 절차와 규제가 까다로운 1선 도시와 달리 3, 4선 도시는 승인도 더 빨리 나오고 규제도 아무래도 좀 널럴합니다. 비구이위안이 높은 회전율을 추구하기 위해 이런 중소도시를 공략했다는 해석이 나오는데요. 부동산 시장 성장기에 이 전략은 상당히 효과적으로 보였습니다. 덕분에 몸집을 매우 빠르게 키울 수 있었으니까요. 비구이위안 매출은 2015년 1000억 위안, 2017년 2000억 위안을 돌파하며 업계 1위에 올랐습니다.
만약 그때라도 비구이위안이 전략을 대폭 수정했다면 상황이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실제로는 크게 달라진 게 없었습니다. 여전히 건설비용은 엄격히 통제했고 중소도시를 사랑했죠. 비구이위안의 지난해 매출 62%는 3선 또는 4선 도시에서 나왔고요. 개발을 위해 확보해둔 토지의 4분의 3이 이런 작은 도시지역이었습니다. 상대적으로 경쟁사보다 마진율은 낮지만 많이, 빨리 판매하는 일종의 ‘박리다매’ 전략이었죠.
사실 어디든 아파트를 짓기만 하면 무조건 팔리던 부동산 호황기에야 그래도 상관없었습니다. 문제는 2020년 하반기부터 중국 주택시장의 거품이 쫙 빠졌다는 점입니다.
급기야 이달 초 회사채 이자 상환에 실패한 데 이어, 11일 양후이옌 CEO가 “설립 이후 가장 큰 어려움에 직면했다”는 성명을 발표합니다. 14일엔 ‘11종 채권 거래 중단’까지 발표했는데요. 이대로라면 9월 초 돌아오는 채권 만기 때 결국 채무불이행(디폴트)에 빠질 거란 관측이 나옵니다. 참고로 비구이위안이 중국 전역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는 3121개, 완공해야 할 주택은 거의 100만채에 달합니다.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중국 금융시장 상황에 대한 속보는 당분간 계속 이어질 거고요. 이쯤에서 비구이위안을 위기로 몰아넣은 또 다른 초대형 프로젝트를 소개합니다. 바로 말레이시아 ‘포레스트시티’입니다.
유령 도시 된 숲의 도시
비구이위안이 말레이시아 조호주정부와 손잡고 건설 중인 포레스트시티의 홈페이지에 나오는 설명입니다. 조호바루시 외곽 싱가포르 인접 지점의 맹그로브 늪을 메워서 70만명이 사는 신도시를 건설한다는 원대한 프로젝트인데요. 2015년 이미 착공했고, 2035년까지 프로젝트가 진행될 계획입니다. 20년 동안 총 예상 투자금은 무려 1000억 달러(134조원).
왜 이 모양이냐고요? 애초에 포레스트시티는 부유한 중국인들을 위한 세컨하우스로 지어졌습니다. ‘바다 전망 집을 상하이보다 훨씬 싸게 장만하세요’라는 컨셉이었는데요. 문제는 예전처럼 중국 중산층이 말레이시아에 집을 사는 데 적극적일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일단 2018년 재집권한 마하티르 당시 말레이시아 총리가 “포레스트시티에 집을 사는 외국인에게 비자를 내주지 않겠다“고 폭탄 선언했습니다. 사실상 중국인의 집 소유를 막겠다고 한 건데요. 이후 총리실이 입장을 바꾸긴 했지만, 오락가락 정책에 중국인들의 투자 열기가 확 식어버렸습니다. 마침 중국 시진핑 정부가 해외로의 자본유출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고요(연간 5만 달러 상한). 게다가 2020년 들어서는 코로나까지 겹치며 이동까지 막혔죠.
중국인이 안 사면 말레이시아 현지인에 팔면 되지 않냐고요? 현지인은 이걸 살 이유가 없습니다. 말레이시아인 입장에선 교통이 불편한 지역에 지어진 쓸데없이 비싼 아파트이거든요(조호바루시 평균 주택 가격의 약 7배 수준). 말레이시아 뉴스트레이트타임스의 르포기사에 따르면 현지인들은 “이런 곳은 정말 숲으로 변하겠다”는 조롱 섞인 반응을 보이고 있죠.
비구이위안은 포레스트시티를 시진핑 주석이 2013년 처음 천명한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 구상의 일환이라며 홍보해왔습니다. 하지만 되레 일대일로가 차질을 빚고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사례로 남을 판인데요. 포레스트시티 프로젝트가 지금 비구이위안이 겪고 있는 유동성 위기에 얼마나 기여했느냐는 불분명하지만, 그룹의 자금난이 가뜩이나 우울한 포레스트시티의 미래를 더 어둡게 만들 가능성은 상당히 커보입니다. 한때 15홍콩달러가 넘었던(2018년 초) 비구이위안 주가는 18일 사상 최저인 0.76홍콩달러를 기록했습니다. By.딥다이브
비구이위안은 30년 동안 성공을 이어간 데다, 비교적 모범적으로 경영해왔다(헝다처럼 문어발식 확장은 하지 않음)는 평가까지 받아왔던 기업인데요. 이번 사태로 ‘아니, 비구이위안마저!’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습니다. 여러 차례 위기를 넘겨본 노련한 기업이라고 해도 급변하는 경제 흐름을 잘 따라가지 않으면 훅 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싶습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하자면
-흙수저 성공 신화의 주인공 양궈창 창업자가 이끈 비구이위안. 중국의 3, 4선 도시를 중심으로 한 ‘높은 회전율’ 전략의 효과로 중국 1위(중국에서 흔히 쓰는 표현으로는 ‘우주 1위’) 부동산 개발회사가 됐습니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이 침체에 빠지면서 비구이위안이 공략해온 3, 4선 도시 주택시장이 급격히 얼어붙었습니다. 비구이위안은 급기야 채권 이자 상환에 실패하며 디폴트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중국 부동산 기업 사상 최대 프로젝트라던 말레이시아 ‘포레스트시티’ 역시 비구이위안의 침몰을 부채질한 요인입니다. 유령도시가 된 포레스트시티가 비구이위안의 우울한 미래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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