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근래 가장 독특한 장르무비…재기발랄한 현대 공포 심리극[봤어영]
현대인의 스트레스로 풀어낸 일상 공포…94분의 긴장
미니멀하고 기발한 연출…강렬하고 반가운 데뷔작
오는 9월 6일 개봉을 앞둔 정유미, 이선균 주연 ‘잠’은 행복한 신혼부부 현수(이선균 분)와 수진(정유미 분)을 악몽처럼 덮친 남편 현수의 수면 중 이상행동, 잠드는 순간 시작되는 끔찍한 공포의 비밀을 풀기 위해 애쓰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잠’은 지난 5월 열린 칸 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돼 처음 베일을 벗은 뒤 국내외 평단, 매체들의 극찬을 이끌어냈다. “단순한 몽유병에 대한 상상력과 교묘한 변화”, “숨 쉴 틈 없이 매력적이고 드라마틱하다”는 호평을 받으며 칸을 시작으로 시체스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토론토 국제영화제, 판타스틱 페스트에 초청되며 해외 영화계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영화의 구조는 미니멀하다. 주요 등장인물이 수진과 현수 두 명 뿐에, 이야기가 전개되는 장소도 수진과 현수의 집 거실, 침실로 한정돼있다. 다만 이야기를 크게 3장으로 나누고, 구간 구간 사이 큰 변주를 줬다. 자칫 단조롭고 지루해질 수 있는 전개에 숨통을 불어넣고, 각 장 사이의 공백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상상력을 불어넣는 영리한 장치다. 지난해 칸 영화제를 비롯해 국내 시상식을 휩쓴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을 떠오르게 만드는 구성이기도 하다.
영화는 임신한 아내 수진이 남편 현수의 수면 중 이상행동을 처음 발견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후 부부가 합심해 몽유병을 치료하기 위해 수면 클리닉을 다니는 과정, 점점 더 심해지는 현수의 수면 중 이상행동과 이를 지켜보며 잠들지 못하는 수진, 딸 하영이 태어난 후 더욱 극도의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서서히 미쳐가는 수진, 치열히 문제를 해결하려 고군분투하는 부부의 내적, 외적 갈등과 결말까지. 오로지 두 인물의 상황과 그에 따른 심리 변화만으로 클라이맥스까지 관객들을 몰입감있게 이끈다.
각 장마다 변화하는 집안의 분위기와 적절한 음악 선택, 섬뜩한 효과음으로 94분 내내 긴장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기가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몰라 불안에 떠는 남편, 그런 남편을 보며 잠들 수 없는 아내의 심리 변화를 대사와 배우들의 몸짓으로 섬세히 담아냈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단순히 소재가 독특한 장르 영화를 뛰어넘어 웰메이드로 발돋움할 수 있던 데는 정유미와 이선균 두 배우의 한계를 뛰어넘는 열연이 팔할 이상을 차지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정유미가 연기한 ‘수진’은 3장을 향해갈수록 감정선 및 심리가 가장 극단적으로 날뛰고 변화하는 캐릭터다. 영화 중반부까지 9에 머물러있던 스릴과 공포가 정유미의 날카롭고 처절한 호연 덕분에 극 막바지 10으로 완전해진다.
호러 한 장르로 규정할 수 없는 다채로움도 이 영화의 매력이다. 현대 사회의 일상을 풍자하는 블랙코미디이기도, 서로가 서로를 포기하지 않고 구하려 애쓰는 부부의 애틋한 로맨스이자 처절한 가족극이기도 하다. 물론 이는 어떻게든 아내와 아이 가족을 지키고 싶은 남편의 처절한 노력과 사랑, 희생을 표현해낸 이선균의 입체적 열연으로 채워졌다.
‘잠’으로 입봉한 유재선 감독은 ‘옥자’의 연출부 출신으로 봉준호 감독과 2년 이상 함께한 제자이기도 하다.
소품과 인테리어, 음악 등 디테일 하나하나에 공을 들이는 봉준호 감독의 연출 스타일과 재기발랄한 유머 코드를 훌륭히 물려받으면서, 자신만의 색깔까지 뚜렷이 드러낸 강렬한 데뷔작이다.
9월 6일 개봉. 15세 관람가.
김보영 (kby5848@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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