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드라마에 빠진 중국인...일본제품 쓸어가더니 9억원에 팔렸어요 [추동훈의 흥부전]
[흥부전-19][브랜드로 남은 창업자들-14] 토리이 신지로
한국에선 ‘아침드라마=막장드라마’란 인식이 존재합니다. 복잡한 출생의 비밀과 상상을 뛰어넘는 전개는 흥미를 넘어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하고 김치싸대기, 오렌지주스 주르륵 사건 등 여러 장면들은 K-아침드라마를 대표하는 레전드 신입니다.
사실 일본은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미국, 캐나다와 더불어 세계 5대 위스키 생산국 중 한 곳으로 전세계적으로도 ‘재패니즈 위스키’로 불리울 정도로 세계적인 위스키 강국입니다. 헌데 아는 사람만 알고 마시는 사람만 즐기던 이 일본산 위스키가 아침 드라마의 흥행으로 대중적으로 인기를 모으며 가정주부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고 해당 위스키업체들도 재빨리 대응에 나서 수량 조절에 나서며 자연스레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흥부전(‘흥’미로운 ‘부’-랜드 ‘전’(傳))에 위스키 이야기냐구요? 오늘의 주인공 역시 브랜드에 이름을 남긴 창업자, ‘토리이 신지로’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언급한 두명의 일본인 중 익숙한 브랜드가 있으신가요? 잘 모르시는 분이 많으실텐데, 오늘의 브랜드는 다름아닌 산토리입니다. 보통 맥주 브랜드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일본 최초의 위스키가 바로 산토리에서 시작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1879년 오사카에서 태어난 토리이는 지방에서 상점을 운영하고 환전상으로 일한 아버지를 따라 약품, 주류 등 각종 수입 물품을 유통하고 판매하는 가게를 운영했습니다. 그는 7년여간의 견습생활을 끝내고 20대 초반의 나이에 직접 토리이 상점을 열었습니다. 특히 ’오사카의 코‘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후각이 뛰어났던 그는 맛과 향으로 점철된 술, 특히 와인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토리이는 다음 꿈을 향해 다가갔습니다. 바로 와인과 더불어 큰 관심을 갖고 있던 위스키의 국산화에 나선 것입니다. 일본에서 직접 위스키를 생산하기 위해 좋은 물을 구할 수 있고 위스키를 만드는데 적절한 기온과 습도를 갖춘 곳을 찾아 헤매던 그는 오사카와 쿄토 사이에 위치한 야마자키 지역에 증류소를 짓기로 결정합니다.
헌데 문제는 수백년의 역사와 전통, 노하우가 필요한 위스키 생산을 위한 전문성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와인보다도 훨씬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필요한 위스키 공정을 위해 수소문에 나선 그는 그렇게 귀인을 만납니다. 바로 아침드라마 맛상의 주인공, 다케츠루 마사타카입니다.
그는 유학생활 내내 만년필을 지니고 다니며 증류소 내부를 스케치하고 메모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꼼꼼하고 빈틈없는 그의 성격은 향후 일본의 위스키 산업 발전에 큰 공을 세우게 됩니다. 이러한 그의 습관은 리처드 버틀러 전 영국 부총리가 1960년대 일본을 방문해 “한 일본 청년이 만년필 한 자루로 우리의 (위스키) 기술을 훔쳐갔다”고 이야기하며 대중적으로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토리이는 다케쓰루의 역량을 한눈에 알아보고 연봉을 기존의 10배를 주고 공장장으로 영입해옵니다. 30살에 불과한 다케츠루에게 자신의 운명을 건 것이죠. 운도 따랐습니다. 유학길을 마치고 돌아온 다케츠루의 회사는 경영난으로 도산했고, 결국 임시방편으로 화학교사로 일하고 있던 그에게 토리이의 제안은 거부할 수 없는 기회였습니다.
사업가 토리이와 전문가 다케츠루는 첫 만남부터 서로를 알아봤습니다. 다만 시작부터 손뼉이 딱 마주치진 못했습니다. 다케츠루는 최적의 위스키 생산에 알맞는 홋카이도에 증류소를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토리이는 물류비용 등의 최적화를 위해 자신이 점찍어둔 야마자키로 가야 한다고 부딪혔죠. 결국 사장인 토리이의 주장을 못이긴 다케츠루는 야마자키로 양보하며 본격적인 일본의 위스키 산업이 태동하기 시작합니다. 1923년 그렇게 야마자키 증류소가 탄생합니다.
또한 전후 산토리 위스키를 맛본 미군에게 입소문이 나며 금방 미국과 유럽, 전 세계에서 산토리의 인기가 높아져 갔습니다. 산토리는 1963년 맥주 출시를 나서며 위스키 브랜드였던 산토리를 회사명으로 바꿔버렸고 이후 청량음료 , 하이볼 등 각종 제품들을 출시하며 지금의 모습을 갖췄습니다.
영원히 서양의 술이자 문물로 남을뻔 했던 위스키. 일본은 10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공을 들이고 노력해 국산화에 성공하고, 재패니즈 위스키라는 고유의 영역을 일구어냈습니다. 하루에도 유행이 몇번씩 바뀌는 요즘 시대, 결국 진짜 명품은 결국 속도만으로 이뤄지지 못하는 것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의 K-브랜드 역시 지나가는 유행가처럼 지나가지 않고 100년 넘게 기억되고 간직될 수 있는 브랜드로 남을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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