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두른 철제 펜스, 불법 아닌가요[집피지기]

이예슬 기자 2023. 8. 19.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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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서울.

모든 것이 무너졌지만 황궁아파트 103동만은 멀쩡하다.

주민들은 "아파트는 주민의 것"을 연호하고, 부녀회장은 확성기에 대고 "단지 안에 들어올 수 있는 건 오직 주민 뿐이에요"를 외치는데요.

서울 강남권 신축 대단지 아파트들이 펜스를 둘러치면서 외부인들과 갈등이 커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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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보행통로 두고 공공성 VS 재산권
"외부인 통행권 제한하는 이기주의"
"함부로 시설물 이용하고 조경 훼손"
공공보행로 두는 조건으로 사업 승인
사유재산이고 법에 명확한 근거 없어

[서울=뉴시스] 이예슬 기자 =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서울. 모든 것이 무너졌지만 황궁아파트 103동만은 멀쩡하다. 이 소식을 들은 외부인들이 아파트로 몰려들자 입주민들은 바리케이트를 쳐 외부인들의 출입을 금지하고 주민들만의 유토피아를 공고히 구축하는데…

최근 개봉한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내용입니다. 주민들은 "아파트는 주민의 것"을 연호하고, 부녀회장은 확성기에 대고 "단지 안에 들어올 수 있는 건 오직 주민 뿐이에요"를 외치는데요. 이 영화의 내용에서 언뜻 최근의 세태가 떠올랐습니다.

서울 강남권 신축 대단지 아파트들이 펜스를 둘러치면서 외부인들과 갈등이 커지고 있습니다. 비밀번호를 입력하거나 카드키를 가져다 대야만 출입이 가능하도록 문을 걸어 잠그는 추세입니다.

문제는 이 같은 배타주의가 외부인의 통행권을 제한하고 인근 주민들의 생활 동선을 망가뜨린다는 것입니다. 수 천 세대 규모의 대단지 아파트가 외부인의 출입을 막으면 다른 이들은 직선으로 질러가면 가까울 거리를 아파트를 빙 둘러 수 분에서 수 십분을 더 걷게 되니까요.

그래서 보통 지구단위계획에는 '공공보행통로'가 포함됩니다. 아파트 대지 안에 일반인이 지날 수 있도록 24시간 개방된 통로를 말합니다. 대단지 아파트가 자기들만의 '철옹성'을 쌓는다면 일반인들에게 치명적인 불편함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지자체들은 공공보행통로를 두는 조건으로 정비사업을 승인해 주죠. 혹은 공공보행통로를 수용해 공공성을 확충하면 용적률 인센티브라는 재산상 이익을 주기도 합니다.

주민들은 입주 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재산상의 손해가 너무 크다고 항변합니다. 당초 개방형 아파트를 추구했지만 외부인들의 오물투척, 반려견 배변 처리 등으로 골머리를 앓다가 큰 돈을 들여서라도 어쩔 수 없이 펜스를 설치하게 됐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죠. 지하철역이나 학교 접근이 쉽도록 공공보행통로를 이용하는 것까지는 거부감이 없지만, 시설물을 무단 사용하거나 조경 시설을 훼손하는 행태까지 허락한 적은 없다는 것입니다.

지하철 수인분당선 개포동역과 대모산 사이에 위치한 강남구 개포동 디에이치아너힐즈 아파트는 등산객들과의 잦은 실랑이 끝에 보행통로에 철제 담장을 설치했습니다. 단지 내에서 음식을 먹거나, 거나하게 취한 등산객들이 벤치를 차지하는 등의 불편이 이어지자 불가피하게 '외부인 출입금지'를 결정했다는 설명입니다.

아파트 주민들이 개방형 건축이라는 사업 승인 조건을 저버려도 지자체가 어찌 할 방법은 없어 보입니다. 공공보행통로로 쓰이는 땅이지만 아파트 주민의 사유재산이기 때문에 통제하기 어렵고, 용적률 인센티브를 받았더라도 이미 건물을 올린 이상 인센티브를 토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강남구청이 디에이치아너힐즈 조합장을 공동주택관리법 위반으로 고발했지만 처분은 벌금 100만원에 그친 사례가 있습니다.

법에 근거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는 것도 지자체들이 손을 못 쓰는 이유입니다. 현재 공동주택관리법상 아파트 내 공공보행통로 관련 규정이 따로 없는 상황입니다.

공공성과 재산권이라는 두 가치가 팽팽히 맞서는 이 문제,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집피지기' = '집을 알고 나를 알면 집 걱정을 덜 수 있다'는 뜻으로, 부동산 관련 내용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기 위한 연재물입니다. 어떤 궁금증이든 속 시원하게 풀어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ashley85@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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