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컷] 착시를 부르는 이태리 예술 사진들
어두워가는 하늘을 뒤로 높은 산들이 이어진 풍경이 보인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산이 아니라 부러진 나무다. 다른 고목은 미래 도시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진가 안토니오 비아시우치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등산을 하다가 우연히 부러진 나무를 발견하고 이런 사진들을 완성했다. 색을 버리고 사실감을 배제한 흑백 사진의 질감으로 최소의 조명만으로 광선의 대비를 통해 사진가의 상상력을 극대화했다.
이 노련한 이태리 사진가는 부러진 나무나 동물뼈, 화산재, 모짜렐라 치즈 등을 흑백사진으로 찍어서 생명의 탄생과 소멸에 대해 이야기 한다. 냄비 속에 끓는 우유 거품과 치즈 덩어리가 마치 우주에서 혜성 하나가 불덩어리로 날아오는 것 처럼 보인다.
강원도 영월에서 열리는 올해 동강국제사진제의 국제주제전은 비우사우치처럼 상상력으로 가득한 이태리 사진가들을 소개했다. 역사이래 그림이나 조각, 건축, 장식미술, 패션,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시각 예술을 주도한 최고의 나라를 꼽는다면 이태리가 아닐까? 그런 이태리의 사진가들은 어떤 사진을 찍었을까? 올해 동강사진제에 소개된 11명의 이태리 사진가들은 비우사우치를 포함해서 저마다 독특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작업해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마시모 비탈리는 평온한 해변에서 휴가를 즐기는 관광객들을 기록한다. 비탈리는 이태리 피사와 가까운 루카에서 사람들의 그림자가 거의 보이지 않는 정오 시간을 골라 촬영했다. 피사체의 그림자를 최소화하면서 인물 마다 온전한 모습들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얼핏 보면 레고 장난감들을 풍경에 배치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여러 장의 사진을 레이어로 합성해서 보여주는 안드레아스 거스키 방식이 아닌 온전한 대형 카메라로 한 장씩 찍는 전통적인 사진 촬영법을 추구한다. 또 다른 사진 프레임 안에는 단순한 해변의 풍경이 아니라 건강을 기원하는 사람들의 새벽 입수 풍경이 담겨 있다.
마리오 크레시는 1960년대 이태리 남부의 도시 문화를 문화인류학적인 프로젝트로 기획했다. 당시의 가족(현재)들과 가족들이 가진 앨범이나 액자 속 사진들, 그 사진들을 보면 가족들이 살고 있는 오늘의 역사가 사진 속에 보인다.
그러나 단순히 외모의 닮은꼴이 아니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은 부모의 역사를 이어받았으며 개인의 시간 속에 과거가 녹아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연작 사진 작업은 이후에 많은 사진가들에게도 반복되지만, 당시로서는 신선한 기획이었다.
동강국제사진제는 가장 더운 여름에 열리지만 올해로 벌써 21번째를 맞았다. 강원도 영월엔 동강사진박물관이 있고 해마다 열리지만 동강사진축제는 그만큼 봐야할 사진이 많다. 기자가 방문한 날도 8월 오후의 뜨거운 폭염을 뚫고 서울에서 단체로 온 사진동호회 회원들이 전시장을 찾았다.
올해 동강사진상 수상자인 윤정미 사진가의 사진은 우리에게 익숙한 <핑크&블루 프로젝트> 연작 뿐 <동물원>과 <자연사 박물관> 등도 볼수 있다. 또 국제공모전으로 소개되는 19인의 사진가들 사진과 보도사진가전, 강원특별자치도 사진가전 등도 감상할 수 있다. 전시는 9월 24일까지.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