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로 걸었을 뿐인데…지구 기운, 몸속으로 ‘쭉쭉’ [ESC]
땅에서 들어온 자유전자, 활성산소 중화…염증 줄이고 노화 방지
젖은 땅 전자 유입량 증가…어싱 인구 늘면서 황톳길 많아져
초보자는 하루 20분부터…걷기 충격 조심하고 고령층 자제해야
“직장생활 스트레스로 우울하고 급노화가 왔는데, 여기 오면 되게 행복해요. 상쾌해요. 천국에 온 것 같아요.”
지난 11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영장산에서 물웅덩이에 들어가 맨발로 제자리걸음을 하던 이유미(50)씨가 말했다. 산모기를 피하기 위해 긴바지를 내린 채였다. 전날 지나간 태풍 카눈의 영향권에 있었던 등산길 곳곳에는 흙탕물이 고여 있었다. 이씨는 검은색 등산바지에 점점이 갈색 얼룩이 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어싱’(earthing)에 몰두했다.
분당에 사는 이씨는 올해 6월부터 영장산에서 거의 매일 하루 1시간씩 ‘땅을 밟았다’. 그는 “꾸준히 체성분 측정을 하는 편인데, 최근 2개월간 체지방이 600g 줄어든 반면 근육량은 200g 늘었다”고 했다.
“저는 어싱 3주차인데, 첫날부터 불면증이 사라졌고 낮에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쌩쌩해요.” 나도 거들었다.
푹신푹신한 황톳길
어싱은 땅(earth)과 현재진행형(ing)의 합성어다. 지구와 우리 몸을 접촉함으로써 지표면에 존재하는 에너지를 우리 몸으로 흡수하는 행위를 통칭한다. 우리말로는 ‘접지’(接地)라고 한다. 맨발로 산이나 해변을 걷는 것, 모래찜질을 하는 것, 수영을 하는 것도 모두 어싱이다. 미국의 전기기술자 클린턴 오버, 심장의학자 스티븐 시나트라, 자연치유 저술가 마틴 주커는 2010년 펴낸 ‘어싱: 땅과의 접촉이 치유한다’라는 책을 통해, 땅을 맨발로 밟을 때 몸속으로 흘러드는 자유전자(음전하)가 염증과 만성질환의 원인인 활성산소(양전하)를 중화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저 땅과 몸을 연결하는 것만으로 불면증, 만성통증, 스트레스, 염증으로 인한 노화 등을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씨는 “최근 부쩍 맨발로 산길을 걷는 사람이 눈에 많이 띈다”고 했다. 어싱 인구가 늘면서 기존에 조성됐던 서울 강남구 대모산, 성동구 서울숲, 대전 대덕구 계족산, 전남 순천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코스 외에 전국 지방자치단체들도 어싱길을 조성했다. 최근에 조성된 황토 기반의 어싱길은 야생 흙길에 비해 부상 위험이 적고, 폭신한 구간도 존재해 마치 찰흙을 밟는 듯한 재미도 느낄 수 있다. 서울 중랑구 용마폭포공원, 인천 연수구 봉재산, 경기 성남시 수정구 수진공원, 의왕시 포일숲속공원 등에서 ‘황토 어싱길’을 걸을 수 있다. 앞서 서울 서대문구는 2021년 12월 안산 자락길에 ‘친환경 코르크 포장 맨발길’을 조성한 데 이어, 지난 17일에는 안개분수 시설을 갖춘 촉촉한 황톳길도 추가로 개장했다.
대모산에서 2016년부터 ‘맨발걷기숲길힐링스쿨’을 진행해온 박동창(71) 회장은 ‘어싱 고수’다.박 회장은 “맨발로 땅을 걸으면 어싱 효과에, 자연 지압 효과가 더해진다. 그리고 발바닥 아치와 발가락 기능도 활성화된다”며 맨발걷기의 장점을 설명했다. 박 회장은 △염증 해소 △통증 완화 △심혈관질환 예방·치유 △뇌질환 예방·치유 △신경 안정 △면역계 정상화가 회원들의 체험을 통해 확인됐다고 했다.
다만, 신발이라는 보호막 없이 맨땅에 발을 딛는 맨발걷기에는 지켜야 할 안전 수칙이 있다. 박 회장의 말이다.
“먼저 간단한 준비운동으로 근육과 관절을 풀어줍니다. 걸을 때는 항상 눈앞 1~2m의 지면을 응시해야 합니다. 위험물이 나올 때 즉시 피하기 위함이죠. 발걸음은 항상 똑바로, 가능하면 수직으로 내딛도록 걸어 돌부리에 발끝이 걸리지 않도록 합니다. 길 밖 풀숲에는 맨발로 들어가지 않아야 합니다. 만약의 부상에 따른 감염에 대비해 파상풍 예방접종도 권장합니다.” 어싱을 마친 뒤에는 발을 비누로 깨끗이 씻고 보습제를 발라주면 좋다.
수분은 어싱 효과를 극대화한다. 박 회장은 “땅이 젖어 있을 경우 저항치가 낮아져 접지 시 전자 유입량이 증가한다”며 “개울물이나 강물에 몸을 담그는 것과 바닷가나 갯벌을 맨발로 걷는 것 모두 훌륭한 어싱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비 온 뒤 흙길 걷기도 여기에 포함된다. 메말랐던 땅이 물기 덕에 한층 푹신하고 부드러워지는 것은 덤이다.
“특히 점성이 높아 수분을 오래 유지하는 황톳길이나 염도가 높은 바닷물이 전기의 전도성이 높고, 따라서 접지 효율이 높아 어싱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클레이 코트 누비는 ‘맨발의 중년’
‘운동은 집 근처에서’라는 말이 있다. 운동 장소가 집에서 멀면 자칫 빼먹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어싱은 접근성이 좋은 운동이다. “흙길이라면, 어디서든 어싱 효과를 누릴 수 있”(박 회장)기 때문이다. 거주지 근처의 학교 운동장, 놀이터, 심지어 클레이 코트 테니스장에서도 어싱을 즐길 수 있다.
한국외국어대에서 루마니아학을 가르치는 외래강사 이호창(55) 박사는 30년차 테니스 동호인이다. 그리고 10년 전부턴 ‘맨발 테니스’를 즐기고 있다. 이 박사는 주말마다 경기 분당에 있는 실외 클레이 코트에서 맨발로 뛰어다니며 라켓을 휘두른다. 평소 손과 발에 땀이 많던 그는 어느 날 신발과 양말을 벗은 채로 테니스를 하다가 뜻밖의 효과를 봤다고 한다. “처음엔 좀 어색했지만 곧 발의 움직임이 더 가벼워졌어요. 스텝을 조심스럽게 밟게 되니 공도 더 정확하게 맞는 느낌이 들었고요. 제 경우 신발을 벗었을 때 피로도가 적어서 더 많이 뛸 수 있는 것 같아요.”
이 박사는 부상을 염려해 “초보자에게는 맨발 테니스를 권하지 않는다”면서도 “테니스 스텝에 자신이 있는 분이라면 시험 삼아 맨발로 뛰어보기를 추천한다. 상대를 이기려 드는 대신 기분 전환한다는 느낌으로 시도해보면 삶의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라고 했다. 단, 맨발 테니스는 마사토나 앙투카(불에 구운 흙을 모래처럼 분쇄한 재료)가 사용되는 ‘클레이 코트’에서만 추천된다. 이 박사는 우레탄 등 화학물질을 발라놓은 ‘하드 코트’에서는 관절 부상, 인조잔디에 모래가 섞여 있는 ‘옴니 코트’에서는 물집과 화상 피해를 볼 수 있으니 반드시 테니스화를 신으라고 당부했다.
경기 과천에 사는 주부 송송이(40)씨는 2019년부터 당시 5살이던 쌍둥이 아들과 함께 어싱을 시작했다. 송씨는 “아이들이 잔병치레가 잦아서 소아과를 자주 찾던 시기였는데, 모래 놀이터에서 매일 맨발로 놀기 시작한 뒤로 아이들이 건강해지고 면역력이 높아졌다. 감기로 유치원에 빠지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고 말했다. 접지제품을 활용하면 땅이나 물에 직접 연결하지 않고도 어싱 효과를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접지제품은 전도성이 있는 특수섬유로 제작한 패드, 매트, 방석에 전기를 연결해 자유전자를 유입시키는 방식이다. 송씨는 “접지 패드에서 쉬면 숙면을 하게 되는 느낌이다. 아이들이 책 읽는 자리에도 접지 패드를 깔아줬다”며 “아이들이 감기에 걸려 몸이 안 좋을 때 접지 패드를 두르고 쉬기도 한다”고 말했다. 소파, 의자, 자동차 시트 등에 접지제품을 깔면 움직이지 않고 몸을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어싱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맨발로 땅을 밟거나 걸을 수 없는 경우 또는 실내에 머물거나 잠을 자는 시간에도 접지제품을 이용해 실내에 있는 콘센트나 수도관을 활용하면 접지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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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싱, 겨울에도 한다
전문의들이 공통적으로 꼽은 어싱의 장점은 통증 완화, 스트레스 감소, 수면 질 향상, 혈액순환 개선이었다. 광주 북구에 있는 그린요양병원의 안수기 대표원장은 “대지에는 면역력에 도움이 되는 유익한 미생물이 수만가지 이상 분포돼 있다”며 “발바닥에는 침 치료 혈 자리뿐 아니라 인체의 장부와 연관된 반응과 반사구가 다양하게 퍼져 있다. 발바닥 자극만으로 얻는 이점과 치료 효과가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서울 중구 정이안한의원의 정이안 원장도 “만성 중증도 다발성 통증 환자들, 중증도의 자율신경실조증 환자들의 경우 어싱 시작 후에 본치료의 효과도 빠르게 좋아졌다. 증상이 복합적으로 중한 환자들에게 어싱을 치료 보조 방법으로 권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 원장은 어싱이 “기운을 하강시켜 뇌 피로를 풀어주고 인체 에너지 균형을 맞춰준다”며 “부교감 활성을 돕는 최고의 치유법”이라고 덧붙였다.
경기 파주 달리자병원의 정형외과 전문의 최광욱 대표원장은 “적외선 체열검사로 비교해보면 신발을 신었을 때보다 맨발로 걸을 때 혈액순환이 원활해지며 체온이 상승한다”며 허리 통증 환자에게는 통증 감소 효과가 있으며, 혈관 벽에 붙어 있는 노폐물이 씻겨서 고혈압·심혈관질환을 예방·개선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또 맨발걷기를 통해 발 관절과 힘줄 기능이 강화돼 관절에 가는 압력이 줄고, 균형감각이 좋아져 노년기 낙상사고 위험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맨발걷기도 조심해서 해야 한다. 완충 작용을 해주는 신발을 벗은 상태이기 때문에 걷기 충격이 그대로 전해져 척추에 무리가 갈 수 있다. 최 원장은 “초보자의 경우 하루 20분 이상 맨발걷기는 독이 될 수 있다. 평발이거나 허리나 발뒤꿈치 통증이 있는 분들은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 “고령층은 발바닥 지방층이 얇아진 상태이므로, 자극이 가해지면 족저 신경이 눌리며 오히려 다른 통증이 생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무더운 여름철 신발에 갇혀 있던 발을 꺼내 시원한 땅에 대면 그 자체로 힐링이지만, 겨울에는 동상을 입을 수도 있어 주의해야 한다. 그러나 겨울철 맨발걷기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박 회장은 “두꺼운 수면 양말이나 오래된 등산 양말 바닥에 2개의 구멍을 내서 신고, 더 추울 때는 발등에 핫팩을 붙이는 방법으로 겨울철 맨발걷기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때 구멍을 내는 부위는 움푹 들어간 발바닥 아치의 윗부분과 아랫부분으로, 자연과의 접촉면을 최대화하는 게 중요하다.
유해강 허프포스트코리아 에디터
어싱 ‘핫플’ 어디?
이곳이 내 발을 자유케 하리라
▶계족산 황톳길
‘어싱 성지’로 첫손에 꼽히는 장소는 대전 계족산이다. 조웅래(63) 맥키스컴퍼니 회장이 사비를 들여 만든 14.5㎞짜리 황톳길과 세족장이 있다. 철저한 관리로 이곳 황톳길은 한국관광공사의 ‘한국관광 100선’에 2015~2016년부터 2021~2022년까지 네차례 연속 선정됐고, 한국 대표 ‘에코힐링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전체 구간이 완만한 숲길로 이어져 걷기에 좋다. 오는 10월15일까지 주말마다 숲속 음악회장에서 ‘뻔뻔(funfun)한 클래식’이 열린다.
▶대모산 한솔공원
서울 강남구 대모산에서는 박동창 ‘맨발걷기숲길힐링스쿨’ 회장이 매주 토요일 오후 3시부터 맨발걷기힐링캠프를 진행한다. 어싱의 효과를 설명하고 함께 스트레칭을 한 뒤 맨발등산을 시작한다. 정상(293m)까지 소요 시간은 30여분이지만, 길에 자잘한 돌조각과 도토리 껍데기 등이 많아 초보자에게는 발바닥 자극이 클 수 있다.
▶서울숲
서울 성동구 서울숲은 도심 속 어싱인들에게 인기다. 주말 오전 서울숲을 찾으면 메타세쿼이아길, 은행나무숲 등 곳곳에서 맨발걷기를 하는 시민들을 볼 수 있다. 요가에 관심 있다면 ‘도시명상’이 8월26일 진행하는 ‘어싱요가―서울숲’에 참여해 맨발걷기 명상과 야외 요가를 체험하는 것도 가능하다.
▶202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와 순천만습지
전남 순천시는 오는 10월31일까지 열리는 ‘202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에 12㎞ 길이의 어싱길을 조성했다. 국제정원박람회장 내부와 순천만습지 곳곳에서 어싱길을 맨발로 걸을 수 있다.
유해강 허프포스트코리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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