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은 집, 고용주는 부모…‘전업자녀’로 살겠다는 중국 청년들
"경쟁에 지쳤다. 단순하게 살고 싶다".
중국 허난성에 사는 21세 여성 리츠키 리의 직장은 '집'이다. 식료품을 사고 치매가 있는 할머니를 돌보는 것이 그의 일이다. 각종 집안일을 하면서 부모에게 받는 월급은 6000위안(약 109만원) 수준이다. 리는 미국 CNN과의 인터뷰에서 "학업이나 업무 압박을 견딜 수가 없어 집에 머물게 됐다"며 "더 좋은 직장도, 나은 삶도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국에서는 가사일을 하고 부모한테서 돈을 받는 '전업 자녀(Full time children)'가 사회현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청년 실업률이 치솟자 중국 당국은 통계 발표를 돌연 중단했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15일 산업생산과 소매판매 등 7월 경제지표를 발표하면서 매월 함께 공개하던 청년(16~24세) 실업률 통계를 발표하지 않았다. 국가통계국 대변인은 “8월부터 청년실업률 등 연령대별 실업률 조사 발표를 중단한다”며 “경제·사회 발전으로 노동 통계를 좀 더 최적화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조치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청년 실업률을 가리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6월 발표한 청년 실업률은 21.3%로 역대 최고치다. 코로나 이전 시기의 10%대보다 2배 높아진 것이다.
구직을 포기한 청년까지 포함하면 실제 실업률은 훨씬 높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장단단 베이징대 교수는 이른바 '탕핑족(躺平·가만히 누워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청년들)'과 부모에게 기대 사는 '캥거루족'까지 실업자에 포함할 경우 중국의 3월 실업률은 46.5%에 달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청년 실업률이 치솟은 배경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중국 정부의 강력한 방역정책으로 경제 성장이 둔화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특히 청년층 고용주체인 제조업이 코로나19로 심각한 타격을 입은 것이 청년 실업률 상승으로 이어졌다. 2021년부터 IT 플랫폼·교육 등 산업에 대한 규제 강화도 영향을 미쳤다.
사교육업계에서 일했다는 24세 낸시 첸은 "중국 정부가 사교육을 금지하면서 전업 자녀의 길을 택했다"며 "3명을 선발하는 자리에 3만명의 지원자가 몰릴 정도로 일자리 찾기가 쉽지 않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조지 매그너스 '옥스포드 & SOAS 유니버시티 오브 런던' 중국 센터 연구원은 “노동시장에서 너무 오래 떠나 있거나 훈련 받을 기회 자체를 가져보지 못한 중국 청년들은 영원히 '고용 불가능'한 상태가 될 수도 있다”고 암울한 전망을 제시했다.
워싱턴포스트(WP)등 외신은 중국 사회가 청년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고 꼬집었지만 비단 중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에서 10년 전부터 등장한 ‘88만원 세대’, ‘N포 세대’, ‘헬조선’ 등의 신조어는 청년층이 처한 고달픈 현실을 반영한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를 보면 올 2분기 만 15∼29세 청년 실업률은 6.2%(청년 경제활동인구 420만명 중 실업자 26만명)로 저조한 수준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비경제활동인구 중 ‘쉬었음’이라고 답한 청년층은 증가했기 때문이다.
'쉬었음'은 취업 준비·진학 준비·군 입대 대기와 구분되는 개념이다. 취업 준비도 하지 않고 말 그대로 ‘쉬었다’고 응답한 청년들은 올해 2분기 기준 39만5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6만5000명)보다 8% 가량 증가했다. 30대(26만명)와 합치면 65만5000명으로 40~50대(58만3000명)보다 많다.
한때 ‘사토리 세대’(욕심을 버리고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는 세대)라고 불리던 일본 청년들은 어떨까. 일본 내각부가 발표한 ‘국민 생활에 관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만 29세 이하 청년층의 생활 만족도는 2019년 86%에서 지난해 61%로 주저앉았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지난해 발표한 '세계 청년 고용 동향 보고서'에서 세계 청년 실업자수가 73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ILO는 "청년층의 고용 회복세는 다른 연령층보다 뒤처져 있다"면서 "처음 구직에 나서거나 학교를 중퇴한 사람, 경력이 거의 없는 사람 등 청년층은 팬데믹 시기에 고용주가 선택을 꺼리는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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