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학자금 대출받는데 땅 사는 부모의 ‘부동산 집착사’…‘나의 이상하고 평범한 부동산 가족’

임지선 기자 2023. 8. 1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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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상하고 평범한 부동산 가족

마민지 지음 | 클 | 260쪽 | 1만7000원

1983년 작가 마민지의 부모가 서울 강동구 성내동에 지은 3층 상가주택. 부모는 3층에 살았다. 클 제공
울산 집값 폭등, 서울서 ‘집 장사’로 돈 번 부모
그 시절 월 생활비 500만~600만원 상류층에서
임대주택 찾고, 전월세 찾아 전전하는 현실
부동산에 얽힌 30년 가족사 풀어내

‘영끌족, 몸테크, 국평, 청포족, 브역대신평초.’

영끌족은 대출을 대폭 조인 2017년 8·2 대책 발표 이후 대출액을 늘리기 위해 여기저기 돈을 끌어모아서 부동산을 산 사람들, 몸테크는 오래된 아파트에서 재건축을 바라보며 산다는 의미, 국평은 한국인들이 가장 선호한다는 국민평수 34평, 청포족은 청약 당첨을 포기한 20~30세대를 뜻한다. 외우기도 힘든 브역대신평초는 브랜드, 역세권, 대단지, 신축, 평지, 초등학교 근처 아파트, 즉 매매 시 가치가 가장 높다고 평가받는 요소들을 모아놓은 신조어다. 재치있는 단어의 조합은 생각해보면 한국 사회의 부동산을 향한 ‘이상하고 평범한’ 열망을 잘 보여준다.

<나의 이상하고 평범한 부동산 가족>은 부동산이라는 단어로 모든 게 설명되는 한 가족의 이야기다. 한 가족의 이야기인데 읽다보면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책은 “그날은 우리 집이 망한 날”이라고 말하는 초등학교 5학년 아이의 기억에서 시작한다. 아파트에 혼자 있는데 갑자기 전기가 끊긴다. 부모님과 연락은 되지 않는다. 아이는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은 때 냉장고 안 음식을 걱정한다. 상류층만 산다는 46평짜리 서울 송파구 올림픽선수기자촌 아파트에 살았다. 지금도 해당 평수의 호가는 25억원이 넘는다. 공무원 월급이 120만원이던 시절, 아빠가 엄마에게 보내주는 한 달 생활비가 500만원이 넘었다. 추락하는 건 순간이었다. 자가에서 전세로, 평수도 줄이고 줄여 아파트에서도 벗어나 상가주택으로 들어간다. 부모님 사이도 냉랭해진다. 모든 게 이해되지 않던 아이는 대학생이 되어 의문을 해결할 기회를 찾는다.

저자 마민지는 영화를 전공했다. 대학생 시절 ‘구술생애사’라는 학교 과제를 위해 부모님에게서 ‘집’ 이야기를 듣게 된다. 저자는 “우리 가족의 역사가 한국의 도시개발사 그리고 부동산 투기의 흐름과 맞닿아 있는 지점이 아주 많다”는 점을 알게 된다. 책은 30여년간의 가족사를 통해 생생한 부동산 개발 현장과 땅에 관한 집착이 생길 수밖에 없던 이유, 그리고 지금의 현실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서울 동작구 상공에서 바라본 도심. 김창길 기자

책의 한 축을 이루는 저자 부모의 부동산 ‘성공기’는 ‘옆집의 투자 성공기’를 듣는 것처럼 흥미진진하다. 1948년생 아빠와 1951년생 엄마는 울산 신정동 69시영아파트를 1975년 100만원에 사 2년 만에 300만원으로 뛰는 경험을 한다. 울산은 중화학 공업단지 개발로 인구가 급속도로 늘어났다. 엄마는 아빠 몰래 100만원을 빌려 400만원으로 24평짜리 새 아파트를 계약했다. 가격은 금세 2배로 뛰었다. 종잣돈 100만원이 4년 만에 800만원으로 불어났다. 처음 부동산 투자의 맛을 안 때였다.

부모는 서울로 올라와 ‘집 장사’를 시작한다. 다세대주택을 짓는 연립사업자, 소규모 건설업자가 된 것. 이촌향도의 시기, 방 한 칸에 대한 수요는 엄청났다. 국가가 감당하기 힘들었고, 대기업 건설업자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1973년 석유 파동은 인플레이션을 불러와 넘쳐나는 돈이 부동산으로 흘러왔다. 부동산 거품이 형성되기에 좋은 조건들이었다. 특히 서울 강동 지역은 경기 광주와 서울 도심을 잇는 부도심으로 급격히 성장해 천호대교 기공일을 기점으로 시세가 껑충 뛴다. 1988년 올림픽 개최지로 서울이 확정되면서 이들은 ‘600만원짜리 식탁’을 들일 수 있는 수준까지 이른다. 다세대주택에 관한 법률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고, 특히 지하실 법규는 없었다. 지하실 평당 건축비는 지상층의 절반도 안 들고 세입자도 저렴한 방을 찾는다. 시장에 깔린 풍부한 자금, 지역적 호재와 법률 미비까지 ‘집 장사’로 수익률 200%를 달성할 수 있었던 시대적 삼박자를 다 갖춘 셈. 요즘도 여름에 침수가 우려되는 다세대주택의 지하실은 이때 시작됐으리라.

1983년 저자의 부모가 강동구 성내동에 지은 상가 주택 계단에서 찍은 사진. 클.
딸이 학자금 대출 받는데도 땅을 사는 엄마
이상하지만 평범한 ‘부동산 욕망’ 풀어내
저자 마민지, 다큐 ‘버블 패밀리’를 에세이로
한 가족의 부동산에서 읽는 한국의 도시개발사

책의 다른 한 축은 ‘그 옆집이 망한’ 이후 이야기다. 서울 종로구 군사구역의 건축 통제를 대폭 해제한다는 소식에 12억원을 투자했지만 개발 허가가 나지 않았고, 외환위기가 찾아왔다. 줄도산을 피할 수 없었다. 엄마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기획부동산 텔레마케팅 일을 했다. ‘투자할만한 좋은 땅이 있다’는 권유 전화를 걸었다. 아빠는 종로의 맥도날드 매장에서 좋은 투자처가 있는지 알아보러 다녔다. 모든 걸 다 잃은 상황에서도 이들은 ‘땅에 대한 믿음’만큼은 버리지 않았다.

부동산을 향한 ‘이상하고도 평범한’ 욕망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대목은 딸이 학자금 대출을 받는 와중에도 엄마가 평택에 땅을 사고, 그걸 뒤늦게 안 저자가 그 땅이 개발될 가능성이 엿보이자 기뻤던 감정을 진솔하게 묘사하는 장면이다. 엄마는 자식에게 부모로서 뭔가를 남겨 주고 싶었단다. 부모의 땅에 대한 헛된 희망을 시종일관 비판적으로 바라본 저자였다. “사람의 마음이 어찌나 간사한지 남의 일일 때는 쉽게 비난할 수 있었는데 내 일이 되니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저자는 부모 집에서 나와 성인이 되어 겪은 ‘집 문제’를 통해 지금의 주거 현실을 드러낸다. 부족한 예산으로 전·월세를 찾아 발품을 판 이야기는 요즘 청년세대의 울음이 함축되어 있다. “부동산(중개업소)에서도 그 예산이면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 끊임없이 상기시켜준다. 이 보증금에 이 월세면 별수 없다고 했다. 그중에서도 안전을 제일 먼저 포기해야 했다. 보일러가 주방 안에 달려 있는 집에서 살아야 하거나 온갖 해충과 곰팡이를 감수해야 했다.” 저자는 안정적으로 거주하기 위해 아파트에 당첨되기 바라는 마음과 내 아파트 가격이 오르기를 바라는 마음은 분명 큰 차이가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의 부모가 곰팡이 핀 벽에 벽지만 바른 집에서 살다가 국민임대주택에 당첨되고 생활이 180도 달라진 이야기는 강한 여운을 남긴다. 가스에 중독될 수 있다는 불안 속에서 잠들지 않고 바퀴벌레와 곰팡이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기본적인 삶, 훨씬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됐다는 것. 저자는 묻는다. “가진 것도 없으면 더 좋은 환경에서 살고 싶다는 것이 불온한 욕심일까. 돈이 없다고 해서 이런 환경에서 사는 게 당연할까.”

살(buy) 집은 넘쳐나지만 정작 살(live) 집을 찾기는 어려운 시대에 집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책은 마민지가 연출한 다큐멘터리 <버블 패밀리>가 바탕이 됐다. 1970~1980년대 신문기사와 각종 자료들을 덧붙여 이야기를 더욱 촘촘하게 만들었다. <버블 패밀리>는 2017년 EBS 국제다큐영화제의 한국 작품 최초 대상 수상작이며 다수의 국제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

나의 이상하고 평범한 부동산 가족

임지선 기자 vis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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