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포기하고 미국과 수교하려던 북한, 목표가 바뀌었다

2023. 8. 19. 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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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books]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북한이 온다>

[이재호 기자(jh1128@pressian.com)]
북한은 핵을 포기할까? 한반도 비핵화는 사실상 어려워졌다는 예측 속에 트럼프와 담판에 실패한 북한이 결국 핵을 다른 유인책과 바꾸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자연히 대북 정책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정욱식 한겨레평화연구소장은 지난 7월 출간한 저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북한이 온다>에서 "북한의 핵무장이 돌이킬 수 없는 수준에 도달해 한반도 비핵화가 사실상 물 건너간 만큼, 비핵화를 핵심적인 목표로 삼아온 대북 정책도 바뀌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제시했다.

그동안 북한의 핵 개발을 두고 남한에서는 미국과 관계정상화를 위한 협상카드라는 평가가 많았다. 그런데 2020년 이후 북한의 '결심'이 바뀌면서 북한에 핵은 협상카드가 아닌 '국체'(國體)가 돼버렸고, 따라서 어떤 반대급부를 들이밀더라도 핵을 포기하게 만들기는 쉽지 않아졌다는 것이 정 소장의 진단이다.

북한이 처음부터 핵을 이렇게까지 고도화하려 한 것은 아니다. 정 소장은 "김정은은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초기 단계에 머물렀던 핵무력을 신속하게 완성했고 이를 토대로 미국을 상대로 '힘의 균형'을 이룬 만큼 비핵화까지 테이블에 올려놓고 담판에 나선다는 '결심'을 했다"고 분석했다.

그런데 이 협상이 어그러지면서 김정은의 결심에 변화가 포착되기 시작했다. 정 소장은 특히 2019년 6월 30일 남북미 정상 간 만남, 구체적으로 북미 정상의 자유의집 회동이 안 하니만 못한 결과를 낳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북한이 온다>, 정욱식 지음, 서해문집 펴냄 ⓒ서해문집
당시 북미 정상 간 회동에 따라 트럼프는 한미 연합 군사 훈련 취소를 약속했고 김정은은 실무회담에 응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실무협상은 스티브 비건 당시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미국의 정책 결정 과정에서 배제되면서 동력을 상실했고 한미 훈련 역시 한미 간 진행하기로 합의하면서 합의 내용과는 다른 결과가 나왔다.

북한은 남한에 대해서도 일종의 배신감을 느끼게 됐다. 정 소장은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에 대한 남북 정상의 다른 생각, 한미 훈련의 지속, 단계적 군축은커녕 '역대급' 군비 증강에 나선 남한 정부의 행동 등이 북한을 돌아서게 만든 주요 요인이 됐다고 평가했다.

정 소장은 "결국 김정은이 택한 새로운 길은 국가를 지키는 힘은 핵무력에 있고 핵무력을 바탕으로 경제발전을 꾀하며 이를 위해 비핵화 옵션을 협상 테이블에 올리지 않겠다는 것"이 돼버렸다고 진단했다.

그는 북한의 이러한 변화를 여러 상황에서 목격할 수 있다며 "실제 북한은 2022년 9월 8일 핵무력 법제화가 마무리 이후 9월 말부터 자신들의 항의나 경고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방식의 군사 행동으로 맞불을 놓았다"고 설명했다.

핵으로 인한 제재와 관련해서도 "김정은 정권은 2022년 4월 코로나 19의 유행이 본격화됐지만 제재를 원망하지도 않았고 외부의 인도적 지원에도 응하지 않았다"며 "제재 해결이 여전히 '불감청고소원'이지만 핵 포기를 압박하거나 거래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의 가치는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해석했다.

김정은 정권이 집권 초반에 이야기했던 '핵-경제 병진노선' 역시 북한이 이야기했기 때문에 현실 가능성을 낮게 보는 측면이 있었다며, 사실 이 전략은 미국과 소련, 중국 등이 이미 과거에 사용해 검증한 정책이라는 것이 정 소장의 주장이다.

"병진노선은 2018~19년 협상이 실패로 끝난 이후 2021년 1월 당 대회에서 되살아났다. 핵무력 건설에 박차를 가하면서 대북 제재를 상수로 둔 채 자력갱생과 자급자족을 통해 경제발전도 이루겠다는 노선인데 핵심은 '안보의 경제성'이다.

즉 이 노선은 재래식 군비를 축소하면서 핵전력의 증강으로 이를 상쇄하려고 한 미국 아이젠하워 행정부의 '뉴룩'(New Look), 이를 그대로 모방한 소련 흐루쇼프, 양탄일성(원자탄, 수소탄과 인공위성) 완성을 통해 경제발전을 꾀한 중국의 덩샤오핑 등의 맥을 잇는 유서 깊은 논리다."

정 소장에 따르면 북한이 이 노선을 통해 얻으려는 경제적 효과는 크게 세 가지다.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생산 비용이 재래식 군사력 운용보다는 훨씬 부담이 적다는 측면 △군민융합을 통해 북한군을 재해 복구 및 건설‧농업 현장에 투입 △군수분야의 민수 전환 등이다.

북한 입장에서 비핵화보다 핵을 보유하는 것이 국가 생존과 발전에 더 유리하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하더라도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들이 이를 인정해주지 않으면 강제로라도 비핵화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다. 실제 국제사회는 핵 비확산을 공통적인 목표로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미중 갈등 격화 및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상황이 달라졌고, 이는 북한의 선택에도 영향을 미쳤다.

"미국과 전략경쟁이 격화되면서 중국과 러시아는 북핵문제를 '비확산'보다는 '세력균형'의 관점에서 보면서 사실상 북핵을 묵인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중러로서는 미국과 경쟁이 치열해지고 미국이 동맹을 규합하자 북핵의 전략적 가치를 재평가하는 것이다. 이에 북한은 30년 가까이 매달려온 '북미 적대관계의 평화관계로의 전환'에 대한 미련을 접고 안보는 핵으로, 경제는 자력갱생으로, 외교는 중국과 러시아 중심으로 성과를 노리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 정 소장은 한반도 안보 상황 관리를 위해 이제는 대화와 협상의 목표를 이전과 달리 설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협상에서 최대의 성과를 내겠다는 것이 아닌, 합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만 설정해서 이것이라도 지켜나가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대화가 사라지고 억제만 난무하는 한반도에서 대화와 협상의 목표를 재구성해야 한다. 우선 목표를 '최악의 시나리오'를 방지하는데 맞춰져야 한다. 한반도 문제의 핵심 당사자인 남북미중 모두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는 최소한의 공통분모는 이러한 대화의 재구성의 기초가 된다."

핵이 없는 한반도에서 남북이 상대를 인정하며 평화롭게 공존하고, 남북의 주민들이 원한다면 자연스러운 통일을 추진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모습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지금의 국제정세와 한반도에서 비핵화와 평화 공존을 추진하겠다고 한다면 너무 낭만적으로 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실현 불가능한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정 소장의 '달라진 북한'에 대한 분석은 이런 측면에서 의미를 가진다. 무엇이라도 해야 최악의 상황을 막을 수 있을 정도로 한반도와 국제정세는 상당히 위험하고 유동적인 상태다. 한반도의 공멸을 막기 위해 실현 가능한 시나리오를 마련해야 하는데, 그 첫걸음은 한반도 정세에서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북한의 진짜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데 있다.

[이재호 기자(jh1128@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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