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목마다 무장군인… 수차례 검문 끝 도착한 산속 회견장엔
한미일 3국 기자단 ‘산속 취재’
軍犬 탐지하고 기자도 카트로 이동
“역사적인 날이 될 겁니다. 캠프 데이비드 취재 현장에 참여하게 된 것을 환영합니다.”
미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 당일 18일(현지 시각) 오전. 미 워싱턴DC 백악관 내 브리핑룸 앞에서 한 공보팀 직원이 출입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미 백악관은 자국 대통령이 외부 행사에 참석할 때마다 동행 기자단 신청을 받는다. 동행 기자단은 미 대통령의 동선을 따라 근접 취재하는 소수의 ‘풀(pool) 기자단’과 일반 기자단으로 나뉜다. 이날 행사를 취재하기 위해 일주일 전 160여명의 출입기자단이 일반 기자단 취재 신청 접수를 했지만, 110여명이 최종 명단에 올랐다.
◇美 베테랑 기자들도 들떠...”캠프 데이비드 가봤나”
백악관을 오랫동안 출입했던 베테랑 미국 기자들도 이날 취재를 앞두고는 들뜬 표정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식 방안을 논의한 1943년 미·영 정상회담이 이 곳에서 열렸고, 1959년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흐루시초프 서기장이 미국과 소련의 군사대결 지양에 합의하는 회담을 가졌다. 역사적 고비마다 세계 지도자간 합의를 도출한 곳이다. 백악관 기자실에서 대기하던 촬영 기자들이 서로 ‘캠프 데이비드에 가본 경험이 있느냐’고 물어봤다. 국무부를 출입하는 한 미국 기자는 “조 바이든 행정부 들어 처음 캠프 데이비드에서 진행되는 외교 행사”라며 “미 행정부 차원에서 굉장히 신경을 쓰고 추진했던 행사인만큼 우리로서도 비중있게 다뤄야 한다”고 했다.
군사 시설인 캠프 데이비드엔 개인 차량이 입장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기자들은 백악관에 모인 뒤 백악관이 별도로 마련한 버스를 타고 캠프 데이비드로 이동했다. 이날 일반기자단은 미국·유럽 및 일본 기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캠프 데이비드는 워싱턴DC에서 북쪽으로 100km 떨어져 있다. 버스를 타고 2시간 30분 정도가자 메릴랜드주(州) 케탁틴 산맥이 나왔다. 산맥에 진입한 이후에도 10분간 굽이진 오솔길을 올라가자 캠프 입구가 나왔다. 입구에는 소총으로 무장한 군인들과 비밀경호국(SS) 요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이들은 군견 탐지까지 거친 뒤 차량을 들여보내줬다.
◇미디어센터 구석에 헬기·방탄차 “사진 촬영 엄금”
군의 호위를 받은 버스는 이후에도 2번의 검문을 더 거친 뒤인 오후 1시30분에야 기자들의 취재 공간이 마련된 미디어 센터에 도착했다. 미디어 센터는 해크베리 격납고 내에 차려졌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헬기를 타고 해크베리 격납고 바로 옆 착륙장에 도착해 바이든 대통령과 만났었다. 인근 주유소에선 군인들이 골프 카트를 잇따라 주유하고 있었다. 윤 대통령과 후미오 총리는 헬기에서 내린 뒤 이들 골프 카트를 타고 이동했었다.
미디어 센터 내부는 한·미·일 3국 기자들과 각국 지원 인력들로 붐볐다. 백악관 일반 기자단 110여명과 한국 대통령실, 일본 총리실 소속 기자 등을 합치면 150여명에 달했다.
미디어 센터에 들어서자마자 백악관 직원이 “1시간 뒤에는 3국 공동기자회견장에 마련된 장소로 이동해야 한다. 이후에는 입장이 불가능하다”고 소리쳤다. 다른 백악관 직원들은 기자들이 먹을 피자를 잇따라 날랐다. 본지를 비롯해 이날 행사를 취재한 백악관 기자들은 버스 비용 및 음료, 음식 값 등을 기자 수로 나눠서 사후 부담하게 된다. 한 직원은 기자에게 “기자들의 이동 및 검문 등으로 생각보다 시간이 소요됐다”며 “대기 시간이 거의 없는 상황”이라며 서둘러 자리를 옮겼다.
미디어 센터 귀퉁이에 위치한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선 백악관이 쳐놓은 칸막이를 지나가야 했다. 칸막이를 건너가 보니 윤 대통령이 이날 캠프 데이비드에 오기 위해 탑승했던 헬기와 같은 기종인 시코르스키(Sikorsky) SH-3 시킹 한 대가 배치돼 있었다. 그 옆에는 방탄 처리된 검정색 쉐보레 서버번이 주차돼 있었다. 헬기 앞에 ‘사진 촬영을 엄금한다’는 팻말이 놓여 있었다. 한 기자가 화장실을 다녀왔다가 사진을 찍자 군인이 황급히 따라가 사진을 삭제하라고 했다.
미디어센터를 지키던 한 SS요원은 “이 곳은 군사 시설인만큼 보안에 민감할 수 밖고 결과적으로 기자들의 이동도 제한이 된다는 것을 이해해달라”며 “어느 곳은 출입이 되고, 어떤 곳은 촬영이 되지 않는지 등이 상세하게 규정돼 있다”고 했다.
◇기자들 ‘5인승 카트’타고 숲 우거진 야외 회견장 이동
이날 오후 3국 정상의 공동기자회견은 미국 대통령 숙소인 아스펜 로지(Aspen Lodge) 및 정상회의가 진행된 로럴 로지(Laurel Lodge) 등에서 약 100m 떨어진 시더 캐빈(Cedar Cabin) 옆 숲을 배경으로 한 야외 마당에서 진행됐다. 시더 캐빈은 캠프 데이비드 내 캠프 사령관의 관사다.
미 당국은 미디어센터에서 도보로 7분 정도 떨어져 있는 공동기자회견장까지 기자들을 5인승 카트로 날랐다. 카트를 운전하던 미 해군은 “(3국 정상이 논의를 나누고 있는) 메인 장소로 가는 길은 극도의 보안이 요구되는만큼 전방을 촬영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했다. 그는 “다만 후방을 찍는 것은 상관없다”고 했다. 카트를 타고 가는 길목에는 양쪽에 총을 둔 군인들이 기자들을 노려봤다.
3분 정도 카트로 이동해 도착한 기자회견 현장은 부산스러운 모습이었다. 현장은 방송 장비와 카메라를 배치하는 기자들과 이를 지켜보는 군인들과 한미일 각국 경호 인력 등으로 발디딜틈이 없었다. 한미일 3국 경호원들이 미군들과 대화하며 주위를 연신 살폈다. 백악관 방송 기자들은 3국 정상이 서게 될 연단을 배경으로 생중계 방송에 출연하고 있었다.
오후 2시40분쯤 커트 캠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 조정관이 회의를 끝내고 기자회견장에 도착해 기자들과 인사를 나눴다. 이번 합의를 실무에서 주도한 그는 기자들에게 “이번 회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도 물었다. 뒤이어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 조태용 국가안보실장, 조현동 주미대사 등이 잇따라 밝은 표정으로 회견장에 앉았다.
이번 회의 이후 상황에 대해 외신 기자들은 “전례없는 3국 관계 강화로 중국이 상당한 압박을 받을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유럽 지역의 한 워싱턴DC 특파원은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공언한 ‘인태 지역의 협력 강화’ 구상이 한일의 협조로 현실화되는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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