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연배의 이야기와 함께하는 와인 71] 술이 만병통치약이 되다
[서울=뉴시스] 맥아와 누룩을 발견한 인류는 보다 쉽게 대량으로 술을 생산한다.
2500년전에도 술은 이미 동서양에 걸쳐 인류 건강과 정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등장해서 대주가란 공통점을 지닌 소크라테스와 공자는 술이 사람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철학적으로 설파했다.
술은 처음 무녀나 사제가 주로 빚었고, 제사나 종교의식에 사용됐다. 하지만 대량생산 되면서 술은 곧 인류의 일상생활에 깊숙이 파고든다. 사람들은 취하기 위해 술을 마시기도 했지만, 의사들은 여러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약용으로 처방했다.
의원을 뜻하는 ‘의(醫)’는 원래 ‘앓는 소리 예(殹)’와 ‘술 유(酉)’를 합친 글자이다. ‘예(殹)’에는 ‘화살 시(矢)’자와 ‘몽둥이 수(殳)’자가 들어 있다. 의(醫)는 화살이나 몽둥이에 다쳐 아픈 사람을 술로서 치료한다는 어원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의(醫)자도 처음엔 ‘술 유(酉)’ 대신 ‘무당 무(巫)’를 써서 ‘毉’로 표기했다. 후한의 허신이 지은 ‘설문해자’(說文解字)와 전국시대에 편찬된 ‘주례’(周禮)에도 그렇게 썼다. 예전에 무당이 주술로서 치료했던 역할을 술이 대신했다는 상징이다. 한나라 이후 술은 중요한 처방약으로 쓰인다.
술이 약으로 처방된 최초의 기록은 ‘오십이병방’(五十二病方)이라는 의서에 나온다. 1973년 후난성 창사(長沙)의 한나라 시대 마왕퇴(馬王堆) 무덤에서 출토된 것으로, 춘추전국시대에 편찬됐다. 전국시대~후한시대에 편찬된 ‘황제내경(皇帝內經) 소문(素問)편’에는 13가지 약주(藥酒)의 처방과 함께 ‘계시주’(鷄矢酒), ‘좌각발주’(左角發酒) 등 약주의 이름이 최초로 나온다. ‘한서 식화지’(漢書 食貨志)는 술을 ‘약 중의 으뜸’(백약지장(百藥之長))이라 했다.
‘박물지’(博物志)에는 ‘과식하면 병이 들고 음식을 못 먹으면 죽지만 술을 마시면 건강하다’는 표현도 있다. 전한 말 편찬된 가장 오래된 본초학 의서인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에는 술의 의학적 효능과 함께 와인에 대한 언급도 있다. ‘포도는 기와 힘을 북돋우고 늙지 않게 한다’고 했다.
과음으로 인한 술의 부작용을 경계하는 기록도 많다. ‘천금요방’(千金要方), ‘보생월록’(保生月彔)에는 계절에 따른 음주의 적정량을 제시했다. ‘음선정요’(飮膳正要)는 ‘술을 적게 마시면 건강에 좋지만 과음은 죽음의 원천’이라고 직설적으로 경고했다. 또 한비자(韓非子)와 관자(管子)는 고기와 술을 탐하는 것을 경계했다. ‘신수본초’(身修本草)는 음주의 단계를 소음(少飮), 담음(淡飮), 폭음(暴飮), 잡음(雜飮)으로 구분했다. 잡음은 닥치는 대로 마신다는 뜻이다.
본초(本草)라는 말은 ‘한서 평제기’(漢書 平帝紀)에 처음 등장한다. 약초 등 약물의 처방을 기록한 의서를 말한다. 본초학 책에는 술에 대한 다양한 의학적 효능에 대한 설명과 제조법이 들어 있다. ‘상한잡병론’(傷寒雜病論, 3세기초)은 치료를 위한 술을 ‘탁주’ ‘청주’ ‘고주’(苦酒: 식초) 등으로 분류했다. 특히 대부분의 본초학 책이 와인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 점이 눈길을 끈다. ‘신수본초’(身修本草, 659), ‘식료본초’(食療本草, 701~705), ‘증류본초’(證類本草, 1082), ‘본초강목’(本草綱目,1596)이 대표적이다. 증류본초는 1596년 본초강목이 등장하기 전까지 모든 본초학의 기본이 된다. 신수본초와 증류본초에는 ‘포도와 꿀은 스스로 발효해 누룩이 필요 없다’고 했다. 그러나 본초강목에서는 와인의 양조에 누룩과 쌀밥을 넣는 양조법이 등장한다. 69가지의 약주 처방과 함께 와인을 증류하여 브랜디를 만드는 양조법도 들어 있다.
엄격히 말하면 와인은 포도와 효모만을 사용해 자연적으로 발효된 포도주를 말한다. 전한 말 한무제 때 장건이 처음 비니페라 포도를 중국에 들여온 후, 당나라 초기까지는 정통적인 자연발효법을 사용했다. 당 태종은 고창국(오늘날 트루판)을 정벌한 후 마유포도와 양조 기술자를 들여와 직접 와인을 양조했다. 하지만 당나라 후기 와인의 수요가 늘어나자, 비니페라 포도가 귀하고 와인 양조법을 몰랐던 지역에서는 산포도즙에 누룩과 쌀밥을 넣어 와인을 만든다. 북송의 주굉(朱肱, 1050~1125)이 지은 ‘북산주경’(北山酒經)에 이에 대한 기록이 처음 나온다. 이후 본초학 책에는 대부분 누룩과 쌀을 넣은 와인 양조법이 소개돼 있다. 포도즙 대신 건포도를 사용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동의보감’(1613년)도 와인의 발효에 누룩과 쌀밥을 넣은 것으로 기록했다. 그보다 먼저인 1540년경 나온 ‘수운잡방’(需雲雜方)에 나온 레시피도 같다. 일본에서 1695년 편찬된 ‘본조식감’(本朝食鑑)에는 산포도의 껍질을 제거한 후 항아리에 넣고 누룩과 쌀밥 대신 밑술과 얼음 설탕을 넣어 발효시킨 것으로 나온다.
술에 관련된 한자를 살펴보면 술이 발전해온 역사가 보인다. ‘술밑 매(酶)’와 ‘술밑 효(酵)’는 모두 효모나 누룩을 의미하는 글자인데 술의 어머니, 술로 노인을 공경한다는 뜻이 담겨있다. ‘제사 지낼 전(奠)’은 술을 하늘에 바친 제천의식에서 왔다. ‘높을 존(尊)’은 ‘술을 바쳐 섬긴다’는 뜻이다. 명절에 술을 대접하거나 선물하는 배경이다. ‘술 부을 작(酌)’은 ‘술을 적당히 마신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작(勺)’은 한 홉의 십분의 일이다.
‘누릴 향(享)’이 붙은 ‘진할 순(醇)’은 물을 타지 않은 진한 술을 뜻하는데, 순수하고 정직한 사람을 표현할 때도 사용한다. ‘실 산(酸)’은 간다는 뜻의 ‘준(夋)’자가 붙어있다. 말 그대로 술 맛이 가면 시어진다. ‘초 초(醋)’는 술 옆에 옛날을 뜻하는 ‘석(昔)자’가 있다. 오래된 술은 식초가 된다. 술을 마시고 주정하면 보기가 흉하다. 술 옆에 ‘흉할 흉(凶)’이가 붙으면 ‘주정할 후(酗)’가 된다. 술을 마시고 취하면 정신이 나간다. 술 먹고 정신이 졸(卒)하면 ‘취할 취(醉)’다. 취하여 귀신처럼 용모가 흐트러지면 보기가 싫다. ‘추할 추(醜)’자다. 술에 취했다가 정신이 별처럼 반짝반짝 돌아오면 ‘깰 성(醒)’이다. 취(醉)와 성(醒) 사이에는 많은 일이 일어난다.
▲와인 칼럼니스트·경영학 박사·딜리버리N 대표 ybbyu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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