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병원서도 손 쉽게 졸피뎀 처방…"맘 먹으면 상습 투약도"

서상혁 기자 문혜원 기자 2023. 8. 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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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스로이스 사건 이후 마약류 오·남용 우려 커지지만 사각지대 '여전'
"병원서 불면증 호소하면 처방 해줘…인터넷 밀거래 부추길 우려도"
ⓒ News1 DB

(서울=뉴스1) 서상혁 문혜원 기자 = 성형외과에서 마약류 수면유도제를 투약한 채 차를 몰다 행인을 친 '롤스로이스 사건'이 연일 대중의 공분을 사는 가운데 향정신성의약품 오·남용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실제 향정신성의약품의 대표 격인 수면유도제 졸피뎀은 동네 내과 의원 등 1차 의료기관에서 '불면증'을 이유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처방 이력을 살필 의무도 없어 마음만 먹으면 장기간 투약도 얼마든지 가능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의료기관서 받은 졸피뎀을 밀거래하는 등 파생 범죄가 잇따를 수 있다고 경고한다. 투약 이력 열람 의무화를 비롯해 마약류 처방 의료인에 대해선 별도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마약류지만 "불면증 심해요" 호소하면 손 쉽게 처방…상습 투약도 막지 못해

뉴스1은 지난 17일 서울 소재 모 가정의학과를 방문했다. 경미한 불면증을 호소하니, 간단한 혈압 측정 후 졸피뎀(졸피뎀타르타르산염)이 함유된 제제를 14일 치 처방받을 수 있었다. 중독성이 생길 수 있으니 복용하지 않을 수 있으면 되도록 하지 말라는 주의사항도 들었다. 처방까지는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졸피뎀이란 불면증 치료용 약품 중 하나다. 통상 복용 후 15분 후면 잠이 드는 것으로 전해진다. 장기 복용 시 몽롱해지거나 환각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며, 반대로 복용을 중단할 경우 금단 현상도 나타날 수 있어 마약(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된다.

졸피뎀은 내과나 가정의학과 등 이른바 '동네 의원'에서 활발하게 처방되고 있다. 주로 정신의학과에 방문하기 꺼리는 이들이 찾는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까지 내과에서 졸피뎀을 처방받았던 50대 여성 이모씨는 "밤에 잠을 잘 못 자 괴로웠는데 그렇다고 정신의학과에 가기는 꺼려졌다"며 "동네 내과에서 불면증약을 쉽게 처방받을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방문하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에서 약국을 운영 중인 약사 A씨는 "근처 내과와 가정의학과에서 종종 졸피뎀을 처방받아오는 환자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불면증 증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손쉽게 처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금연 스트레스로 졸피뎀 처방받아야겠다" "병원 바꾸고 안정적으로 구할 수 있게 됐다" 등 허위 처방으로 추정되는 후기가 다수 있었다.

한창우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수면다원검사를 실시하는 경우가 있긴 하나, 보통 불면증은 환자의 외관을 보고 판정하긴 어렵다"며 "환자가 '내가 몇 시간 밖에 못 잤다'며 불편을 호소하면, 그 얘기를 듣고 처방해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상습 투약자를 걸러낼 시스템도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현재 졸피뎀 등 마약류를 처방하거나 조제·투약하는 의료기관은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님스·NIMS)에 관련 현황을 보고해야 한다. 하지만 처방 시 해당 환자의 투약 이력을 확인할 의무는 없다.

홍나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다짜고짜 수면제만 달라고 하는 등 의심스러운 환자가 있을 땐 님스에 조회를 해보기도 하나, 이는 의무가 아니다"며 "투약 이력도 개인 정보인 만큼 누가 봐도 매우 큰 문제가 있는 사람 정도만 조회가 된다"고 설명했다.

현재로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의약품 안전사용서비스(DUR)'를 통해 '중복 처방' 정도만 막을 수 있다. 여러 의료기관에서 약물 처방을 받을 경우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는 만큼, 중복 처방 위험을 알려주는 모니터링 시스템이다. 예컨대 A의원에서 14일 치 약을 처방받은 후 5일 만에 B병원서 같은 약물을 처방할 경우, 경고 알림이 나타난다.

다만 정해진 처방 기간이 종료되면 알림은 나타나지 않는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의료용 마약류 졸피뎀 사용기준'에 따르면 졸피뎀 처방 기간은 최대 28일이다. 추가 처방 시 별도의 평가를 거쳐야 하나 특별한 기준은 없다. 이론적으로는 28일 주기로 계속해서 처방받을 수 있는 셈이다.

굳이 병원에 방문하지 않아도 비대면 진단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수면유도제를 처방, 배달까지 받을 수 있다. 향정신성의약품은 비대면 처방이 제한되나, 독세핀염산염은 마약류가 아니라 의원에 방문하지 않아도 약을 받을 수 있다. 해당 제품은 향정신성의약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수면 유도 효과가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문가 "의사 윤리 교육 강화하고 사전 예방 시스템 만들어야" 제언

졸피뎀은 중독성이 강해 그 자체로도 위험하지만, 살인이나 등 범죄에도 악용될 수 있다. 실제 2019년 제주도에서 자신의 전남편을 잔혹하게 살해한 고유정의 경우 남편의 음식에 졸피뎀을 넣은 것으로 전해졌다.

데이트 강간 약물로 불리기도 한다. 지난 2일엔 식당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 '피로회복제'라며 졸피뎀이 담긴 음료를 먹이고 성폭행한 40대 남성이 구속기소 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의료기관에서 허위로 처방받은 졸피뎀이 온라인 등을 통해 거래되고, 나아가 파생 범죄를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조성남 국립법무병원장은 "실제로 병원에서 거짓으로 처방받아 인터넷에서 거래할 가능성도 있다"며 "마약류는 남에게 무료로도 줘서는 안 되며 무조건 처방받은 본인이 복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선 경찰의 모 수사관도 "졸피뎀은 허용된 의약품인 만큼 현재 거래되는 물량 중엔 의료기관에서 처방받은 것들이 다수일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트위터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시된 졸피뎀 거래 글엔 의원에서 처방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약물 포장지가 올라와 있었다.

일각에선 정신건강의학과에서만 졸피뎀을 처방하게 하는 등 문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수면장애를 겪고 있는 이들이 상당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수면장애로 병원을 찾은 이들은 지난 2021년 기준 약 70만 명으로, 허위 처방자를 제외하고서라도 실수요는 상당하다고 보는 게 합당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마약류를 처방하는 의료인에 대한 '중독' 교육이 최선이라고 강조한다. 조성남 국립법무병원장은 "의사 입장에선 환자가 불면증이 심하다고 호소하면 처방해 줄 수밖에 없다"며 "차라리 인터넷상에서의 밀매를 단속하는 등 경찰의 역할을 키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의사라고 마약 중독 전문가가 아닌 이상 일 년 치 처방 내역을 확인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라며 "향정신성의약품을 처방하는 의사들에 대해선 '중독'의 개념을 이해시키는 한편, 따로 중요성에 대해 교육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의료기관에서 향정신성의약품이 유통되지 않도록 '사전 예방 시스템'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범진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는 "'이 약물은 하루에 한 알만 복용해야 하는데 이 사람은 50알씩 먹었네'라고 판단이 들 수 있도록 사전 예방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며 "마약류에 대해선 처방권이 어느 정도 통제돼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편 내년부터 의료기관은 향정신성의약품을 처방할 때 환자의 투약 내역을 의무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지난 5월 이와 관련된 마약류 관리법 일부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통과했다.

hyu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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