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경성]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의 조선인 빙상 삼총사

김기철 학술전문기자 2023. 8. 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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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라이브러리속의 모던 경성]1936년 일본 대표로 출전한 김정연·이성덕·장우식, 1만미터서 13위
남부 독일 휴양지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의 올림픽 아이스링크. 1936년 2월 동계올림픽 피겨 스케이팅과 아이스하키 경기가 열린 곳이다. 왼쪽에 독일 최고봉 추크슈피체에 오르는 산악열차가 보인다. /김기철기자
독일 최고봉 추크슈피체에 오르는 산악열차 역.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이 1936년 동계올림픽이 열린 아이스링크다. /김기철기자

독일 최고봉 추크슈피체(2963m)가 있는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은 한국 여행자들도 많이 찾는 인기 여행지다. 뮌헨에서 자동차나 기차로 1시간이면 도착하기 때문이다.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역 바로 옆엔 추크슈피체에 올라가는 등산열차 역이 있다. 여기서 기차를 타고 올라가면 독일 알프스의 진수를 맛볼 수있다.

추크슈피체 등산열차 역 건너편에는 ‘올림픽 아이스링크’가 보인다.1936년 동계올림픽 경기를 치르기 위해 건설된 곳이다. 몇차례 확장, 보수 공사를 거쳤지만 동계올림픽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다.

87년전인 1936년 2월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에 조선인 빙상선수들이 찾아왔다. 동계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일본 국가대표 소속이었다. 김정연, 이성덕, 장우식이다. 스피드 스케이팅 일본 대표 7명 중 3명이 조선인이었다.

1936년 독일서 열린 제4회 동계올림픽 빙속 1만m에서 올림픽 신기록을 작성하고도 13위에 그친 김정연의 소식을 전한 지면.(1936년2월 15일자)

◇'빙상강자’ 조선

당시 조선은 아시아의 빙상 강자였다. 1934년 2월4일~5일 압록강에서 열린 전(全)일본빙상선수권대회에서 조선인 선수가 1,2,3위를 휩쓸 정도였다. 일본과 만주, 조선에서 참가한 이 대회엔 일본 첫 동계올림픽(1932년 미국 레이크플래시드)참가자와 일본 신기록보유자 등 쟁쟁한 선수들이 포진했다. 압록강 대회는 1936년 독일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에서 열리는 제4회 동계올림픽 대표선발 전초전 성격도 띠고 있었다. 내로라하는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1위를 차지한 이는 김정연(1910~1992)이었다.

평남 강서출신인 김정연은 평양고보를 나와 일본 메이지대에 유학 중이었다. 당시 빙상선수권대회는 500m, 1500m, 5000m, 1만m 순위를 합산, 총점으로 등수를 정했다. 김정연은 5000m·1만m에서 일본 신기록을 세우며 1위로 들어와 종합1위를 했다. 이성덕이 2위, 최용진이 3위였다.

신의주 출신으로 와세다대에 유학한 이성덕(1911~1968)은 한해전인 1933년1월27~30일 일본 닛코에서 열린 전일본빙상선수권대회를 석권했다. 500m,5000m는 1위였고, 1500m는 2위였다.(‘일본의 패권을 차지한 이성덕군의 수훈’, 조선일보 1933년 2월1일)

조선인 빙상선수 셋이 일본을 대표하는 올림픽 대표로 뽑힌 것은 이런 탁월한 성적을 냈기 때문이다.

1935년 9월10일 태평로 조선일보 대강당에서 열린 '올림픽의 밤' 행사 안내 기사. 이듬해 동계올림픽에 출전하는 빙상선수들을 후원하기 위해 열렸다. 아래는 '올림픽의 밤' 포스터.

◇전국서 ‘올림픽의 밤’행사

‘우리 스포—츠계를 대표하야 세계빙상제패를 목표로 명년(明年) 2월 독일에서 열리는 제4회 동계 올림픽에 출장케된 조선이 낳은 빙상의 삼걸 김정연 이성덕 장우식 삼군은 오는 12월에 전지(戰地)로 향할터인데 이들 스포—츠사절을 국제무대로 보내는 해내(海內) 스포—츠팬들은 충정의 일단이나마 물질적으로 표현하야 장도에 오르는 삼대표(三代表)를 성원하며 격려하려는 의미에서 전 조선 각지에서 ‘올림픽의 밤’을 열기로 되었다함은 누보(屢報)한 바와 같지만 이미 지난 3일에 신의주에서 첫 막을 열어 초성황을 이루었고 평양에서는 6일 밤 숭전(崇專)강당에서 열리게 되었으며 경성에서는 내 십일(來十日) 오후 7시반부터 본사 대강당에서 의의깊은 개막을 맞이하게 되었다.’ (‘경성에서 열릴 올림픽의 밤’, 조선일보 1935년9월6일)

1935년9월10일 밤 태평로 조선일보사 강당에서 동계올림픽에 출전하는 빙상3걸을 후원하는 ‘올림픽의 밤’이 열린다는 예고 기사다. 빙상선수 출신으로 조선일보 스포츠기자인 고봉오가 사회를 봤다. 김정연 등 출전선수들의 인사말과 이화여전 합창단 음악, 무용 공연이 열렸다. 입장료 수입은 선수 파견비에 충당했다. 전국에서 비슷한 ‘올림픽의 밤’ 후원행사가 열렸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로 독일행

‘세계무대의 제패를 목표로 알프스 산록의 ‘카르밋쉬·바르텐킬르헨’의 빙반(氷盤)위에서 열리는 제4회 세계동계올림픽대회에 출장할스피—드·스케—팅 대표 김정연 이성덕 장우식 세명은 석원성삼(石原省三) 중촌례길(中村禮吉) 남동방문(南洞邦文) 제 선수와 함께 감독 청목미광씨 인솔아래 1일 오후3시 동경역발 부사호(富士號)로 장도에 올랐다.’(’빙상의 김,이,장 삼걸 三傑, 세계 제패의 장도에), 조선일보 1935년12월3일)

세 선수는 3일 서울을 거쳐 5일 중국 심양(봉천)에 도착했다. 여기서 한달 가까이 합숙훈련을 거친 뒤, 시베리아 횡단열차로 독일 베를린에 도착했다. 노르웨이 오슬로 전유럽빙상선수권대회와 스위스 다보스 세계빙상선수권대회에 참가해 컨디션을 체크하고, 2월6일부터 열리는 동계올림픽에 출전했다. 세계28개국, 646명이 참가했다.

◇김정연, 1만미터 13위

추크슈피체 역 부근 실내 아이스링크에선 피겨 스케이팅과 일부 아이스하키 경기가 열렸다. 조선선수들이 출전한 스피드 스케이팅은 여기서 2킬로미터 떨어진 리제르 호(湖)에서 열렸다. 야외였다. 조선인 선수들은 초반에 부진했다. 중장거리에 비해 단거리 기록은 떨어졌기 때문이다. 500m에선 일본 선수 이시하라가 4위에 올랐다. 이성덕은 16위였다. 국내 경기에서 이시하라를 누른 적도 있는 이성덕은 아쉬웠을 것이다. 5000m에서도 김정연은 21위, 이성덕,장우식은 27위였다. 10위권을 노린 목표엔 못미치는 성적이었다.

1936년 2월15일자 조선일보 석간 2면엔 김정연의 1만m 경기 소식이 실렸다. ‘김정연은 제16조에서 에스토니아 대표 ‘밋트’ 선수와 짝지어 스타—트하야 벽두부터 호조를 보이며 단연 선두에 나아가니 밋트 선수는 2500미터까지는 추종하였스나 김군은 점차 ‘핏취’ 를 올려 스피—드를 내니 ‘밋트’선수는 추종키 어려움을 깨닫고 중도에 기권하니 이로부터 짝을 잃어버린 김군 독주하야 18분2초7로 세계올림픽 기록을 돌파하는 동시에 일본 신기록을 작성코 제13위를 차지하였다. 이성덕군은 동료 장우식군과 동주하야 18분50초2로 제25위를 점하고, 장군은 제26위로 되었다. ‘(’빙상 올림픽初무대 최후전/올림픽 기록 깨엿스나/통분! 13위/이, 장 양군은 각각 25위, 26위

세계 무대와의 격차는 컸다. 노르웨이가 스피드 스케이팅 4 종목 전부를 석권했다.

◇동계올림픽 주최한 대한민국

대한민국은 해방 후 1948년 제5회 생모리츠대회에 참가한 이래 6·25전쟁 중인 1952년을 제외하곤 매번 출전했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 때는 금메달 6개를 따내 종합 5위에 올랐고, 2018년엔 동계올림픽 주최국이 됐다. 이달 초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에 들렀다 ‘올림픽 아이스링크’를 지나면서 87년 전 이곳에 왔던 조선인 빙상선수들을 떠올렸다. 격세지감이다.

◇참고자료

이태형, 은반위의 질주, 국민체육진흥공단, 2000

‘한국 빙상의 위대한 시작, 김정연’, 스포츠 원, 대한체육회, 2014년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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