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도, 코헨도 애용한 수사법
마크 포사이스 지음
오수원 옮김
비아북
‘기억할 만한 대사의 대가’인 셰익스피어처럼 멋진 글을 쓰고 싶지만 역부족을 실감한다. 오스카 와일드처럼 말하고 싶지만 그런 재능도 없다. 그렇다고 실망하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천재라고 떠받드는 작가들도 글 쓰는 법을, 말하는 법을 학이시습(學而時習)해 대가가 됐다고 한다.
『문장의 맛』(원제 The Elements of Eloquence)은 세계적인 작가들도 차근차근 밟았다고 하는 ‘글쓰기 레토릭(수사법)’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이 책은 영어권의 39개의 수사법을 풍부한 예문에 녹여 소화하기 쉽게 요리한 ‘문장학’ 교과서다. 미문(美文)의 비법들을 전수받으면 전문 작가가 아닌 일반인들의 문장 실력도 얼마든지 일취월장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주는 책이다.
“그녀가 풍기는 냄새는 달빛에 비친 타지마할 같았다.”(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 『시골 아가씨』)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레토릭 ‘공감각’을 잘 보여 주는 사례다. 후각과 시각, 청각, 촉각 등을 한데 버무린 표현이다.
‘전사반복(前辭反復)’이라는 게 있다. “고통은 인격을 낳고 인격은 믿음을 낳습니다. 결국 믿음은 실망시키지 않습니다.”(제시 잭슨) 한 구절의 마지막 단어를 다음 구절 첫 단어로 다시 씀으로써 두 어구 모두에 힘을 부여하는 수사법은 그다지 낯설지 않은 수법이다.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프리드리히 니체)은 ‘띄어 반복하기’ 기법이다. 셰익스피어 『햄릿』의 “존재할 것인가, 아니 존재할 것인가(To be or not to be)”는 같은 레토릭이면서도 ‘수사적 질문’이기도 하다. 굳이 이 질문에 대답할 필요는 없다. “당신을 여름날에 비유할까요?”(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8)도 수사적 질문을 사용했다.
우리말에서는 낯선데, 셰익스피어가 즐겨 사용한 ‘이사일의(二詞一意)’도 있다. 형용사와 명사를 하나씩 선택한 다음 그 형용사를 다른 명사로 바꾸는 원리다. “나는 시끄러운 도시에 간다”라고 하는 대신에 “나는 소음과 도시에 간다”고 하는 식이다. 싱어송라이터 레너드 코헨도 애용자다. 그의 노래 ‘할렐루야’에는 “그녀의 아름다움과 달빛이 당신의 넋을 빼놓았죠”라는 대목이 나온다. ‘그녀의 아름다움과 달빛’은 실은 ‘달빛 속 그녀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이사일의다.
“왔노라, 보았노라, 정복했노라”(카이사르)나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링컨)는 ‘삼항구(三項句)’다. 웅장한 연설에 잘 어울리는 수사법이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는 식의 등위구문(等位構文)은 특히 광고주들에게 유익하다. “휴식을 취하세요. 킷캣을 드세요”라는 광고문구는 영리한 선전이다. 킷캣에 마치 휴식처럼 편안한 느낌을 부여한다.
은유와 직유는 누구나 알지만, 환유(換喩)와 제유(提喩)는 낯설다. 책에 따르면 환유는 사람을 나타낼 때 사람 대신 사람이 신체적으로 접촉하는 것을 언급하는 비유법이다. ‘크라운’(왕관)은 왕실, ‘다우닝가 10번지’는 영국 총리 관저를 뜻한다. 환유의 극단적 형태는 사람이 그의 신체 부위 중 하나가 되는 제유이다. 윌리엄 블레이크는 제유를 사랑했다. “어떤 불멸의 손, 어떤 불멸의 눈이/감히 그대의 무시무시한 대칭을 만들었나요.”
수사법은 단순히 교활한 말장난이 아니라 삶을, 언어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마법일 수도 있다. 혹시 누가 알겠나. 나도 드라마의 명대사를 쓰는 작가가 될 수 있을지. 아무리 흔한 생각이라도 절묘하고 기막히게 표현하는 법은 그저 어느 날 갑자기 얻어지는 게 아니다.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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