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게이트 33년 뒤 비로소 공개된 비밀
밥 우드워드 지음
채효정 옮김
마르코폴로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의 전례 없는 임기 중 사임을 불러 온 워터게이트 스캔들. 타국의 오래 전 사건이라 그 전말을 정확히 모르더라도, 두 가지 정도는 연상이 되게 마련이다. 권력과 연계된 부패 사건에 흔히 붙는 ‘~게이트’의 원조라는 점, 그리고 복잡한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비밀스러운 내부고발자를 뜻하는 ‘딥 스로트(Deep throat)’라는 단어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칼 번스타인과 함께 집요하게 추적한 밥 우드워드의 이 책은 딥 스로트와의 인연과 그를 통해 진행된 치열한 취재, 그리고 그의 정체가 공개되기까지의 과정을 담았다. 사건 당시 FBI 부국장이었던 마크 펠트가 1972년 워터게이트 스캔들 이후 33년만인 2005년에 자신이 딥 스로트임을 밝힌 직후 출간됐다.
밥 우드워드는 처음부터 펠트 본인이 인정하거나 사망하기 전까지는 결코 그의 정체를 밝히지 않기로 하고, 그 약속을 지켰다. 자신이 딥 스로트라는 점이 공개되면 몸담았던 FBI에 누를 끼치거나, 가족들이 위험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 펠트의 엄격한 요구 때문이었다. 진실에 제대로 접근하기 위해선 취재원을 절대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저널리즘 원칙 때문이기도 했다.
책의 흐름이 워터게이트 사건의 진행과 보도 과정을 촘촘하게 따라가다 보니, 무수한 관련 인물의 이름이 쉴 새 없이 등장한다. 또 글의 상당 부분은 권력의 오만한 모습을 파고드는 언론의 역할과 취재원 보호를 위한 노력 등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미국 현대 정치나 저널리즘에 관심이 있다면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한 편의 소설처럼 읽어내려가면 또 색다르다. 군 전역을 앞두고 불투명한 미래를 고민하던 20대 청년 장교가 권력의 정점을 눈앞에 둔 50대 중반의 FBI 고위 간부와 우연히 만나는 과정부터 극적이다. 바로 몇 년 뒤 워터게이트 스캔들이 터지자, 신문사의 신참 사회부 기자와 FBI의 2인자로 다시 만난 두 사람이 비밀스럽고 기발한 방법을 통해 ‘접선’을 이어가는 과정은 스릴이 넘친다. 무엇보다 50대 중반의 우드워드가 인지 장애로 기억을 잃어가는 노년의 펠트를 다시 만나 대화하는 장면에서는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 사건과 인물이 책과 영화 등으로 계속 재창조되는 이유일 것이다.
이승녕 기자 lee.franc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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