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생이 겪은 집과 가족의 흥망
마민지 지음
출판사 클
이 책의 저자는 1980년대 후반 태어나 서울 송파구 오륜동 올림픽선수촌아파트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름처럼 88올림픽 때 선수·취재진 숙소로 지어 일반에 분양한 대규모 최신 단지였다.
저자의 가족은 분양 추첨에 떨어졌지만 ‘피’, 즉 몇 배의 웃돈을 주고 30평대에 입주했고, 다시 40평대로 이사했다. 아버지는 골프를 치고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어머니는 어린 딸과 백화점 셔틀버스를 타고 문화센터를 다녔다. 휴가는 회원권 있는 콘도미니엄에서 보냈다. 너나없이 ‘중산층’을 자처하던 시절, 세 가족의 삶은 중산층 이상이었다.
계속되진 않았다. 40평대 자가를 팔고 30평대 전세로, 다시 12평짜리 상가주택으로 옮겼다. 큼직한 식탁과 소파만으로도 비좁았다. 공과금은 수시로 밀렸다. 대학생이 된 딸은 학자금 대출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독립 생계를 시작한다. 과연 가족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저자가 뒤늦게 알게 된 부모의 삶은 우리 사회의 도시개발사, 부동산 흥망사와 맞물린다. 울산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 부부는 100만원의 거금을 마련해 구입한 아파트가 몇 배로 뛰는 걸 경험했다. 서울로 이주해서는 집 장사를 했다. 땅을 구해 건물을 짓고 팔아 이윤을 남겼다. 한데 IMF 외환위기는 고급 빌라 건축에 착수한 아버지의 사업에 치명타를 안겼다. 이후 어머니가 구한 일은 공교롭게도 부동산 텔레마케팅. 그런 와중에도 딸의 이름으로 외곽에 땅을 사둔다. 하릴없이 종로를 배회하는 듯 보였던 아버지 역시 실은 부동산 일에 미련을 접지 못한 상태였다.
영화를 전공한 저자는 가족 이야기를 ‘버블 패밀리’라는 다큐로 만든 바 있다. 책의 이야기는 이후로도 현재진행형이다. 저자의 문장은 발랄하거나 담담한데, 읽고 있으면 가슴이 저린다. 좌절과 드문 희망이 교차하는 여러 번의 이사도, 코로나19가 불러온 큰 슬픔도 그렇다. IMF 외환위기와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의 시련 속에 성장한 세대의 삶을, 그런 격변이 우리 사회의 가족에 미친 영향을 생생히 헤아리게 하는 책이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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