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전도체 기술, 고대 연금술처럼 ‘경계의 사색’ 일깨워

2023. 8. 19. 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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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자의 과학 탐미 〈끝〉
최근 국내 퀀텀연구소가 개발한 상온 초전도체 LK-99가 큰 이슈다. 아직 검증되진 않았지만 세상에 없었던 신소재다. 다른 초전도체는 섭씨 영하 269도, 또는 영하 약 200도에서나 전기 저항 ‘0’이 가능했는데 상온에서도 전기 저항을 갖지 않는다면 고성능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 또한 발열 문제 없이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장시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며 자기공명영상(MRI)에 드는 비용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선박·비행기 등에 사용되는 모터도 새롭게 변할 것이다.

신소재 기술은 특정 제조 공정을 갖는다. 일례로 LK-99는 산화납과 황산납을 섞어 황산화납을 만들고 거기에 구리와 인을 특정 시간, 특정 온도로 구운 인화구리를 일대일로 혼합해 진공 상태에서 섭씨 925도로 구워냈다고 한다. 여기서도 중요한 건 특수 제조 공정이다. 이렇듯 신소재 제조 기술은 특정 물질을 새로운 성질을 갖도록 변화시키는 공정을 갖는다. 과거 귀금속을 만들고자 값싼 물질들을 혼합했던 연금술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 경계의 사색

연금술사에 대한 19세기 일러스트. [사진 웰컴 라이브러리]
고대 연금술은 물질들의 혼합물에서 새로운 성질을 발견하려고 했다. 이는 혼합물이 새로운 성질을 갖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혼합물의 성질 변화는 고대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근본 사고로, 이 글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초전도체 탄생 과정을 연금술과 관련하여 이해하고자 한다.

초전도체 제조 기술은 현대 물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분야 중 하나다. 그도 그럴 것이 제조 과정에서 물질이 고유하게 가지고 있는 성질 외의 것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일상적인 온도나 압력에서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전기 저항 ‘0’과 반자성이 극저온에서 관찰되었다. 최근의 상온 초전도체 열풍은 곧 새로운 성질을 향한 우리의 욕망이 강하다는 사실을 잘 드러낸다. 값싼 납을 금으로 바꾸려는 집요함은 단순히 재물욕만이 아니라 새로운 성질을 향한 연금술의 끊임없는 도전이 있는 것과 같다. 이런 점에서 과학이나 고대 연금술은 모두 특정 물질의 성질 이외의 새로운 성질을 발견하는 게 초미의 관심사다.

그렇다면 고대에 새로운 성질이 생긴다는 것을 어떤 식으로 이해했을까? 오늘날의 과학적 사고가 없었던 시대라 고대인들은 신화의 방식을 취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헤르메스 신화를 통해 새로움에 대한 개념을 생각해 냈다. 그러니까 경계에서 새로운 성질이 생긴다고 여긴 것이다. 그 증거를 바로 고대의 연금술에서 찾을 수 있다.

연금술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시작되어 헬레니즘기에 크게 융성했다. 이 시대는 그리스 사상이 동방으로 확장되는 시기였으며, 그 과정에서 경계 문제는 매우 중요한 이슈였다. 그런데 로마제국이 기독교 영향을 크게 받은 4세기경에 잠시 주춤하는 듯싶더니 르네상스 시대에는 마술학(ars magica) 또는 비학(祕學, occulta philosophia)으로 재생했다. 이 기술과 학문들은 각기 다른 영역에서도 통용되는 일관된 원리를 발견하고자 했다. 서로 다른 영역의 경계와 거기서 나타나는 새로운 현상에 주목한 것이다. 마술학은 우주와 자연 그리고 영혼의 영역을 거리낌 없이 넘나들었고, 비학에 속하는 점성술은 별자리와 인간 운명의 연관성을 연구했다. 연금술은 인간의 건강과 영생(삶의 연장)을 위한 탐구를 포함하여 한 물질이 새롭게 변화할 수 있는지를 추적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연금술사들이 한결같이 헤르메스주의자들이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연금술과 헤르메스가 도대체 무슨 상관일까? ‘헤르메스’란 이름은 경계지에 쌓여 있는 돌무더기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헤르마이온’에서 파생되었다는 설이 있다. 여기서 새로운 성질은 경계와 관련된다는 고대인들의 통찰이 보인다.

그리스 신화에서 헤르메스는 제우스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신으로 유명하지만, 그의 가장 큰 특징은 경계를 넘나듦이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 망자들을 안내하는가 하면 하늘·땅·지하의 경계 등 각종 접촉이 일어나는 분야, 이를테면 상업·교역·여행·통역·서적·목축·통신 등에서 벌어지는 예기치 못한 일에 관여한다. 헤르메스는 경계 영역에서 새로움으로 안내할 뿐만 아니라 거기서 사람들을 보호해 주었다.

# 경계의 새로움

지암바티스타 티에폴로가 그린 그리스 신화 속 메신저 ‘헤르메스’. [사진 위키미디어]
행운의 기적이든 불행의 재앙이든 새로움은 경계에서 일어난다. 그 새로움이 기적과 재앙의 두 얼굴을 지녔기에 혼란스럽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학』에서 경계를 카오스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카오스는 감싸고 감싸지는 접촉의 경계이자 물체의 경계다.” 하지만 카오스는 단순한 혼돈이 아니라 새로움이 벌어지는 창조의 영역이 될 것이다. 경계를 넘어가는 자들은 그 혼돈의 영역이 행운이 되길 간절히 소원하는가 하면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래서 새로움을 기대하는 자들은 헤르메스가 기적을 베풀고 혹시 모를 재앙에서 자신들을 보호해 주기를 간청했다.

초전도체는 물질의 상태 변화, 즉 기체가 액체가 되는 경계에서 우연하게 발견되었다. 1799년 암모니아 가스가 약 10압력(atm) 이상의 압력에서 액체가 된다는 사실과 1압력에서는 섭씨 영하 33.3도가 될 때 액체가 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저온을 만드는 것이 인류의 큰 고민 중 하나였지만 암모니아 가스의 액화로 해결할 수 있었다.

암모니아 가스에 압력을 가해 액체로 만든 후 다시 1압력으로 낮추면 주위의 열을 흡수해 냉각시킬 수 있다. 이러한 열 흡수 과정을 기화열이라고 하는데 액체가 기체로 전환될 때 주위의 열을 빼앗아 그 주위를 저온으로 만든다. 냉장고는 암모니아의 이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액화된 기체나 그 자체로도 특별한 성질을 지니고 있지만, 기체나 액체 자체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성질이 발생한다.

이런 저온 물리학에 힘입어 1908년 헬륨 가스의 액화에 성공한 네덜란드의 카머린 오네스는 헬륨으로 극저온을 만들어 각종 물질의 성질을 조사했다. 그 결과 1911년 극저온에서 수은의 전기 저항이 갑자기 작아졌는데, 그는 이 상태를 초전도 현상이라 불렀다. 이후 과학계에서 초전도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극저온 상태에서 전기 저항 ‘0’이라는 새로운 성질이 관찰된 것이다.

초전도체의 새로운 성질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1933년 독일의 마이스너는 고순도의 납과 주석에서 단결정을 만들어 극저온에서 균일한 자기장을 가한 후, 그 물질들 주변에 발생하는 자기장의 분포를 측정했다. 그랬더니 초전도체 외부에 자석을 가져가면 자석이 초전도체 위에 떠 있는 자기부상 또는 반자성의 성질을 보였다. 극저온에서 초전도체 내부의 전자들이 특정 방식으로 움직여 자기장을 밖으로 밀어내는 결과로 밝혀졌다. 이것은 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마이스너 효과’라고 한다. 흔히 초전도체와 관련된 동영상이나 이미지에서 익숙하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오늘날 이런 자기장의 원리를 기반으로 한 초전도체 기술은 MRI, 자기부상열차, 인공태양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되고 있다. 이 초전도체가 상온에서도 쓰일 수 있다면, 인공태양 같은 거대한 장치를 간소화시키면서 에너지 문제에 일대 혁명을 가져올 것이다. 극저온에서 안정적인 상태로 유지되던 전기 저항 ‘0’과 반자성이라는 초전도 현상이 상온에서도 나타날 수 있을지, 이제 그 가능성이 시험대에 올랐다.

# 경계는 카오스

초전도체를 비롯한 그래핀, 메타물질, 초박형 물질 등 다양한 신소재들은 마치 고대 연금술에서 꿈꿨던 기적의 물질들처럼 온갖 기대를 불러 모으고 있다. 이 영역은 고대인들의 시각으로 본다면 경계의 신 헤르메스가 관여하는 영역이다. 신화가 다 사라진 오늘날 신화의 내용을 벗기고 보자면 상온 초전도체 열풍은 ‘경계의 사색’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교훈으로 남겼다.

경계가 있다는 것은 적어도 한 개 이상의 무언가가 함께 있어야 한다. 시스템의 어원인 그리스어 ‘쉬스테마(σύστημα)’도 ‘함께(쉰) 그리고 있음(히스테미)’을 의미한다. 함께 있을 때 경계가 만들어진다. 그 경계에 새로움이 발생할 여지가 있다. 이러한 경계가 없다면, 혼란이 없을지는 모르지만 그 시스템에 새로움이 발생할 기회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는 생명체뿐만 아니라 모든 물질들도 흙을 경계로 ‘에코시스템’(ecosystem·생태계)을 구성한다는 주장을 했다. 암석·퇴비·광물과 같은 무기질이 흙을 통해 식물·곤충·미생물·인간과 같은 유기질과 상호작용하여 일종의 시스템이 만들어진다고 보았다. 물질과의 울림인 ‘상호공명’(resonance reciproque)은 ‘흙’이라는 경계를 통해 가정과 사회, 그리고 세계와 우주로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이 된다. 그런데 이런 상호공명은 흙이 단순히 무기질과 유기질의 경계라는 이해뿐만 아니라 인간도 흙이라는 겸허한 생각 속에서 이뤄질 수 있다.

“인간은 자기가 다른 물질의 존재와 달리 특별하다는 순진한 자존심만으로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보할 수 없다. 인간은 진화하는 존재이고, 특히 현대에는 기계와 함께 진화한다.” -브루스 매즐리시, 『네 번째 불연속: 인간과 기계의 공진화』에서

어쩌면 신소재를 찾으려는 우리에게 ‘인간은 흙’이라는 겸허한 경계의 사색이 새로운 통찰을 줄지도 모르겠다. 새로움이 등장하려면 잠시 혼돈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새롭게 되어 시스템의 발전과 진화를 이루는 데에 큰 역할을 한다면, 그 혼돈도 참아볼 만하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의 삶도 그렇게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 같다.

이제 이 주제로 연재의 마지막 원고를 쓰면서 2년 동안 필자의 딱딱한 글을 읽어준 독자들에게 진정한 감사를 전한다. 새로운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이제 그 경계의 의미를 곱씹어 보자. 혼돈과 새로움, 그리고 흙.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창세기’ 3장 19절)

김동훈 인문학자. 그리스·로마 문학 및 수사학, 철학을 공부했다. 인문학의 서사를 담아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퓨라파케’ 대표. 『인공지능과 흙』 『브랜드 인문학』 『리더의 언어사전』 등을 썼고,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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