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 마그리트의 미공개 유작을 만나다
명품 브랜드 델보의 특별한 전시
전시 작품은 ‘크리스털 욕조(과슈-불투명 수채물감·1946)’ ‘이미지의 배반(드로잉, 1952)’ ‘레슬러의 무덤(인디언 잉크, 1960)’ ‘조르제트의 초상(드로잉, 1936)’ ‘기성품 꽃다발(드로잉, 1956)’ ‘바우키스의 풍경(석판화, 연도미상)’ ‘무제(꼴라쥬, 1966)’ 등이다. 파이프, 크리스털 잔, 중산모를 쓴 남자, 장미, 아내 조르제트 등 마그리트의 작품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상징들로 가득하다.
특히 기대되는 부분은 대중에게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는 작품 ‘레슬러의 무덤’ ‘조르제트의 초상’ ‘바우키스의 풍경’이다. 마그리트 재단을 찾은 소수의 사람들만 관람했던 이들 미공개작은 마그리트 사후 처음으로 지구 반대쪽 아시아로 바깥나들이를 하게 됐다(*서울 전시 1주일 전 홍콩에서 같은 테마의 전시가 열렸고, 동일 작품들이 소개됐다). 이들 작품은 옥션 감정도 받은 적이 없어 작품가도 미정이다. 전문가들은 이번에 전시되는 7점의 가격이 약 4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한다. 보험액수도 상당할 듯하다. 가방 브랜드가 왜 이렇게까지 공을 들여 마그리트의 전시를 여는 걸까. 그것도 일반 갤러리가 아닌, 백화점에서.
7점 그림 가격 400억원 추정
명품부터 캐주얼까지, 다양한 패션 브랜드가 여러 예술 분야 아티스트들과 꾸준히 협업 행사를 여는 이유기도 하다. 하지만 협업에도 ‘진정성’과 ‘품격’이 필요하다. 이미 수년 간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주제로 한 팝업 스토어와 전시는 수도 없이 열렸다. 문제는 서로 다른 분야의 협력일수록 서로의 정체성과 철학을 끊임없이 논의하며 지향성을 공유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런 기본 원칙은 간과하고 인지도 향상과 매출 증가를 위한 ‘반짝 쇼’로 끝난 행사가 많다는 점이다.
르네 마그리트 재단의 미공개작까지 공수한 이번 전시에선 ‘사랑’을 주제로 아시아(또는 서울)에서만 판매하는 익스클루시브 제품들을 선보인다. 마그리트가 평생 천착하며 작품에 반영해온 상징들을 ‘사랑(L’Amour)’ ‘유머(L’Humour)’ ‘사과(La Pomme)’ ‘남자(L’Homme)’ 카테고리로 나누어 핸드백·파우치·지갑 등의 디자인을 구성한 제품들이다.
르네 마그리트만 15년 동안 탐구
이렇게 애틋한 두 사람의 유대감을 반영한 백에 영감을 준 작품은 ‘대화의 기술’(1950)이다. 달빛이 비치는 호수 위 두 마리 백조와 해질녘 풍경을 배경으로 한 그림으로 캔버스 위에는 ‘Amour’라는 단어가 물결처럼 넘실거린다. 델보의 대표 상품인 브리앙 백과 핀 백을 이용한 컬렉션에는 서로를 안아주듯 엉켜있는 백조들과 ‘Amour’ 레터링 자수가 스티치 기법으로 수놓아 있다. 하늘색 자수는 아시아 독점, 검정 자수는 한국 독점 판매한다.
그 반작용으로 대두된 게 ‘조용한 럭셔리’다. 명품의 진정한 ‘가치’란 일부러 자랑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그 품격과 멋이 드러나는 데 있다. 조용해도 아는 사람은 알아본다는 얘기다. 델보는 전 세계 패션 피플이 ‘조용한 럭셔리’의 대명사로 꼽는 브랜드다. 1958년 첫 선을 보인 델보의 대표 상품 ‘브리앙’ 백의 경우 단정한 실루엣과 브랜드 명에서 따온 D자 모양의 버클만으로 매 시즌 완판을 거듭한다. 60년 전, 당시로선 예외적으로 건축가의 디자인으로 탄생한 가방 디자인은 엄격하면서도 부드럽고, 익숙하면서도 낯선 실루엣과 조형성으로 세대를 초월해 사랑받고 있다. 실제로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델보 아뜰리에에 가면 “할머니가 사용하던 브리앙 백”이라며 AS를 부탁하는 젊은이들을 종종 만날 수 있다. 시공간을 초월해 사랑받는 가방은 이미 예술품이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에는 다른 어떤 것이 숨겨져 있다.” 르네 마그리트는 익숙한 것들을 낯선 시선으로 바라볼 것을 끊임없이 주장해 왔다. 초현실주의 화풍을 떠나, 기본적으로 이 주장은 익숙한 것을 새롭게 보는 ‘발상의 전환’을 유도한다. 갤러리가 아닌 백화점에서, 이미 충실한 예술 애호가뿐 아니라 낯설지만 호기심 많은 예비 예술 애호가들과 공감대를 가져보겠다는 델보의 시도가 남달라 보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디자인은 ‘조용한 럭셔리’ 답게 클래식하지만, 생각은 누구보다 젊고 신선하다.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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