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정상회의] "불법 영유권 주장" 처음으로 중국 직접 거명 비판
'역내 위협 협의' 공약과 맞물려 주목…안보 공동대응 가속할듯
(서울=연합뉴스) 김효정 기자 = 한미일 정상이 공동성명에서 처음으로 중국을 역내 '규칙 기반 국제질서'를 저해하는 주체로 직접 지목했다.
한국이 미국 주도의 대중국 견제에 보다 확실히 동참하는 신호로 보이는데, 3국이 지역적 위협에 함께 대응하기 위해 신속히 협의하겠다는 공약과 맞물려 더욱 주목된다.
한미일은 18일(현지시간) 발표된 '캠프 데이비드 정신: 한미일 정상회의 공동성명'에서 "역내 평화와 번영을 약화시키는 규칙 기반 국제질서에 부합하지 않는 행동에 대한 우려를 공유한다"면서 바로 이어서 중국을 실명으로 거론했다.
3국은 "최근 우리가 목격한 남중국해에서의 중화인민공화국에 의한 불법적 해상 영유권 주장을 뒷받침하는 위험하고 공격적인 행동과 관련하여, 우리는 각국이 대외 발표한 입장을 상기하며 인도-태평양 수역에서의 어떤 일방적 현상변경 시도에도 강하게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매립지역의 군사화, 해안경비대 및 해상 민병대 선박의 위험한 활용, 강압적인 행동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목격한 중국의 위험하고 공격적인 행동'이란 중국 해경이 지난 5일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군도 세컨드 토마스 암초(중국명 런아이자오·필리핀명 아융인) 지역에 좌초된 필리핀 군함에 보급품 등을 전달하려던 필리핀 해경선을 향해 물대포를 발사한 일을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참여하는 정상 공동성명이 역내 사안과 관련해 중국을 적시해 비판한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지난해 11월 한미일 정상의 '프놈펜 성명'도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해 "불법적인 해양 권익 주장과 매립지역의 군사화, 강압적 활동을 통한 것을 포함하여 인도-태평양 수역에서의 그 어떤 일방적 현상변경 시도에 강력히 반대한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지만 중국을 직접 명시하진 않았다.
그동안 미일 정상끼리의 공동성명에는 중국 언급이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이런 온도 차는 한국이 중국을 직접 겨냥해 비판하는 데 비교적 신중한 태도를 취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에도 한동안 '힘에 의한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 반대 등 원칙론에 가까운 수준에서 목소리를 냈지만 이번 성명에선 입장이 훨씬 선명해진 것이다.
대만 문제에 대한 표현도 강해졌다. 한미일은 "국제 사회의 안보와 번영에 필수 요소로서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재확인한다"는 기존 입장에 더해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한다"고 했다.
"양안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한다"는 표현 역시 최근의 한미 또는 한미일 정상 공동성명에는 없던 것으로, 중국의 무력 통일 시도에 반대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표현은 한미일의 향후 협력 추진 원칙을 문서화한 '캠프 데이비드 원칙'에도 담겨 앞으로 3국의 기본 입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표현은 올해 5월 주요 7개국(G7·미국·일본·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캐나다) 히로시마 정상회의 공동성명(코뮤니케)에 등장한 바 있다.
중국이 기존 국제질서와 역내 평화·안정에 도전함으로써 불러오는 위협에 대한 한국의 인식이 미·일과 서방 진영에 가깝게 변해가고 있다고 해석되는 대목이다.
한미일은 '캠프 데이비드 원칙'에서 "우리는 힘에 의한 또는 강압에 의한 그 어떠한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에도 강력히 반대한다"라고도 못 박았다.
백악관 관계자가 사전브리핑에서 "3국은 남중국해를 비롯해 다른 여러 분야에 대해 강한 입장을 갖고 있다"면서 "우리 공동 입장을 잘 알게 하는 강력한(robust) 언어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은 이런 '톤 변화'를 예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3국이 이번 회의에서 합의한 일부 구체적 조치는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장에 대응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개발금융기관 간 3자 협력과 글로벌 인프라·투자 파트너십(PGII)을 통해 양질의 인프라와 회복력 있는 공급망을 위한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계획 등이 사례다.
중국 '일대일로' 인프라 투자는 차관을 무기로 개발도상국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등의 비판을 받아 왔는데 한미일이 대안을 제시한다는 의미일 수 있다.
한미일은 '해양안보협력 프레임워크' 등을 통해 중국의 공략 대상인 아세안과 태평양도서국의 역량 강화를 지원하기 위한 노력도 조율하기로 했다.
이번 회의에서 한미일은 3국 공동의 이익과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지역적 도전과 위협에 대응해 신속히 협의하겠다는 공약(Commitment to Consult)도 채택했다.
비록 3국은 이번에 중국을 '위협'이라고 직접 적시하거나 적대시하는 표현을 쓰지는 않았다.
그러나 과거 미묘한 차이를 보였던 한미일의 대(對)중국 인식이 한층 수렴된 것은 3국이 대응해야 할 공동의 위협을 규정하는 데도 중요한 토대가 될 전망이다. 북한과 중국을 모두 염두에 둔 한미일의 지역안보 '공동대응'이 가속할 수 있는 것이다.
kimhyo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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