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 가정서 키워야” 美 미혼모 아기 200만 사실상 강제 입양돼

김민정 기자 2023. 8. 1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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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직후부터 70년대 초까지 입양아 400만명에 육박했던 미국
저자도 1960년대 아이 입양 보내

아기 퍼가기 시대

캐런 윌슨-부터바우 지음|권희정 옮김|안토니아스|320쪽|1만9000원

‘아기 퍼가기 시대’, 원제는 ‘Baby Scoop Era’. 아기를 아이스크림처럼 퍼가는 대상으로 표현하다니 어감이 섬찟하다. 제목은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970년대 초까지 성행한 미국의 입양 관행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이 기간 미국에서 입양된 아기는 400만명. 당시 신문에는 ‘입양 가능한 아기’ 사진들이 실렸고, 푸른 눈의 백인 아기는 입양 희망자가 많아 입양 기관에 큰돈을 내야 했다. 1955년 미국 아동국 특별자문위원이었던 손힐은 “입양에 대한 인기는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문제를 가져왔다. 백인 어린 아기들을 원하는 엄청난 수요가 형성되고… (중략) 한편 엄마들이 아동을 포기하는 과정에서 권력 남용을 경험한다는 보고가 있다”고 증언했다.

위기에 처한 아이를 입양해 사랑으로 기르는 양부모의 선의를 의심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이 책은 그 당시 그 많은 신생아가 어디에서 왔을까 주목한다. 위에서 인용한 손힐의 발언 중 ‘권력 남용’으로 아이를 포기하게 된 엄마들은 주로 미혼모였다. 미국에서 벌어진 수십 년 전 이야기이지만, 약자에 대한 시대적·사회적 낙인이 하나의 권력이 돼 알게 모르게 부조리를 행할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과거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2015~2022년 국내에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사라진 아이’가 2236명이었다. 의료 기관이 반드시 아기의 출생 정보를 통보하도록 하는 ‘출생 통보제’가 국회를 통과했지만 미혼모의 병원 밖 출산이라는 사각지대가 남아있다. 이들을 병원 밖으로 내모는 부조리는 현재진행형일 수도 있다.

◇정말 선택권이 있었을까

저자도 1960년대 시설에서 딸을 낳은 뒤 입양을 보낸 미혼모다. 30년 만에 딸과 만나지만, 딸은 루게릭병에 걸려 사망한다. 이후 ‘아기 퍼가기 시대 연구 협의체’ 등을 세우고 20년 넘게 잘못된 입양 관행을 세상에 알려왔다. 미 오리건대 역사학과에서 운영하는 ‘입양 역사 프로젝트’에 따르면, 당시 입양된 아이 400만명 중 200만명이 미혼모에게서 태어났다. 입양은 분명 미혼모의 동의를 받아 이뤄졌으므로 아기를 ‘빼앗겼다’는 표현은 맞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다양한 연구와 자료를 제시하며 10~20대 어린 엄마들이 입양을 동의한 배경에는 미혼모에 대한 가혹한 사회적 질타와 시설의 끈질긴 ‘강제’와 ‘압박’이 있었음을 고발한다.

이런 고발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2012년 미국 TV 뉴스 프로그램인 ‘댄 래더 리포트’가 ‘입양인가, 유괴인가’라는 보도를 통해 갓 낳은 아기를 입양 보낸 뒤 오랫동안 고통 속에 사는 미혼모들의 이야기를 방영했다. 이후 가톨릭 자선 단체, 전국 사회복지사협회 등 관련 단체들이 “과거 미혼모에 대한 처우가 부당했고 입양 압박이 있음을 인정”하며 오늘날에는 이러한 관행이 사라졌다고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책의 요지는 미혼모에 대한 사회의 도덕적 검열과 낙인이 ‘어린 엄마’들에게 권력이 돼 아이를 포기하게끔 만들었다는 것이다. 배가 불러오는 어린 미혼모들은 가족 손에 이끌려 온 미혼모 시설에서 외부와 단절된 채 지내야 했고, 사회복지사들은 ‘징벌자’같이 굴었다. 이들의 ‘일탈’에 대해 죄책감을 갖게 하는 언사들을 하고, 양육 의지를 드러내는 미혼모에겐 “엄마 아빠가 모두 있는 ‘정상’ 가정에 가서 살도록 하는 것이 아이를 진정 사랑하는 길”이라며 압박했다. 요즘 말로 ‘가스라이팅’을 한 셈이다. 반면 미혼부에겐 ‘일탈’의 비난이 없었다.

◇미혼모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어야

물론 정말 아기를 원치 않아 양육을 포기한 미혼모도 있었을 것이다. 저자가 말하고 싶은 건 미혼모들이 가진 선택권이 온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이를 기를 수 있는 지원 제도가 충분치 않았고, 특히 이들을 도와야 할 관련자들이 정작 이들을 내몰았다. 당시 사회복지학자들이 쓴 문헌에는 ‘미혼모가 출산한 아기를 포기하고 입양 보내도록 하는 것이 아이를 돕는 길’이라거나 ‘훗날 아이를 키우며 겪었을 좌절을 복지사가 사전에 모면하게 해준 것’이라는 식의 인식이 드러나 있다.

‘정상 가정’과 ‘부유함’이 설사 아이의 행복에 중요할지라도 친모의 선택이 배제됐다면 그것을 정말 도움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회복지 시스템이 도움을 주는 방식 역시 시대에 따라 완전무결하지 않을 수 있다는 시사점을 남긴다. 최근 국내에선 출생 통보제를 계기로 미혼모의 양육을 돕는 지원 제도가 미비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제적 지원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 시선의 변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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