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헌법은 혁명 열기 아닌 전쟁 잿더미에서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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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나라에 헌법이 있습니다. 오직 튀르키예만 그것을 선언해 놓고 폐지하는 바람에 국민이 만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군인들의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미국 프린스턴대 역사학 교수인 저자는 "헌법은 혁명의 열기가 아닌 전쟁의 잿더미에서 태어났다"고 본다.
전쟁과 세수 확보에 책임 있는 군인을 양적으로 확장하기 위한 움직임이 헌법 제정을 통한 시민권 확장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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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안엔 軍과 관련된 조항 수천 개… 민주주의의 진보라는 관점 벗어나
성문헌법 뿌리 비판적으로 분석
◇총, 선, 펜/린다 콜리 지음·김홍옥 옮김/616쪽·3만5000원·에코리브르
1908년 반란을 일으킨 오스만 제국의 군대가 술탄 압둘하미드 2세에게 보낸 글의 일부다. 당시 오스만 제국에는 러시아와 영국이 오스만 제국의 영토인 마케도니아를 장악했다는 소문이 퍼져 나갔다. 전쟁의 위협에 직면했던 오스만 제국군 일부는 의회 정치를 요구하며 반란을 일으켰다.
중요한 건 20세기 초 ‘이미 모든 나라에 헌법이 있다’는 인식이 지식인 집단이 아닌 가장 평범한 군인들 사이에서 싹텄다는 것이다. 반군은 민주주의적 요구로서가 아니라 외세에 맞설 더 견고한 정치체제를 갖추기 위해 헌법을 원했다.
미국 프린스턴대 역사학 교수인 저자는 “헌법은 혁명의 열기가 아닌 전쟁의 잿더미에서 태어났다”고 본다. 이는 성문 헌법의 부상을 1770년대 미국과 프랑스에서 벌어진 대규모 혁명과 연결 지어 ‘민주주의의 진보’로 평해 왔던 관점과는 다른 접근이다. 저자는 1750년대부터 20세기까지 세계 각국에서 태동한 성문 헌법의 역사를 추적하며 근대 세계의 토대가 된 헌법의 뿌리를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저자는 헌법 제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으로 1756∼1763년 슐레지엔 영유를 둘러싸고 유럽 대국이 벌인 ‘7년 전쟁’을 꼽는다. 윈스턴 처칠(1874∼1965)이 “최초의 세계 전쟁”이라고 명명한 이 전쟁 이후 전쟁의 양상이 달라졌다. 전쟁의 지리적 규모가 커졌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더 많은 수의 군인이 필요해졌다. 전쟁과 세수 확보에 책임 있는 군인을 양적으로 확장하기 위한 움직임이 헌법 제정을 통한 시민권 확장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프랑스 정부는 잇따른 전쟁으로 재정적 붕괴 상태에 이르자, 새로운 수입원을 찾기 위해 1789년 어쩔 수 없이 성직자와 귀족, 평민으로 구성된 삼부회를 소집했다. 재정난을 극복할 세제 개혁안을 만들기 위해 모였던 이 회의에서 평민과 귀족 간 갈등이 분출되며 프랑스 대혁명이 촉발됐다.
성문 헌법안이 인쇄돼 널리 배포된 이유 역시 전쟁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18, 19세기 전 세계 각국 정부는 전쟁으로 새롭게 확보한 영토에서 벌어질 내란을 우려했다. 수도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국경 지역에 사는 이들에게까지 ‘자국민’이라는 관념을 심어 내적 갈등을 저지하는 일이 과제로 떠올랐다.
이 과정에서 인쇄술의 발전은 자국민으로서 누리게 될 권리를 담은 헌법을 명문화해 전역으로 퍼뜨리는 데 일조했다. 일례로 러시아 여황제 예카테리나 2세(1729∼1796)는 1767년 총 655개 조항에 이르는 훈시 ‘나카즈’를 만든 뒤 영어와 독일어본까지 만들어 러시아 접경지역에 뿌렸다. 이렇게 국경을 넘나든 헌법 초안은 세계화의 흐름 속에 각국으로 퍼져 나가며 영향을 주고받았다.
저자는 “(헌법은) 단언컨대 천진난만한 장치가 아니며, 지금껏 그랬던 적이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성문 헌법은 처음 출현했을 때부터 권력을 제한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양한 권력을 가능케 하는 것과 연관돼 있었다”고 말한다. 원제는 ‘The Gun, the Ship, and the Pen’.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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