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상준]영화 ‘주전장’을 추천합니다
2019년 日 44개관 상영… 일본인 양심 울려
한일 파트너, 올바른 역사 인식 공유부터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된 것을 한 일본인 감독이 보고 배급사에 추천했다. 배급사는 지금까지의 위안부 영화와는 다르다는 점을 높이 사 배급을 결정했다. 이듬해 도쿄의 한 극장에서 공개됐고 호평이 이어지면서 전국 44개 상영관에 걸렸다.
이 영화가 화제가 되자 인터뷰에 응했던 일본의 우익 인사들이 상영 중지와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걸었다. “졸업 작품으로 알았지 상업 영화인 줄 몰랐다”는 것이 이유였다. 감독은 충분히 설명을 했다고 맞섰다. 우익 인사들은 일심에서도 상고심에서도 모두 패배했다.
일본의 한 영화제에서 상영 예정이었다가 돌연 취소되는 일도 있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는 비판이 일자 다시 상영이 결정됐다. 그만큼 일본 우익에게는 불편한 영화였지만, 이후 유럽의 많은 대학에서도 연이어 상영되었다.
우리는 위안부 문제에 그렇게 집착하면서도 왜 이런 영화를 만들지 못했을까? 왜 일본계 미국인 대학원생이 만든 다큐멘터리가 한국의 그 어느 방송사나 영화사가 만든 작품보다 더 화제가 되고 더 아프게 일본인의 양심을 울렸을까? 위안부 문제를 한국이나 일본의 시각에서 조명하지 않고 문명사회가 지향하는 보편적 가치인 ‘인권과 인간 존엄’의 관점에서 조명하기 때문이다.
광복절 축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일본을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파트너”라고 선언했다. 보편적 가치로 “자유, 인권, 법치”를 들었는데, 일본 역시 동맹국과 공유하는 가치로 선언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가치들이 완벽하게 실현된 유토피아에 사는 것이 아니라 그 가치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불완전한 사회에 살고 있다.
식민지에서 태어난 우리 부모님 세대의 노력으로 우리 세대는 개발도상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리고 우리 자녀 세대는 선진국에서 태어나 선진국 시민으로 살고 있다. 일본 젊은 세대의 의식에는 식민지 한국의 이미지가 없다. 한국은 그들에게 BTS와 블랙핑크의 나라다. 식민지 한국의 이미지는 내 세대를 끝으로 사라졌다. 그만큼 그들은 조상의 범죄에 대한 가해 의식도 없다. 그들에게 피해자 한국의 감정을 이해하라고 다그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들이 과거에 대해 무지한 것은 그들에게 비극이다. 과거에 어떻게 인간 존엄이 훼손되었고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있었는지를 가르치는 것은 다음 세대에게 우리가 지향하는 보편적 가치를 물려주기 위함이다. 그리고 역사는 보편적 가치의 중요성을 가르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교과서다.
윤 대통령의 축사에서 “피해자 한국”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은 것은 다행한 일이다. 해방 80년이 다 돼 가도록, 이미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을 여전히 피해자로 격하시키는 것은 우리 세대의 구차한 타성이다. 그러나, 과거의 진실을 가르치지 않는 일본에 대해 침묵한다면 일본의 젊은 세대는 위안부도 징용공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고 인권에 대한 역사의 교훈도 배울 수 없을 것이다. 일본에 있는 교육자로서 두렵고 안타깝다.
일본을 적으로 삼거나 반일 구호를 외치자는 것이 아니다. 반일은 곧잘 정치 선동으로 변질됐고, 그 구호는 여의도와 광화문을 넘지 못했다. 동맹이자 이웃인 일본에 우리가 공유하는 보편적 가치를 젊은 세대에게 올바르게 가르치자고 권하자는 말이다. 이는 다음 세대의 공동 번영을 위해 우리 세대에게 주어진 책무이기도 하다.
우리의 역사 교육을 돌아보고 일본이 한 사죄와 배상의 역사도 가르쳐야 한다. 영화 주전장에서는 일본인들이 이제껏 듣지 못하던 말뿐만 아니라 한국 언론이 감히 입에 올리지 못하던 말들도 그대로 쏟아진다. 역사의 진실을 두려움 없이 직시할 때, 비로소 우리는 참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보편적 가치를 공유한 두 문명국의 시민들에게 영화 주전장을 추천한다.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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