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주의역사저널] 정선과 한강의 풍경들

2023. 8. 18.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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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명승지 30여점 그림에 담아
유람선 타고 그림 체험 어떨까

서울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가장 인상적인 곳 중의 하나가 한강이다. 조선왕조가 서울을 수도로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한강은 큰 역할을 했다. 북한강과 남한강의 물길이 합류하는 양수리를 거쳐 서해로 빠져나가는 통로에 위치한 서울은 예로부터 물류 교통의 중심지였다. 특히 전국에서 거두는 세금은 대부분 한강과 서해의 물길을 이용하였다. 충주의 가흥창, 원주의 흥원창, 나주의 영산포창, 태안의 안흥창을 비롯하여 서울에도 한강 옆에 광흥창, 풍저창, 용산창 등 큰 세금 창고들이 있었다. 지하철의 광흥창역, 창고 앞의 동네라는 뜻의 창전동, 그리고 소금 창고가 있던 염창동, 소금을 굽는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염리동 등의 지명은 한강이 물류 교통의 요지였음을 증언해 주고 있다.

조선후기 물산이 풍부하고 풍광이 좋았던 한강의 모습을 그림으로 담은 대표적인 인물이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鄭敾:1676~1759)이다. 문화와 예술에도 일가견이 있었던 왕 영조는 정선의 재능을 알아보고, 양천현령으로 임명하였고, 정선은 서울의 상징 한강의 모습 하나하나를 그림으로 남겼다. 현재 서울 성북구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정선의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은 제목 그대로 서울과 주변의 명승을 담았다. 한강 중에서도 서울 주변의 한강을 일컬어 ‘경강(京江)’이라 불렀는데, 조선후기에는 대개 광진에서 양화진까지의 강줄기를 경강이라 하였다. ‘경교명승첩’에는 현재의 양수리 부근에서 시작하여, 경강을 관통하여 행주산성까지 이르는 한강과 주변 명승지 30여 점을 그림으로 담고 있다. 정선이 이 그림을 남긴 것에는 절친이었던 이병연(李秉淵:1671~1751)과의 우정도 큰 몫을 했다. 정선은 64세 때인 1740년 양천현령으로 부임하면서, 이병연이 시를 지어 보내면 자신은 그림을 그려 화첩을 만들자는 제안을 하였다. 시와 그림을 서로 바꾸어서 보자는 ‘시화환상간(詩畵換相看)’을 실천에 옮긴 것이었다. 양수리 부근에서 시작한 그림은 서울의 중심으로 향한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압구정(狎鷗亭)’은 세조 대에서 성종 대까지 최고의 권력가 한명회의 별장을 그린 것으로, 조선후기에도 압구정의 명성이 이어지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백사장이 길게 뻗어 나온 모습이나 돛단배들이 정박해 있는 평화로운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광진’과 ‘송파진’, ‘동작진’, ‘양화환도(楊花喚渡)’ 등 당시 나루터로 활용된 곳에는, 광진교, 잠실대교, 동작대교 등의 다리가 설치되어 현재에도 한강의 남북을 잇는 공간이 되고 있다. ‘동작진’에는 18척의 배가 등장하는데, 바다와 강을 왕래하는 쌍돛대를 단 배도 등장하고 있다. 그만큼 한강이 바다와 같은 교역의 중심지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동작진’의 그림 왼쪽으로 넓게 펼쳐진 숲은 현재의 반포 일대이며, 나귀를 타고 나루를 건너려는 선비 일행의 모습도 보인다. 남산의 풍광을 그린 ‘목멱조돈(木覓朝暾)’은 이병연이 보내온 ‘새벽빛 한강에 떠오르니, 언덕들 낚싯배에 가린다. 아침마다 나와서 우뚝 앉으면, 첫 햇살 남산에 떠오른다.’는 시에 맞추어 남산에 떠오른 일출의 장관을 그린 것이다. 남산의 봉우리 중턱에 해가 반쯤 솟아오르면서 붉은빛이 동쪽 하늘에 가득하고, 노을빛이 한강에 반사가 되는 모습이다. 남산의 봉우리가 두 개인 것도 선명하게 나타나며, 어부들이 고깃배를 몰고 오는 모습도 정겹다. ‘행호관어(杏湖觀漁)’에는 고깃배가 등장하는 점이 흥미롭다. ‘행호’는 지금의 행주산성 앞 한강으로 이 일대에 많은 물고기가 있었는데, 당시 한강의 명물은 사옹원 소속의 위어소에서 왕에게 진상했던 웅어였다.

큰 강의 존재는 그 도시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활용할 수가 있다. 파리의 센강 유람선은 이곳을 방문하는 관광객 누구나가 꼭 타는 명물이 되고 있고, 2024년 파리 올림픽에서는 센강을 배경으로 하는 야외 개막식을 예정하고 있다고 한다. 한강을 서울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로 활용할 방안으로 유람선을 타며 300년 전 정선이 한강을 배경으로 그린 그림들을 다양하게 체험할 방안들을 마련해 보는 것은 어떨까?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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