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감위, 삼성 전경련 복귀 길 터
“정경유착 땐 탈퇴” 조건부 권고
국정농단 연루 이후 6년 만에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18일 전국경제인연합회 복귀를 검토 중인 삼성 계열사들에 “정경유착 행위가 생길 시 즉시 탈퇴할 것”을 권고했다.
전경련의 자체 혁신안을 두고는 “환골탈태할 수 있을지 확신을 가질 수 없다”고 혹평했지만 사실상 ‘조건부 재가입’을 승인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준감위는 18일 2차 임시회의를 연 뒤 “삼성의 준법경영 의지가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만일 관계사가 한국경제인협회(전경련의 새 이름) 가입을 결정하더라도 정경유착 행위가 있는 경우 즉시 탈퇴할 것 등 필요한 권고를 했다”고 밝혔다. 앞서 준감위는 지난 16일 1차 회의를 열었으나 위원들 간 견해차가 심해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삼성 준감위, 전경련 혁신 미흡하다면서 ‘모순적’ 복귀 권고
삼성의 복귀 가능성 높아져…현대차·SK·LG도 재가입 만지작
“전경련 혁신안은 선언 단계” 평가절하…조건 달아 경영진에 책임 미뤄
삼성 주요 계열사 21일 이사회서 결론…재계에선 ‘재가입에 무게’ 관측
현대차 등도 급물살 탈 듯…적극적 활동 ‘실질적 합류’에는 신중 기류
준감위는 현 단계에서 발표된 전경련의 혁신안은 평가절하했다. 준감위는 “현재 시점에서 전경련의 혁신안은 선언 단계에 있는 것이고 실제로 그것이 실현될 가능성과 확고한 의지가 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확인된 바 없다”고 했다. 이어 “과연 정경유착의 고리를 완전히 단절하고 환골탈태할 수 있을지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없는 입장”이라고 부연했다. 전경련의 혁신안은 고작 윤리헌장 제정과 윤리경영위원회 설치에 그쳐 있으며 이마저도 완성된 안이 발표되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이번 준감위 결정은 삼성의 전경련 재가입을 조건부 승인하는 성격이 짙다. 준감위가 전경련 재가입 여부에 대한 명확한 판단을 내리지 않은 채 결정을 삼성 경영진에 미뤘기 때문이다. 이찬희 준감위원장은 “가입 여부는 관계사 이사회가 결정할 문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회계 투명성 확보 방안 등에 대한 철저한 검토를 거친 후 결정할 것”을 권고했다. 정부가 4대 그룹의 전경련 복귀에 관심을 두는 가운데 을의 지위에 있는 기업이 정부 의중을 거스르는 결정을 하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조치다.
재계에서는 삼성 경영진이 재가입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삼성전자·삼성SDI·삼성생명·삼성화재·삼성증권 등 5개 계열사는 오는 21일 비정기 이사회를 열어 복귀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22일 임시총회를 열어 한국경제인협회로 새 출발하는 전경련의 의사결정 전에 이 사안을 매듭짓겠다는 심산이다.
전경련 재가입이 확정될 경우 과거 정치권과의 결탁에 연루된 단체에 다시 들어간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2016년 12월 국회 청문회에서 “앞으로 전경련 활동 안 하겠다”고 공언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이날 성명을 내고 “이 회장은 준감위의 전경련 재가입 권고를 반드시 거부해야 한다”고 했다.
현대차, SK, LG도 전경련 재가입 수순을 밟고 있다. 다만 회비를 납부하고 적극적으로 활동에 참여하는 ‘실질적 합류’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기류가 존재한다. SK 관계자는 “형식적 가입보다는 향후 전경련의 혁신 노력을 지켜본 뒤 주요 그룹들의 실질적 활동 여부가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 관계자도 “(실질적인) 활동 여부는 추후 혁신안 실천과 변화하는 모습 등을 감안해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경련 가입을 찬성하는 측에서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각국의 보호무역주의 흐름에 맞서 정부·기업의 협력 창구가 중요해졌다는 이유를 든다. 하지만 한국무역협회·대한상공회의소 등 역할이 명확히 규정된 경제단체가 존재하는데 굳이 전경련이 전면에 나서야 하느냐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전경련은 오는 22일 임시총회에서 류진 풍산 회장을 신임 회장으로 추대하고 김병준 회장직무대행을 상임고문에 선임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정치권 인사인 김씨의 잔류에 대해 전경련 내부에서조차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찬희 위원장도 이 같은 점을 의식한 듯 “전경련의 인적 구성과 운영에 정치권이 개입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직격했다.
재계의 맏형으로 불리던 전경련은 6년여 전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을 계기로 4대 그룹이 일제히 탈퇴한 뒤 위상이 극도로 위축됐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재계를 대표해 방미 경제사절단을 주도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에 나서고 있다. 지난 5월에는 4대 그룹 복귀의 포석을 깔기 위해 ‘글로벌 싱크탱크형 경제단체’로 탈바꿈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싱크탱크로 갈 것이라면 4대 그룹을 굳이 재가입시킬 이유가 없다”며 “결국 예전처럼 거대 기업과 정부의 카르텔을 다시 구축하겠다는 뜻 아니겠냐”고 말했다.
김상범 기자 ksb123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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