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인간이 내 썸녀를 사랑한다면[책과 삶]
나 같은 기계들
이언 매큐언 지음·민승남 옮김
문학동네 | 460쪽 | 1만6800원
주식과 외환 거래로 푼돈을 버는 30대 찰리는 유산이 생긴 김에 호기롭게 ‘최초의 인조인간’ 아담을 구매한다. 마침 찰리는 위층에 사는 여성 미란다와 가까워진 참이었다. 아담을 처음 구매하면 ‘사교적인’ ‘수줍음 많은’ ‘대담한’ ‘우울한’ 등으로 구성된 수많은 성격의 체크 박스에 표기해야 한다. 찰리는 미란다와 아담의 성격 항목을 절반씩 체크하기로 한다. 정치적 견해 차이로 다툰 어느 날, 찰리는 아래층의 자기 집으로 돌아오고 위층의 미란다는 그곳에 있던 아담과 섹스한다. 이후 아담은 찰리에게 자기도 미란다를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줄거리만 보면 인간과 인조인간이 사랑싸움을 하는 ‘막장 드라마’ 혹은 ‘블랙코미디’ 같은데, 이언 매큐언은 매우 진지하다. 매큐언은 자신의 열다섯 번째 장편 <나 같은 기계들>에서 인간과 거의 같은 기계의 존재를 상정해 인간의 조건을 차분하게 탐구한다. 배경은 1982년 영국이지만, 역사적 사실은 꽤 다르다. 비틀스가 12년 만에 재결합해 새 음반을 내놓았고, 포클랜드 전쟁에서 영국은 아르헨티나에 패했다. 무엇보다 선구적인 컴퓨터과학자 앨런 튜링이 자살하지 않고 살아남아 인공지능의 발전을 이끌고 해당 분야의 구루로 살고 있다. 40여년 전을 배경으로 하지만 복고적이지만은 않은, 미래와 현재와 과거가 뒤섞인 듯한 묘한 분위기가 창조됐다.
도래하는 인공지능은 어떤 윤리를 갖춰야 할까. 철학 교과서에서 볼 법한 “뇌 사고실험의 건조한 버전”만 거쳐서는 불안하다. 인공지능은 “불완전하고 타락한 우리에게 내려와 세상과 부대끼며” 살아야 한다. <나 같은 기계들>은 왕성하면서 안정적인 필력의 소설가가 인공지능 시대를 위해 내놓은 흥미로운 사고실험이다.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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