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셜] ‘잉글랜드 특급 유망주→앙리 등번호 14번’ 월콧, 은퇴 선언!...“EPL 18년 동안 잊을 수 없는 순간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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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 월콧이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월콧이 18일(이하 한국시간) 자신의 SNS를 통해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18년을 뛰면서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이 많다. 에버턴을 거쳐 나의 시작점이었던 사우샘프턴에 돌아와 축구화를 벗을 수 있어 행복하다"고 은퇴를 발표했다.
당시 마이글 오웬, 웨인 루니가 버티고 있었는데 주전 공격수였던 두 선수 모두 부상을 당해 월콧에게 기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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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가동민]
시오 월콧이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월콧이 18일(이하 한국시간) 자신의 SNS를 통해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18년을 뛰면서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이 많다. 에버턴을 거쳐 나의 시작점이었던 사우샘프턴에 돌아와 축구화를 벗을 수 있어 행복하다”고 은퇴를 발표했다.
사우샘프턴에서 유스 생활을 보낸 월콧은 잉글랜드 특급 재능으로 평가받았다. 잉글랜드 연령별 대표팀을 거치며 많은 주목을 받았다. 월콧은 2006년 독일 월드컵에도 승선했다. 당시 마이글 오웬, 웨인 루니가 버티고 있었는데 주전 공격수였던 두 선수 모두 부상을 당해 월콧에게 기회가 왔다. 월콧은 17세의 나이로 월드컵에 데뷔했다.
월콧은 2004-05시즌 유스를 거쳐 사우샘프턴에서 프로에 데뷔했고 한 시즌 만에 아스널로 둥지를 옮겼다. 월콧은 어린 나이임에도 많은 기회를 받았다. 매 시즌 30경기 이상을 소화했다. 특유의 빠른 스피드로 상대 수비를 무력화시키며 아스널의 큰 힘이 됐다.
월콧은 아스널 레전드 티에리 앙리의 등번호 14번을 이어받았다. 아스널이 월콧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월콧은 2011-12시즌 본격적으로 주전 자리를 꿰찼다. 컵 대회 포함 11골 12도움을 기록하며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다음 시즌 월콧은 EPL 정상급 기량을 뽐냈다. 로빈 반 페르시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하면서 월콧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월콧은 리그에서만 14골 13도움을 기록했다.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부상으로 인해 이탈하는 시간이 늘었고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도 참가하지 못했다. 이후 이전의 모습이 나오지 않았고 입지는 점점 좁아졌다. 결국 에버턴으로 떠났다. 에버턴에서 많은 기회를 받았지만 기대 이하였다. 에버턴에서 3년 반 동안 85경기 11골 9도움에 그쳤다.
월콧은 자신이 프로 생활을 시작했던 사우샘프턴으로 돌아왔다. 첫 시즌에 리그에서만 21경기 나왔다. 비록 많은 골을 만들어내진 못했지만 왜 월콧이 특급 재능으로 평가받았는지 보여줬다. 3년 간 사우샘프턴 소속으로 뛰었고 월콧은 지난 시즌 끝나고 계약이 만료되면서 사우샘프턴의 유니폼을 벗었다. 월콧은 새로운 팀을 찾지 못했고 그대로 은퇴를 선언했다.
월콧은 빠른 발로 유명한 선수였다. 폭발적인 속도로 수비와 경합에서 우위를 가져갔다. 스피드보다 더 큰 장점으로 꼽힌 건 움직임이었다. 월콧은 공이 없을 때 좋은 움직임으로 수비를 괴롭혔다. 월콧은 잉글랜드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19세의 나이로 최연소 해트트릭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젠 그의 모습을 그라운드에서 볼 수 없다.
가동민 기자 syg100151@fourfourtw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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