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의 미술소환] 우리가 서로 상처 입힐 때
자콜비 새터화이트의 어머니 퍼트리샤 새터화이트는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눈을 가진 사람으로, 자콜비의 작품세계에 깊은 영향을 남겼다. 세상에서는 ‘정신분열증’이라고 부르는 증상을 가지고 있었던 퍼트리샤의 머릿속 세상은 한없이 분절되어 있었고, 그 사이의 맥락은 대다수의 사람들과 다른 방식으로 형성되었다. 자콜비가 특정한 서사성이나 보편적인 구조를 만들기보다, 파편화된 이미지와 움직임, 사운드를 통해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 어려운 분위기를 만들고, 기묘한 톤으로 관객을 몰입시키는 것은 그런 어머니의 영향일지도 모르겠다.
디지털 애니메이션, 퍼포먼스, 글쓰기, 아카이브의 방법론을 복합적으로 활용하여, 시대와 장르를 넘나드는 자료들을 작품 안에 끌어들이는 그는 가상현실(VR) 작품 ‘우리가 서로 상처 입힐 때 우리는 지옥에 있다’를 통해 우리 시대에 필요한 치유를 이야기한다. 암치료를 위해 입원했던 어린 시절의 두려움과 무료함을 게임 ‘파이널 판타지’로 달래고, 인스타그램과 아이폰에 중독된 밀레니얼 세대인 그가 가장 능숙하게 존재하는 곳은 디지털 세계다. 그는 그 안에 자신이 흡수한 감각을 엮어 유토피아를 구현했다.
사탕처럼 달콤하게 반짝이는 세상, 핑크빛 하늘이 부드러운 무지갯빛 무대, 그리고 그 무대 위 잘 손질된 정원 곳곳에서 자유롭게 춤추고 머무는 캐릭터들은 활기찬 유토피아를 만든다. 디지털 은하계에서 벌어지는 목가적인 풍경은 말 그대로 다양성의 세계다. 인종과 성별의 경계,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가 무너지는 공간,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는 이상적인 공동체가 새로운 세계의 질서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VR 안에 펼쳐 놓았다.
서로가 서로를 상처 입히지 않는 비현실적인 세계가 잠깐 빛나고 사라질 무지개처럼 하늘을 덮는다.
김지연 전시기획자·소환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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