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범죄’ 때마다 정신질환자에 눈총…정신보건 법안·예산 미비부터 해결해야[의술인술]

기자 2023. 8. 18.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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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묻지마 살인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이런 범죄자들을 극형에 처해야 한다는 국민 정서가 생기고 있다. 특히 정신질환자들의 범죄 사실이 알려질 때마다 이들을 사회에서 격리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2016년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은 당시 2명의 보호자 동의만 있으면 환자의 의지와 무관하게 바로 입원이 가능하고 정신병원에 한 번 입원하면 평균 입원 기간이 1년 이상인 후진적 현실을 바꾸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취지는 좋았으나 개정 법은 그 방법이 정교하지 못하고 19대 국회 회기 말 급조된 법안의 병합심리로 조악하고 엉성하게 되었다. 정신건강복지법의 개정으로 정신질환자의 입원 절차가 까다로워진 것이 강남역 사건, 진주 안인득 사건, 임세원 교수의 죽음, 그리고 최근 분당 서현역에서 발생한 소위 ‘묻지마 살인’과 살인 예고 등이 생기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또한 최근 교도소에 정신질환자들이 늘어나는 현상도 급성기 치료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들이 사건이나 사고를 쳐 교도소로 가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약 15%의 교도소 재소자들이 정신질환과 관련 있다고 한다. 미국은 40%가 넘는 재소자들이 정신질환으로 인한 사건으로 교도소에 있다고 한다. 앞으로 정신질환의 치료에 사법적인 문제가 밀접하게 관련된다는 증거이다.

정신질환자의 입원 자체가 어려워지면서 상급종합병원의 정신건강의학과 입원 병동의 수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입원 병동이 없으면 응급실에서도 환자를 받을 수 없기에 결과적으로 응급환자를 받는 병원의 수가 월등히 적어졌다.

필자는 최근 응급 정신질환자를 한밤중에 20곳 이상에 전화를 한 끝에 겨우 입원시켰다는 한 경관의 하소연도 들었다. 지난해에도 경찰이 응급 입원을 위해 6시간 동안 30여곳에 전화를 걸었으나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 결국 사망에 이른 사건이 발생했다.

국내 정신건강 분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과제들을 풀어야 한다. 정신병 치료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설 것, 비자의 입원 시 보호자의 동의가 아닌 사법입원제도를 통해 입원을 결정할 것, 응급정신건강 시스템을 확립할 것, 퇴원 후 지속적인 치료를 위한 지역사회 재활시스템을 확충할 것 등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자살 예방이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38분마다 1명씩 자살로 목숨을 잃고 있다. 이외에 재난재해에 따른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의 관리, 코로나와 같은 팬데믹 상황에서의 정신질환 예방 대책 마련 등도 당면 과제다.

그동안 보건복지부를 비롯해 여러 부처에서 정신건강 분야의 여러 문제에 대한 대책을 많이 발표했다. 지난 정권에서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자살 예방 TF가 구성되어 활동했지만, 그 성과의 지표가 되는 자살률은 낮아지지 않고 있다. 즉 그동안 문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거나 해결을 위한 대책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문제는 대책 마련 이후의 실행과 그를 뒷받침하는 예산 집행이다. 현재 전체 보건의료 중 정신보건 분야에 대한 투자는 1.7%에 그치고 있다. OECD 평균(5%)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과 계획이 있더라도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투자가 없으면 ‘빛 좋은 개살구’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실제로 발표됐던 그럴듯한 대책 대부분은 예산 부족으로 실행되지 않았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정신건강 혁신을 위한 종합대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반가운 일이다. 국가 최고책임자의 관심 하나만으로도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대책의 내용 중 상당 부분은 이미 이전부터 논의됐던 내용일 것이다. 변화를 만드는 것은 대책 발표 그 자체가 아닌,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예산 마련과 정부의 꾸준한 관심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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