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지연 시도, 배심원·판사 신변 위협… 미국 사법 근간 흔드는 '트럼프 세력'

권영은 2023. 8. 1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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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결과 전복 시도 재판, 2026년 4월로 연기"
트럼프 변호인단, 법원에 요청... 무리한 시간끌기
지지자들, 트럼프 기소 결정한 대배심 신상 유포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15일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에서 열린 보수 학생단체 '터닝포인트 액션' 콘퍼런스에 참석해 선거 유세를 하고 있다. 웨스트팜비치=로이터 연합뉴스

'형사 기소 4회'라는 사법 리스크를 안고 내년 대선 도전에 나서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측이 미 사법 절차 진행을 적극 방해하려 하고 있다. 2020년 대선 패배 결과 불법 전복 시도 사건(3차 기소)의 공판을 무려 3년 뒤에 개시해 달라고 법원에 요구한 것이다. 방어권 행사를 위해 방대한 사건 기록을 검토하려면 불가피하다는 게 변호인단 설명이지만, 막무가내식 재판 지연 전략을 구사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뿐이 아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 기소를 결정한 배심원들과 재판을 맡은 판사도 신변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 극렬 지지자들의 극단적인 불만 표출이다. 미국 민주주의를 위협한 그들이 이제는 미 사법 제도의 근간마저 위협하고 있는 셈이다.


"하루에 10만 쪽 서류 못 봐… 2026년 4월로 미뤄 달라"

1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이날 트럼프 전 대통령 변호인단은 '대선 결과 뒤집기 시도' 혐의로 기소된 사건 재판을 2026년 4월까지 연기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미 법무부와 이 사건을 수사한 잭 스미스 특별검사가 '2024년 1월 2일 재판을 시작하자'는 의견을 내자, 그에 맞서 내년 11월 대선 한참 이후로 재판을 늦춰 보려는 의도다.

변호인단은 이날 재판부에 보낸 16쪽 분량 서류에서 "공익은 정의와 공정한 재판에 있지, 성급한 판단에 있지 않다"며 "피고인은 자신을 변호할 충분한 시간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례 없는 사건의 특수성, 검토해야 할 특검 수사 서류가 1,160만 쪽에 달하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배심원 선정을 위해 법무부가 제안한 날짜인 12월 11일까지 기록을 다 검토하려면, 변호인이 하루에 9만9,762쪽 서류를 읽어야 하는데, 이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2020년 미국 대선 결과 뒤집기 시도 혐의로 기소된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이 워싱턴 연방지법에 출석한 3일 법원 청사 바깥에서 그의 지지자들과 반대자들이 설전을 벌이고 있다. 워싱턴=정상원 특파원

실제 내년 초부터 본격화하는 대선 경선·본선 일정을 감안하면 트럼프 전 대통령에겐 재판이 커다란 부담이다. 공화당 경선의 첫 관문인 아이오와주 당원대회는 내년 1월 15일 열린다. 그런데 가장 먼저 기소된 '성추문 입막음 돈 지급' 사건의 재판은 3월 25일 예정돼 있다. 또 백악관 기밀 문건 불법 유출(2차 기소) 사건은 5월 20일 재판이 열리며, '조지아주 대선 결과 전복 시도'(4차 기소) 사건 재판 날짜도 검찰이 3월 4일로 제안한 상태다. 선거 운동이 한창일 때 법정을 드나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줄곧 "선거 방해다. 재판은 선거 이후에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지나친 재판 절차 지연 시도라는 지적이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법적 문제 해결을 통해 대선에서 승리하려는 것으로, 트럼프가 연방 사건 재판을 미루고 선거에서 승리하면 취임 후 '셀프 사면'을 하거나 법무장관에게 기소 취소를 명할 수 있다"고 짚었다. 실제 3차 기소 사건의 경우, 민주주의에 근본적 위협을 가했다는 점에서 유죄 시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재판장인 타니아 처트칸 판사는 28일 심리에서 공판 개시일을 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패니 윌리스(가운데) 미국 조지아주 풀턴카운티 검사장이 14일 기자회견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2020년 대선 개입 혐의 관련 기소 발표를 하고 있다. 애틀랜타=로이터 연합뉴스

조지아주 대배심원단 신변 위협… "트럼프 낙선 땐 판사 살해"

'조지아주 대선 결과 전복 시도' 의혹과 관련해 트럼프 전 대통령 기소를 결정한 조지아주 풀턴카운티 대배심 배심원들도 신변 위협에 처해 있다. 대배심에 참여한 배심원의 명단뿐 아니라, 일부의 얼굴과 주소, 전화번호 등 개인정보가 무차별로 온라인상에 유포됐기 때문이다. 배심원 신원 자체를 아예 비밀에 부치는 다른 주와 달리, 조지아주는 '이름'만 공개하고 있다.

위험은 현실화하고 있다. 극단적인 '트럼프 지지자'들은 배심원들에 대해 '좌표 찍기' 등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지난 16일 페이스북에 오른 배심원단 개인정보 노출 게시물에는 "이들에게 오명을 입히고, 거리를 걸을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는 등 악의적 댓글이 달렸다. 이 사건을 수사한 패니 윌리스 풀턴카운티 검사장에 대한 협박도 쏟아지고 있다.

심지어 담당 판사를 죽이겠다고 협박한 지지자도 있었다. AP통신에 따르면 텍사스주에 사는 애비게일 조 쉬리는 지난 5일, 3차 기소 사건 재판이 열리는 워싱턴 연방지법에 전화해 "만약 트럼프가 2024년에 당선되지 않으면 우리는 너(처트칸 판사)를 죽이러 갈 것"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법무부 산하 연방보안관실은 최근 처트칸 판사에 대한 경호를 강화했고, 쉬리를 기소했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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