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야!ONE] 2024 부산 세계탁구선수권대회 현정화-리분희 다시 만날까?

김우성 2023. 8. 18. 19:3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남북이음 프로젝트 이거야!원(ONE)]

■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09:20, 23:20)

■ 방송일 : 2023년 8월 19일 (토요일)

■ 진행 : 김우성 앵커

■ 대담 : 현정화 한국마사회 여자탁구단 감독

[이거야!ONE] 2024 부산 세계탁구선수권대회 현정화-리분희 다시 만날까?

- 현정화 탁구감독이 이산가족이 된 사연

- 1.25평 탁구대의 남북통일 91년 탁구단일팀의 기적

- 팀 코리아 응원위해 조총련, 민단도 한 팀이 되었다

- 지금도 생각만하면 계속 눈물나는 감동의 이야기

- 아무도 우승까진 생각하지 못했다...복식조 상황 최악이었지만 최고의 결과 만들어

- 경기 내내 현정화의 경기가 아닌, 다른 에너지가 끌고간 경기

- 리분희 선수 다시 만나면... 아무말 없이 안아만 줄 것

- 2024년 부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리분히 만나길 희망해

- 탁구는 평화가 상징인 스포츠, 남북 상시만남도 가능할 것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김우성 앵커(이하 김우성)> 남한도 북한도 아닌 통일된 "코리아"라고 외치는 모습 월드 챔피언 코리아의 감동 아직도 기억할 겁니다. 분단 이후 6,655만 평에 한반도는 통일된 적이 없습니다. 계속 휴전선을 맞대고 총을 겨누고 있죠. 하지만 통일된 적 있습니다. 1평이 조금 넘는 탁구대 위에서 통일이 됐었죠. 한반도 전체가 열광했던 1991년 남북 첫 단일팀, 당시 현정화 선수와 리분희 선수의 복식조는 남북 화합의 상징이었습니다. 남북이 사랑한 스포츠 키워드, 오늘의 주인공 '탁구'입니다. 이 시간 함께해 주실 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대한민국 탁구 간판스타, 탁구 여왕, 여제, 레전드 원조 스포츠 얼짱. 이분을 소개하는 수식어만으로도 오늘 방송 분량 다 채울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대한탁구협회 부회장을 맡고 계시죠. 한국마사회 여자탁구단 현정화 감독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감독님, 어서 오십시오.

◆ 현정화 한국마사회 여자탁구단 감독(이하 현정화)> 네, 안녕하세요.

◇ 김우성> 감독님, 혹시 빠뜨린 수식어 있습니까?

◆ 현정화> 너무 많은 수식어를 지금 저한테 나열해주셔서 제가 좀 민망합니다.

◇ 김우성> 아닙니다. 사실은 86아시안게임 때 17살로서도 국가대표로 정말 많은 국민의 사랑을 받았고요. 사실 이렇게 말하면 나이가 나오겠지만 저는 어릴 때부터 우상과 같은 존재였는데 이렇게 방송을 같이 하게 됐습니다. 그때 당시 국민들이 탁구를 너무 사랑했는데요. 제가 초등학생 시절이었는데 저희는 책받침으로도 수업시간에 쉬는 시간에 탁구를 했습니다. 선생님한테 혼나기도 했고요.

◆ 현정화> 제가 듣기로도 탁구공이 없어서 못 팔았다고 그렇게 얘기들을 하셨습니다.

◇ 김우성> 지금 젊은 세대들에게 말씀드리자면 당시 손흥민과 같았다. 이렇게 표현해야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특별한 사연과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저희가 모셨습니다. 남과 북이 함께 사랑했던 것들 남과 북의 평화, 화합을 저희가 떠올려보는 프로그램인데. 사람들이 많이 얘기를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게 단일팀의 현정화, 리분희 선수 이렇게 꼽아요. 그렇게 꼽히는 이유 혹시 감독님은 아세요?

◆ 현정화> 그것도 있지만 그때 당시에 저희가 한 달 정도를 시작하기 전에 가서 합숙 훈련을 같이 했었어요. 그게 한 달 이상, 45일 정도 계속 노출이 되다 보니까 리분희 하면 현정화가 따라오고 현정화 하면 리분희가 계속 따라오고 그렇게 됐던 것 같아요.

◇ 김우성> 우리 편과 상대편을 네트로 나눠서 싸워야 되는데 남과 북이 같은 편에서 네트 건너편에 중국과 싸우는 거였잖아요.

◆ 현정화> 저는 이제 이렇게 얘기를 하거든요. 일본 땅이었고 그리고 중국과 대결을 했었는데 남북이 합쳐서 했단 말이죠. 이런 일은 사실 있지 않았어요. 지금까지. 그래서 저는 역사를 하나 썼다. 이렇게 얘기를 하고 싶어요.

◇ 김우성> 우리 현정화 감독님을 수식하는 말 중에 '역사를 쓴 사람'도 하나 추가하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사실인 게요. 저희가 오프닝에서 들려드렸지만 당시 제일교포분들도 많은 분들이 계시는데 소감을 약간 어눌한 한국말로 하는데 다들 정말 전 세계가 감동했어요. 외국인들도 그렇고요.

◆ 현정화> 네, 맞습니다. 실제로 그때 세계탁구 연맹 회장이죠. 그분이 일본분이셨어요. 오기무라라는 분, 그분은 이거를 성사시키기 위해서 노력을 무지하게 많이 하셨다라고 제가 들어서 알고 있는데 제가 오히려 또 너무 감사하더라고요. 그분한테. 그리고 사실은 민단과 조총련이 있었어요.

◇ 김우성> 그 관계가 좀 예민하기는 했었죠.

◆ 현정화> 껄끄러운 관계인데 우리 때문에 처음으로 합쳐서 응원단을 결성을 하고 회의도 하고 어떻게 도와줄 건가에 대해서 그분들이 만나서 이제 많은 그런 얘기들을 나누셨다는 얘기를 듣고 이런 것이 바로 조국 통일로 이루어지는 어떤 단계였지 않았나.

◇ 김우성> 스포츠가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감동과 심지어는 사회도 바꿀 수도 있는 힘이 있는데요. 그 사례 중에 정말 대표적인 사례인 것 같아요.

◆ 현정화> 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제가 막 눈물이 날 것 같고 응원해주셨던 그분들의 모습들이 막 떠올라지고요. 그게 벌써 30몇 년이 지났어요. 그런데 그냥 생생해요. 리분희 선수가 곧 옆에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막 들고요.

◇ 김우성> 맞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두 복식조 얘기도 저희가 잠시 후에 할 건데요. 지금 말씀하셨던 것처럼 전 세계가 기억하고 설레였던 시간이었습니다.

◆ 현정화> 대단했죠. 저희가 나리타에서 만나가지고 신칸센을 타고, 제가 기억이 좀 가물가물한데 어디로 가요. 지방으로 가서 훈련을 하는데 그때 그 신칸센 안에서 도시락 까먹던 것도 기억이 나고.

◇ 김우성> 정말 중요한 순간들은 한 장면, 한 장면이 영화처럼 기억에 남는다고 하는데요. 감독님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국민들도 사실 다 영화처럼 그 장면들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 현정화> 최초였고 또 많은 실향민분들이 계시잖아요. 그것을 보시면서 '아마 우리도 꼭 남아 있는 가족들을 만날 수 있겠구나'라는 그런 희망을 조금 가지셨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좀 가슴이 좀 뭉클했었습니다.

◇ 김우성> 일본 안에 우리 교포들도 사실상 분단이 돼 있습니다. 민단과 청년으로 나눠져 있고요. 하필이면 또 식민전쟁의 이야기가 얽혀져 있는 일본에서 중국을 상대로 대한민국이 승리를 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건데요. 어떻게 승리했는지 얘기를 여쭤봐야 됩니다. 왜냐하면 한 달 만에 팀이 결성돼서 한 달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연습해라. 탁구가 장난도 아닌데, 너무 어려운 조건이잖아요?

◆ 현정화> 사실은 우리가 우승할 거다라고는요. 아무도 생각을 안 했어요. 예측도 안 했어요.

◇ 김우성> 방송 최초 공개인 것 같은데요

◆ 현정화> 그냥 우리는 열심히 하고 결승을 올라가서 중국이랑 대결만 해도 우리는 목표에는 갔다.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 훈련을 계속하는데 하면서 이게 시너지 효과가 더 발산이 되는 거예요. 더 서로가 열심히 하게 되고 그다음에는 너무 많은 언론이나 이런 데서 관심을 가져주시고 정부도 마찬가지로 관심을 가져주시니까 잘하고 싶은 마음이 더 생기는 거죠. 물론 컨디션이 그렇게 썩 좋은 편만은 아니었거든요. 근데 그게 올라가더라고요. 이렇게 컨디션이 올라가더라고요. 그다음에 어떤 분이 저한테 그런 얘기를 하셨어요. 탁구인이신데. 경기를 하는 내내 네가 하는 게임이 아니었다. 그렇게 설명을 해주시더라고요.

◇ 김우성> 어떤 에너지, 잠재력이 나왔다. 이 말이죠.

◆ 현정화> 그것을 볼 수 있었다라는 표현인 거죠. 저는 그렇게 생각이 들어요. 내가 한 게 아닌 다른 어떤 뭔가의 힘이 이끌려서 했다라는 느낌이 들어요.

◇ 김우성> 그 경기를 바라보고 단일팀을 응원하는 남북한 모든 국민들의 마음이 아마 현정화 선수의 라켓으로 모여들었던 것 같고요. 궁금한 거는 여러 선수들과 선수단이 노력했지만 복식조라는 게 이게 호흡이 안 맞으면 너무 어려울 텐데.

◆ 현정화> 사실 저는 왼손 복식조랑은 여자 단식에서 안 했었거든요. 오른손 복식 쪽만 계속 했었어요.

◇ 김우성> 두 선수 다 오른손.

◆ 현정화> 보시다시피 저는 양영자 선배랑 88올림픽 하면서 3년 동안 계속했었고 끝나고 난 뒤에는 홍창욱 선수라는 그 친구랑 제가 은퇴할 때까지 계속 했었어요. 그래서 오른손에 되게 익숙해 있는데 왼손이랑 처음으로 했는데 이게 한 달 만에 잘 맞춰진다라는 건 할 수가 없어요. 사실은. 근데 중간에 저희가 훈련을 하면서 단점이 하나 또 포착이 돼요. 어떤 단점이냐면 왼손, 오른손이 치면 뭐가 어렵겠어요> 우리 오른쪽으로 가면 이렇게 딸려 나가잖아요. 두 사람이 이렇게 딸려가는데 근데 저는 좀 발이 빠른 편인데 이분은 발이 좀 늦어요. 그래서 리분희 선수 포핸드 쪽으로 갔다가 돌게 되면 리분희 선수 백핸드에서 계속 실점이 나오는 거예요.

◇ 김우성> 같은 손으로 하면 몸이 돌아서 커버할 수밖에 없는데.

◆ 현정화> 이게 빠르면 하서 돌아오는데 왼손이 뒤로 돌아가서 빨리 오기가 쉽지가 않거든요. 근데 계속 이게 잡힌 거예요. 이게 실점으로 계속 나오는 거예요. 근데 이거를 극복을 하려면 사실은 한 1년은 해야 극복이 될 수 있는데 그 와중에 리분희 선수가 아팠어요. 간염이 원래 있었던 선수라 저희가 훈련하는데 리분희 선수는 한 참여도가 한 50%밖에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실질적으로 복식을 할 수 있는 시간도 적어진 거죠. 리분희 선수 컨디션이 일단 좋아야 되기 때문에 그래서 좀 문제점이 있었는데 커버를 못하고 이제 시합을 나가게 된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들이 결승전 올라갈 때까지만 해도 잘 했었어요. 복식에서는 저희가 계속 점수를 잡았으니까. 근데 중국이랑 할 때도 사실은 거의 이긴 게임이나 마찬가지예요. 그러니까 1세트도 이겼었고 2세트도 억울하게, 저는 '억울하다'라고 표현을 하는데.

◇ 김우성> 많은 국민들이 그렇게 생각을 하세요?

◆ 현정화> 심판이 중간에 폴트를 하나 주는 거예요. 그것도 아주 중요한 점수, 15대 15더라고요.

◇ 김우성> 팽팽한 순간에서 손으로 공에 회전을 준 것 같다. 굉장히 우리 입장에서 너무 억울한, 흐름을 뺏긴 거 잖아요.

◆ 현정화> 억울하면서도 이거는 의도가 있다. 이거는 우리의 흐름을 깨기 위한.

◇ 김우성> 의도가 보일 것 같다.

◆ 현정화> 중국한테 손을 들어주는 묘한 냄새, 이런 것들이 저는 느껴졌습니다.

◇ 김우성> 여러 가지 장애물들이 있었군요.

◆ 현정화> 그런데 그것을 저희들이 극복을 했었으면 3대 0으로 끝나는 건데 극복을 못하고.

◇ 김우성> 그런데 지금 아무래도 두 분이 복식을 하면서, 탁구를 모르시는 분들에게 설명하면 거의 부부 같은 존재네요. 평생을 선수 생활 내내 함께할 정도니까요.

◆ 현정화> 예, 아무래도 오래 맞추면요. 서로를 잘 알게 되고 서로 배려하게 돼요. 그렇게 하다 보면 이 복식이 잘 되거든요. 근데 복식은 네 잘났네, 내 잘났네 이렇게 치면 무조건 집니다.

◇ 김우성> 그러니까 이런 관계면 부부랑은 좀 다른 것 같네요. 하여튼 그런 관계인데 그런데 리분희 선수의 컨디션조차 안 좋았는데 저는 현정화 당시 선수가 그래도 뭔가 북돋고 응원하고 옆에서 뭔가 호흡을 줬다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거기까지 간 것도, 그리고 그 분위기 때문에 뒤이어서 단식 선수들도 승리를 했다라고 보는데.

◆ 현정화> 사실 제가 그 결승전 올라올 때까지 리분희 선수가 계속해서 컨디션이 떨어져서 시합을 지니까 저까지 지게 되면 우리는 무조건 진다. 이렇게 생각을 저는 마음을 먹고 한 거죠.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준결승부터 리분희 선수는 복식만 하게 돼요. 유승복 선수로 교체를 하게 됩니다. 근데 준결승에서도 유승복 선수마저 지고 제가 새 게임을 계속 뛰면서 결승전을 올라왔으니까, 아마도 북한 선수들도 저의 투혼이나 아니면 저의 어떤 진심, 이런 것들을 읽었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그래서 결승전에서는 유승복 선수가 마지막에 그걸 잡아주더라고요. 그 진심이 통했던 것 같아요.

◇ 김우성> 결승전 얘기할 때 그 유승복 선수의 마지막 공격을 중국 선수가 실책하면서 이겼을 때 온 국민이 그 장면을 기억 안 할 수가 없는데, 현장에 선수로 있었잖아요.

◆ 현정화> 저는 끝나고 좋기도 하지만 울컥하고 그냥 계속 눈물이 나더라고요. 저는 제가 우승을 했을 당시에 모든 경기에서는 저는 울지 않거든요. 근데 그거를 바깥에서 보고 있는데 너무도 간절했고 또 이길 수 있는 경기였잖아요. 그러니까는 그거 딱 끝나고 나니까는 뭐라고 그래야 되지, 이게 감정이 뭔지를 모르겠어요. 이 감정의 선이 내가 우승을 해서 기쁜 건지, 아니면 우리가 그동안에 고생했던 게 해서 만족스러웠던 건지, 아니면 이게 뭐지 하는 그런 느낌으로 푹 하고 울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느낌이 아 우리가 해냈다. 그런 게 있었던 것 같아요.

◇ 김우성> 지금 현정화 감독님이 말씀해 주시는 "'우리'가 해냈다"의 '우리'는 아주 커다란 우리 같고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저도 사실 지금 얘기하면서도 소름이 싹 돋는 얘기입니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했는데 중간 중간 에피소드들이 많이 소개가 됐는데 일단 용어가 다르다. 이거 오해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쳐 넣기, 때려 넣기. 탁구 용구입니다. 근데 북한 선수들하고 이런 소통은 어떻게 극복하셨어요?

◆ 현정화> 사실 북한 선수들은 용어를 사용을 하지 않기 때문에요. 우리가 우리말로 서로 얘기를 하면서 극복을 하려고 노력을 했죠. 그런데 우리는 용어를 많이 쓰니까 은연 중에 쓰게 되면 이 친구들도 그냥 느낌으로 알면서 서로 이렇게 하는 거죠. 근데 우리는 그런 용어들을 일부러 쓰면서 같이 친해졌던 것 같아요. 저희도 처음 배운 순수 우리말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쳐 넣기는 우리 서브를 얘기하는 의미였고요. 또 때려 치기는 스매싱.

◇ 김우성> 그런데 이런 자잘한 장벽들 또 당시는 남북 관계는 굉장히 엄혹했던 시절이잖아요. 냉전 시대였습니다. 그것까지 극복한 것도 정말 대단하고 그 힘 때문일까요? 결국 우승까지 됐습니다. 두 분, 친하시죠? 그러니까 지금 사실 그 뒤로 30년이 넘게 못 보고 있는데.

◆ 현정화> 사실은 처음에는 좀 서먹서먹했었어요. 왜냐하면 리분희 선수는 북한의 자존심 저는 또 한국의 자존심, 그런 두 선수가 만났잖아요. 그런데 제가 한 살이 어려요. 리분희 선수한테 그 어린 제가 그래도 언니 하면서 따뜻하게 얘기를 하고 하니, 말도 이제 높이고 이렇게 하니까 리분희 선수가 마음을 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또 이 선수가 아팠잖아요. 그래서 제가 이제 좀 마음을 더 쓰려고 노력을 했던 것 같고 또한 리분희 선수는 사실은 계급이 높아요. 지도원 동지들보다도 계급이 높았어요.

◇ 김우성> 북한 사회는 사실 그런 계급이 있으니까.

◆ 현정화> 그래서 조금은 다른 선수들하고 말을 하기가 좀 어려운 그런 친구인데 우리는 없잖아요. 계급 이런 게 없잖아요. 그러니까 저는 이제 따뜻하게 다가왔고 또 저도 복식을 해야 되니까 마음을 서로 열어야 되니까 그렇게 해서 했던 게 더 많이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 김우성> 결국은 손을 내밀어서 이루어진 기적 같은 건데요. 2018년에도 사실은 단일팀이 한 번 더 성사가 되고 그때 또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방북을 하셨을 때 만나면 너무 반가웠을 것 같다고 기대도 하셨는데 못 만나셨어요?

◆ 현정화> 저는 사실 계속 기대를 했었고요. 저희 정부에서 많은 분들이 가셨잖아요. 그분들이 이제 각자 무슨 회담이나 의논 같은 거 하다가 밥을 먹을 때는 같은 장소에서 먹는단 말이에요. 만찬도 많고 근데 그분들이 저를 보면 계속 이렇게 얘기를 하셨어요. 리분희 만났냐고, 그런 계획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근데 안 만나지더라고요.

◇ 김우성> 엇갈렸다는 말도 있고요.

◆ 현정화> 그런데 저희가 없던 계획이 마지막 날 하나 생겼죠. 북한 백두산을 가는 계획이 생겼는데 그날 12시에 마지막에 무슨 행사 같은걸 하고요. 4시에 저희가 새벽에 출발을 했었어요. 그리고 이제 다 끝나고 오는데 우리를 수행했던 안내하시는 분이 그러더라고요. 리분희 선수가 호텔에서 기다렸었다고요.

◇ 김우성> 엇갈렸네요.

◆ 현정화> 그러니까 저희가 만일에 그날 백두산 가는 계획이 없었고 자유 시간을 가졌다거나 쉬었다가 한국을 들어갔다고 하면 만날 수 있었지 않았나.

◇ 김우성> <코리아>라는 영화 기억하실 겁니다. 하지원 배우 또 배두나 배우, 이렇게 기억을 하실 수 있을 텐데 저도 그렇고요. 온 국민이 현정화, 리분희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라고 원하는 이유. 당사자로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현정화> 저는 이렇게까지 못 만날 거다라는 거는 제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중간에 저는 무조건 만날 수 있다.

◇ 김우성> 어떤 경로로든 또 보겠지, 이랬는데.

◆ 현정화> 그런 상황이 있을 거다라고 생각을 했는데 계속 못 만나지니깐요. 이제 못 만나겠다. 못 만날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이 자꾸 드는 거예요. 어떤 루트로든지 저는 꼭 한 번은 만나고 싶어요.

◇ 김우성> 그러니까요. 국민들의 마음이 사실 똑같기 때문에 그렇게 고대하는 걸 겁니다. 이러다 정말 영영 못 만나면 어떡하지, 이런 걱정 때문에 다들 이렇게 바라고 계시는 거겠죠.

◆ 현정화> 저는 북한에 가족이 없잖아요. 그런데 그때부터 제 마음 한 구석에 북한에 저는 제 가족을 한 명 남겨놓고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 김우성> 이산가족이 된 것 같다. 이산가족입니다. 사실은 스포츠, 그러니까 피가 섞인 가족이 아니라 그 고난을 함께했던.

◆ 현정화> 저는 땀을 같이 흘린 분이죠.

◇ 김우성> 정말 피와 땀을 같이 흘린 가족입니다. 지금은 사실 대한민국 탁구계를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현정화 마사회 감독님 또 지금 2024년 부산 세계탁구선수권 대회가 열리는데 조직위도 맡고 계세요?

◆ 현정화> 제가 지금 집행위원장을 맡았습니다. 부산에서 대한탁구협회가 아마도 1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그 역사 중에 세계탁구선수권대회를 다른 나라에서는 몇 번씩 열었거든요. 일본도 그렇고, 중국도 그렇고, 그런데 우리나라는 처음입니다.

◇ 김우성> 탁구를 잘하는 나라인데.

◆ 현정화> 어쨌든 여의치 못해가지고 처음 여는데요. 저희도 기대를 많이 하고 있고요. 그리고 그 대회에서 프랑스 올림픽의 티켓이 단체전 8장이 주어지기 때문에 우리로서도 되게 중요한 어떤 대회고요. 그리고 요즘에 세계 탁구인들도 케이팝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한국을 오고 싶어 하고 또 부산을 오고 싶어 하는 그런 친구들도 되게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되게 기대가 되고요. 흥분이 되는 그런 상황입니다.

◇ 김우성> 그 역경을 딛고 지바 1991년 세계선수권대회를 우승했었던 현정화 감독님이 준비하신다면 정말 만족하실 거라 생각하고요. 이 2024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 혹시나 단일팀이 성사가 갑작스럽게 된다면. 물론 노력하시겠지만 그래서 리분희 선수가 온다면 처음 만났을 때 한 마디, 그러니까 딱 정말 만났습니다. 뭐라고 얘기하실 거예요?

◆ 현정화> 저는 말 말고요. 그냥 와락 안 할 것 같은데.

◇ 김우성> 우문현답이시네요.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꼭 안아주실 거라고 했습니다. 그 장면을 또 경기 결과보다 많은 국민들을 더 가슴 감동하게 만들 것 같습니다.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부산에서 열릴 때 또 우리 현정화 감독님이 집행위원장으로서 많은 준비를 하고 계시고요. 또 내년이 한국 탁구 100주년입니다. 북한 팀이 꼭 참가해서 그런 감동의 순간이 펼쳐지면 좋을 것 같은데요.

◆ 현정화> 탁구가요. 사실은 모든 스포츠 종목이 있지 않습니까? 그 종목 가맹단체가 제일 많은 종목이고요. 탁구는 사실 피스, 평화 이걸 제일 먼저 생각하는 종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북 단일팀을 만들었고요. 그리고 그때 남북 단일팀을 했을 때 당시에 선수 분들이 지금은 다들 지도자 아니면 협회 임원분들이죠. 그랬기 때문에 그때 2018년도에 스웨덴에서 급작스럽게 그런 걸 만들었지만 이분들이 그걸 기억하고 계시기 때문에 전부 다 오케이를 해 주신 거죠. 그래서 다른 팀이 좀 어려운 팀들도 있었다고는 얘기를 나중에는 들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탁구는 모든 전 세계에 있는 사람들은 세계 평화를 원하기 때문에 그렇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김우성> 전혀 갈 수 없는 길같이 생긴 길도 누군가가 몇 번 다닌 오솔길, 거기서부터 사람들이 다시 가는데 이미 그 길을 탁구에서는 두 번이나 그랬었잖아요. 물론 다른 스포츠도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만 한국 탁구와 평화에 대한 얘기, 정말 다른 것 같습니다. 이제 저희가 마무리하면서 그런 얘기를 해봐야 될 것 같습니다. 탁구를 통해서 작은 통일이 된 것 같다. 이런 느낌이 있었어요. 감독님이 세계선수권대회 집행위원장도 하고 또 국가대표도 이끄시고, 여러 가지 많은 일들을 앞으로도 계속해나가실 건데 남북 관련해서는 '나 이거 하나 꼭 해보고 싶은 거 있어. 이거 할 거야'라는 그런 것들, 혹시 생각해 두신 게 있을까요?

◆ 현정화> 스포츠만이 저는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탁구는 이제는 남북 단일팀 이거 말고요. 그냥 교류.

◇ 김우성> 상시적으로 만나자.

◆ 현정화> 상시적으로 우리도 북한에 가서 훈련도 하고 북한 선수들이 한국에 가서도 훈련도 하고 그다음에 교류전도 갖고, 그런 것들이 스포츠에서 뚫린다면 대단한 시너지가 나오지 않을까요? 우리의 정부가 할 수 없는 어떤 것들을 우리는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 김우성> 맞습니다. 라켓으로 공을 쳐서 네트를 넘기는 게 아니고요. 이렇게 마음과 생각들이 오고 가다 보면 무서운 총과 대포들, 미사일들은 다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감독님도 지금 인터뷰 하시다가 약간 눈시울이 붉어지는데 "리분희 선수 만나면 무슨 말씀해드릴 거예요?"라고 했는데 "무슨 말이 필요해요. 와락 안아줘야지." 하는데 저도 약간 마음이 울컥했습니다.

◆ 현정화> 이게 생각이 딱 나더라고요. 그럴 때 약간 확 올라왔어요.

◇ 김우성> 이런 따뜻한 마음, 어쩌면 더 뜨거운 마음이 얼어붙은 남북, 그리고 오랜 역사도 녹여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 어떠셨나요? 정말 탁구, 그리고 미모만 레전드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문제, 남북의 문제까지 녹여낼 수 있는 정말 전설 중의 전설 같은 분이었네요. 시간 아쉽지만 저희가 한 번 더 모실 수 있는 기회 꿈꾸면서 여기서 인사드려야 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한국마사회 탁구단의 현정화 감독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YTN 김우성 (wskim@ytnradio.kr)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YT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